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
노주선 지음 / 길벗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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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하고, 원래 연극에서 쓰이는 탈(mask; character)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현대에 와서 Persona (페르소나)가 워낙 다양하게 쓰여서 어느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 얼굴로서,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Persona (페르소나) → Person (사람) → Personality (성격)

이런 Persona (페르소나)는 Person (사람)의 어원이며, 더 나아가 Personality(성격)의 어원이기도 하다. 言語라는 것은 정말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절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으며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語原이라고 함은 어떠한 문제나 개념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을 때가 많다. 이는 Persona (페르소나)로부터 비롯된 Person (사람)과 Personality (성격)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어원의 순서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페르소나가 사람을 정의하고, 어떻게 그 사람이 정의되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도 정의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ersonality (성격)과 Role (역할)

이 책의 글쓴이는 '나'라는 존재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 (Role)을 해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의 특징들을 '성격 (Pesonality)'이라고 하며, 상황과 요구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역할 (Role)'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황과 요구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역할 (Role)'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페르소나 (Persona)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페르소나 (Persona)가 그 사람 (Person)을 정의하고 어떻게 그 사람이 정의되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 (Pesonality)도 정의되거나 변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유행하는 MBTI 테스트의 경우에도 하나의 MBTI 유형이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또는 직업 (즉,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페르소나 (Persona))에 따라 MBTI 유형이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결국 Role (역할)과 Personality (성격)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마음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는 그 역할에 익숙해 짐으로써 점차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처럼 다양한 역할 (Role)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의 특징들을 '성격 (Personality)'라고 하며, 상황과 요구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역할 (Role)'이라고 합니다. — 17페이지"



Persona (페르소나)의 소멸 → Person (사람)의 소멸

최근에 읽은 신형철 시인의 책 "인생의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단, 사람의 기억력은 신뢰할 것이 못된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모습 (Persona)를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 인생의 역사 中 "



예를 들어, 우리가 집에서 부모님을 만날 때는 아직도 우리는 철없은 어린아이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초중고 친구를 만날 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회사에서는 각자의 위치에 따라 근엄한 상사 혹은 허둥지둥 대지만 열정을 가지는 신입사원 등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만약 그 누군가가 죽는다면, 우리가 그 사람 앞에서만 보여줬던 우리의 페르소나 (Persona) 역시 소멸하는 것이므로 슬퍼지는 것이라고 신형철 시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페르소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소멸하게 될 것이다. 페르소나가 소멸함에 따라 우리의 성격 (Pesonality)도 점점 단순해져서 나이를 먹을수록 이른바 "꼰대" 같이 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러 사람을 만남으로써 우리가 쓰는 가면 (Persona)이 우리의 인간성 (Person)과 성격 (Pesonality)의 소멸 또는 문제도 막아주거나 늦추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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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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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정한 세번째 저자는 "한병철" 교수이다. 그는 굉장히 특이하게도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였으나, 독일에서 철학, 독문학 그리고 천주교 신학을 공부하여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전공을 바꾼 괴짜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괴짜임은 2017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신작 '타자의 추방' 출판 기념강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악기 소리에 깊이가 없다며 불평하는가 하면 질문하는 독자에게 "입을 다물라"거나 "참가비 1천원을 줄 테니 나가라"는 막말을 했다는 증언을 통해서도 뒷받침 된다 (https://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9125570).


한 가지 분명한 건, 한병철 교수 스스로가 "피로사회"라는 이 책을 통하여 주장하는 이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인 '우울증, ADHD, 소진증후군' 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를 겪는 건 확실해 보인다. 스스로 분노는 짜증과 구별된다 (50페이지 참조)고 책에서 이야기 했으면서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을 기념강연에서 확대시킨 그 역시 아직은 이러한 고유한 주요 질병의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사색적 능력의 상실"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침공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적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 신경성 폭력 中


"우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힙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언인가?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인 2010년 가을과 코로나 범유행이 선언된 2020년과는 정확히 10년 차이가 난다. 현재는 "우리는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힙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라고 과학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글쓴이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상기와 같이 선언하면서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 성과사회에서 고유한 주요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과연 그러한가?

