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une : A Journey into the Mysterious System that Keeps You Alive (Hardcover) - 『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원서
Philipp Dettmer / Hodder & Stoughton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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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Immune)"의 중요성은 최근 COVID-19의 대유행(팬더믹) 상황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일반인이 백신 1차, 2차 접종, 심저어 부스터샷이란 단어를 대유행 이전만 하더라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면역학은 정말로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다. 대학교에서는 3학년에 2학기 동안 배우는 학문이나 글쓴이가 언급한 대로 "유감스럽게도 많은 과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하여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는 데는 영 젬병이며, 이 점에 관해서는 면역학은 모든 과학 중에서 최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쓴이 Philipp Dettmer(필리프 데트머)은 자신이 운용하는 저명한 과학 유튜브 채널의 제목인 "Kurzgesagt - In a Nutshell"(사실 이 단어의 뜻은 "짧게 말하자면" 이지만, 독일어임을 감안할 때 마치 면역학의 어려운 단어들을 보는 것과 같다.)과 같이 어려운 면역에 대해 복잡한 서술은 최대한 줄이고 다양한 그림을 통하여 필요한 수준으로 단순화하여 서술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천문학, 심리학 등에 대한 자연과학 서적에 비해 생물학, 그 중에서도 면역에 대한 자연과학 개론서가 없었는데 COVID-19의 대유행 하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면역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Kurzgesagt - In a Nutshell "짧게 말하자면"

Kurzgesagt - In a Nutshell "짧게 말하자면"

본격적인 책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아무래도 글쓴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쿠루츠게작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쿠루츠게작트는 "짧게 말하자면"이란 뜻을 가진 독일어로 모션 그래픽 애니매이션 스튜디오로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에 대한 짧은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채널이다. 전세계적으로 구독자수는 1930만명에 이르며, 조회수는 2,087,405,941회에 이르는 저명한 채널이다.

사실 처음 이 채널을 접한 것은 천문학에 대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모션 그래픽 애니매이션을 이용하여 어려운 자연과학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점에 흥미를 느껴 해당 채널을 구독하고 관심있는 주제를 발견하면 틈틈이 시청하는 채널이었다. 그래서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면역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만약 면역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먼저 아래 3개 영상을 시청하고 책을 읽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면역 체계 I - 박테리아 감염 - YouTube, How The Immune System ACTUALLY Works – IMMUNE - YouTube, You Are Immune Against Every Disease - YouTube, )

면역, 사이언스 북스

내 목표는 이 모든 문제를 세심하게 밀고 당기며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일상적인 용어를 쓰고 복잡한 용어는 꼭 필요할 떄만 사용할 것이다. 면역학적 과정과 상호 작용을 단순화하되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는 최대한 과학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 필리프 데프머(글쓴이)

머릿말 중

글쓴이인 필리프 데프머는 면역을 전공한 자도 아니므로 과연 이 복잡한 단어와 매커니즘이 난무하는 면역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마음 한 구석에 의구심이 있었다. 또한, 가사 글쓴이가 정확하게 복잡한 면역을 설명하더라도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전문번역가가 번역함에 따른 부정확성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실제 자연과학 책들의 번역서의 큰 문제기도 하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아과 전문의이면서 전문 번역가인 강병철 선생님이 번역해 주신 덕분에 글쓴이의 위트는 살아 있으면서 국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한글 용어로 정성스럽게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 있었다.

또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변리사로서 항체 관련 특허 일을 하는 입장에서 살펴보더라도 어려운 개념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설명하려 노력한 흔적이 인상깊었다. 특히 MHC II를 설명할 때, 핫도그 사이에 낀 소세지 라고 비유한 점은 어려운 단어와 개념을 단순화하고 비유하여 쉽게 독자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COVID-19의 대유행으로 면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혹시 면역학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B세포, T세포 등을 이해하고 복잡한 면역 매커니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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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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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기와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이 책의 초반부(1부)는 일반적인 애정소설과 다를 점이 없지만, 차이점은 바로 "책 읽어주기"에 있다. 가끔 조카들이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 책 읽어주는 것이 생각보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런 점은 연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주인공은 한나의 강력한 부탁으로 사랑 행위 이전에 반드시 "책"을 한나에게 읽어주었다. 이러한 "책 읽어주기"는 2부 막바지에 이르러 그 의미를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부인은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 - 첫 번째 부인

 한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화자의 생일을 한나가 잊어버리고 그 때문에 화자와 한나 사이에 말타툼 결과 화자가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싹싹 빌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 이후 화자는 "한나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과 유사한 에피소드이다. 결국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은 돌이켜보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고, 수영장에서 친구와 놀다가 한나를 발견한 순간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아니함으로써 한나를 첫 번째로 부인한 것이고 그녀를 배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망치고 있어. 그런데 네가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입장이야. 그러면 넌 그 사람을 구하겠니? - 두 번째 부인