면역학적 타자에 대한 부정성이 극적으로 표출된 사례인 "전쟁"을 살펴봐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3년 이스라엘 하마스 침공 등 오히려 코로나 범유행 이후로는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의 주요한 원인으로 다시금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

피로사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어판 서문 中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오히려 한병철의 진단이 시대에 뒤떨어진 점이 있지만 여전히 글쓴이의 진단과 해결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글쓴이는 이른바 ①규율사회, 면역학적 사회가 ②성과사회, 활동사회로 변화하고, 결국에는 ③도핑사회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대의 성과사회에서는 사색적 능력의 상실나르시즘의 문제 (완결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기 착취 때문에 우울증, ADHD, 소진증후군과 같은 현대 사회의 고유한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질병들은 자학적 특징을 가지며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하에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어, 자기 자신을 호모 사케르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른바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부정적 힘의 피로, 무위의 피로를 제시하고 있다.보다 구체적으로 탈진의 피로는 긍정적 힘의 피로인데, 부정적 힘의 피로는 영감을 주는 피로로서 무장을 해제하고 평화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비록 글쓴이의 "더 활동적일수록 더 자유로워질 거라는 믿은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울증, ADHD, 소진증후군과 같은 현대 사회의 고유한 질병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부정적 힘의 피로, 무위의 피로를 통하여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글쓴이의 의견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호모 사케르에게 있어서 하나의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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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문답 - 숲의 인문학을 위한
황경택 지음 / 황소걸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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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산 붐이 일어나면서, 등산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산에 가면 수많은 나무들을 만날 수 있는데, 무심코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알기도 어려우며, 산에 가면 같은 위치에서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으므로 그냥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씩 나무를 보며 질문이 생길 때까 있다. 예를 들어 "나뭇잎은 왜 타원형이 많을까?""왜 흰 꽃이 많을까?""열매가 클수록 나무의 수명이 짧을까?"와 같이 아무리 찾아도 그 답을 알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하려면 나무에 대한 깊은 지식 뿐만 아니라 나무와 숲 전반에 대한 통찰력까지 가져야만 정확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였다. 비록 대학교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였으나 상기 질문에 대해 답 하기는 어려웠다. 먼저 "나뭇잎은 왜 타원형이 많을까?"란 질문에 대해 글쓴이는 원이 가장 표면적이 넓어서 광합성에 유리하지만, 바람에 자주 부딪히다 보니 타원형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또한 "왜 흰 꽃이 많을까?"에 대해서는 식물 입장에서 색소를 만드는 에너지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장 흰 꽃이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열매가 클수록 나무의 수명이 짧을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실제로 열매를 많이 다는 나무가 수명이 짧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나무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100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제시한 책으로서, 이 책을 보고 다시 한 번 등산을 가게 되면 나무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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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ffee Dictionary 커피 딕셔너리 - 커피에 대한 모든 것, A to Z The Dictionary
맥스웰 콜로나-대시우드 지음, 김유라 옮김, (사)한국커피협회 감수 / BOOKERS(북커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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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직장인은 하루에 한 잔의 커피를 마실 것이다. 다만, 매일같이 커피를 마심에도 불구하고, 커피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확 깨서 좋다"라는 커피의 효과에만 매몰되어 커피가 주는 다양한 경험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가 상대적으로 와인보다 가격이 싸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커피는 와인과 유사한 점이 많다. 커피를 생산한 나라와 기후에 따른 천차만별인 향과 맛 등을 고려하면 이는 와인과 유사할 것이다. 비싼 와인은 공부해가면서 와인을 음미하는데, 싼 커피는 그냥 효과에만 매몰되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커피에 대해 공부함에 있어서 어떤 입문서를 추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영국 바리스타 챔피언으로 월드바리스타챔피언쉽에서도 매회 결승에 진출한 Maxwell Colonna-Dashwood가 쓰고, 사단법인 한국커피협회가 감수한 책이다. "The coffee dictionary"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A부터 Z까지 커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사전 형식으로 나열한 책이다. 다만 "사전"이라는 하면 굉장히 딱딱한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은 곳곳에 삽화가 그려져 있으며, 글쓴이가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굉장히 쉽게 읽혀진다.

 

또한, 책 구성에 있어서도 왼쪽에 해당 주제와 관련있는 다른 주제와 그 페이지를 기재함으로써,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의 앞뒤를 뒤적이며 궁금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하였고, 특히 각 주제 별로 "Brewing", "Origin", "Variety" 등 소주제를 기재하여 각 주제가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인지 쉽게 기재한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은 책임에도 책의 구성과 내용 면에서 흠잡을 곳이 없는 매우 좋은 책이며, Coffee에 대한 좋은 입문서로서 간만에 좋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

 

이 책을 통하여, 매일 같이 마시는 커피에 대해 효과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커피가 주는 다양한 경험에 집중해 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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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 최고의 영화가 무엇인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순간의 말성임도 없이 CGV 목동에서 SK 텔레콤 무료 영화표를 통하여 보았던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를 이야기한다. 당시 메멘토 (Memento), 인섬니아 (Insomnia) 등으로 당시 떠오르는 감독으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Edward Nolan)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 획을 그은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를 통하여 거장으로 자리 매김 하였으며,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는 정말 영화 역사에 한 획은 그은 걸작 (masterpiece)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이후에 보았던 인셉션 (Inception)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는 분명 훌륭한 영화였지만,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와 같은 걸작 (masterpiece)이라고 부르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뭔가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한 자루의 칼을 보는 듯한 영상미와 문제의식이 이후 영화에서는 무뎌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날 기회는 아쉽게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오펜하이머 (Oppenheimer)"를 통하여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2012년에 개봉했으니 약 10년 만에 다시 "오펜하이머 (Oppenheimer)"를 통하여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나게 되면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정도인데, 10년의 변화에 대해 기대감 반, 우려 반으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Mr.President,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

"I don’t want to see that son of a bitch in this office ever again."

— 오펜하이머와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Oppenheimer told Truman ‘I have blood on my hands’ after atomic bombs - The Washington Pos


"Mr.President,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 "대통령 각하, 저는 제 손에 피가 묻어 있음을 느낍니다."라고 트루먼에게 오펜하이머가 말했을 때 트루먼의 생각과 반응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으로서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몰두했던 사람이었다. 원자폭탄이 나치가 아니라 일본에 투하되서 갑자기 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느낀 것일까? 만약 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니라 나치 독일에 떨어졌다면 과연 똑같이 "제 손에 피가 묻어 있음을 느낍니다"라고 대통령에게 말했을까? 트루먼의 손에는 더 많은 피가 묻어 있고, "The buck stops here."라고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있을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트루먼 대통령에게는 오펜하이머의 발언은 말 그대로 징징대는 과학자 (“crybaby scientist” )의 발언일 뿐이었다.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의 발언 이후 트루먼의 얼굴이 굳으면서 트루먼이 오펜하이머의 손에 묻은 피를 닦으라고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서 눈 앞에 흔드는 장면인데 트루먼의 가소로운 심정을 잘 나타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는 역설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이 오펜하이머의 "복수심"으로 인한 것임을 명백히 할 뿐이다. 나치의 항복 이후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정치적, 과학적 입지를 이용해서 원자폭탄 또는 수소폭탄 개발을 막으려 했던 것을 보면, 오펜하이머에겐 폭탄이 "어디에" 떨어지느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이 된 자신을 마주할 때까지 살아남거나.

— 영화 다크 나이트 중


10년이 지난 후 만난 크리스토퍼 놀란은 분명 실망스러웠다. 전기 영화이니 각색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펜하이머의 내면 묘사는 수박 겉핥기와 다름이 없었으며, 흑백과 컬러로 시점을 다르게 하는 기술은 이미 메멘토에서 보여준 바가 있어서 식상할 따름이었다. 대체 이 영화를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은 무엇을 말하고 한 것일까?매카시즘에 대한 비판? 자신도 모르게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든 과학자의 고뇌? 스트로스 제독의 상무장관 낙마를 통한 사필귀정?

뭐 하나 설득력이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분명 오펜하이머는 스스로 만드는 무기가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임을 알고 있었으며, 매카시즘에 대해서는 오펜하이머의 과거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부적절한 처신, 더 크게 보면 과거 중수소를 소련에 수출함에 있어서 스트로스 제독을 공개적으로 비웃은 것에 대한 업보일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방사선 동위원소 수출에 있어서는 결국 스트로스 제독이 옳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이 된 자신을 마주할 때까지 살아남거나." 라는 다크 나이트의 명대사가 유독 생각나는 영화 "오펜하이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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