 한나가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숨기고자 했던 "문맹"을 화자는 결국 2부에서 깨닫게 된다. 문맹이란 점이 밝혀지면 한나는 종신형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평생을 숨기고자 했던 치부인 "문맹"이 드러나게 된다. 화자는 결국 침묵하는 선택을 하였지만 나는 화자의 아버지의 말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즉, 직접 한나와 이야기해서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화자는 다시 침묵함으로써 한나를 다시 한 번 배반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해.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한테 맡겨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사람과 직접 말이야.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당신은 왜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 세 번째 부인

 미하엘은 10년간 문학 작품을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면서도 한 번도 한나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또한 녹음테이프에 문학 작품 이외에는 아무런 사신도 담지 않는다. 이것은 옮긴이가 지적했 듯 "그녀에 대한 부인이요 배반이라고 할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편지라고 함은 즉 "글"이다. 미하엘이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함은 "글"을 쓰지 않은 것이고 그 말은 여전히 한나는 글을 알지 못한다, 즉 "문맹"이라는 것, 더 나아나가 문맹이었던 시점의 과거의 한나를 사랑하고 기억할 뿐,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한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점을 함축한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부인했어도 결국 베드로를 용서했지만, 초월자가 아닌 일반인인 한나는 미하엘이 자신을 3번 부인(배반)한 결과 그 끝은 결국 출소 당일 새벽 자살이라는 마무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수영장에서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면 그녀는 떠나지 않지 않았을까? 법정에서 한나를 직접 만나 도와주었다면 그녀가 종신형을 받아서 교도소에서 18년간 복역했을까? 한나에게 한 번이라도 편지를 썼다면 그녀가 출소하는 날 자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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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모임 - 책, 수다에서 토론까지
강원임 지음 / 이비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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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시작

 나는 언제나 천국이 어떤 종류의 도서관일 거라고 상상해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서관에 가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천국"이라는 느낌보다는 엄청난 양의 장서에 기가 눌리기도 하고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서울대 추천 100대 도서 이런 책들을 대출 받아 보다가 조금 읽다가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처음에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읽기를 시작하는 것은 책 읽기를 시작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독서모임의 어려움

그러나 독서모임의 경우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지식의 수준, 그리고 좋아하는 책의 장르 등이 각자 다르므로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독서모임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실제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는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해 나가야 할 지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의 책모임

이 책은 평범한 주부였던 글쓴이가 주부들만의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또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점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책과 관련없는 수다가 많은 경우, 무성의한 책 선정, 그리고 독서모임 안에서 친목 모임을 계속 만드는 리더의 문제점, 논제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 실제 독서모임을 하면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독서모임을 이끌어 가는 리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논제의 중요성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논제"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정 "논제"를 제시하는 경우 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독서모임이 활발하게 이어지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다만, 이런 "논제"를 만드는 것은 해당 책, 또는 글쓴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고서는 요원한 일이므로 리더의 경우 미리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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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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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대한 부모님의 기억

어머니께서는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특히, 과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후 몇 년 지나지 아니하였을 때, 회사에서 아버지를 광주에 발령 내었는데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젖도 못 땐 갓난아이를 데리고 광주에 가기 싫다고 펑펑 울었으며 아버지 역시 회사 측에 '나보고 사표 내라는 것이냐'는 식으로 따졌다고 가끔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라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었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 갔다.
팔지 못할 것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1926년 2월 13일, 동아일보 

이는 반민족행위자 이완용 사망에 대한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이를 "그 사람"으로 치환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 갔다.
해서는 아니될 일 하여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2021 11월 23일

"해서는 아니될 일"을 한 자, "그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자...마치 해리포터의 볼트모트가 생각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에서 "You-Know-Who"는 결국엔 온몸이 분해되고 재처럼 흩날리면서 사망하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대통령이 차례로 사망하는 와중에도 천수를 누리고 사망하였으니 기사 제목처럼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흰 페인트"의 의미

소설 58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묘사가 있다.

목이 잘려나간 것이 아니란 걸, "흰 페인트칠"로 얼굴이 지워졌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어른어른 뒤로 물러났어.

처음엔 흰 페인트가 뭔지 모르고 단순히 소설상 은유적 표현(행방불명된 사람을 뜻하는 것)인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실제 신군부에서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도록 흰 페인트를 얼굴에 끼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에서 눈을 돌리고 스스로의 얼굴에 "흰 페인트"를 끼얹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지독한 시취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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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 - 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완결개정판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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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썼던 서평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기억하노라면 희미한 인상만 남는다. 마치 눈을 감고 친구와 아무 걱정 없이 놀았던 초등학교 시절이나 그 이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기억해보려 하면 친구의 이름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얼굴 윤곽도 흐릿해지고 희미한 인상만 남는 것과 같다.

 이 책의 글쓴이인 정민 선생의 책 중 과거에 읽었던 <미쳐야 미친다>에 대한 나의 기억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베스트셀러라 아무런 생각없이 의무감에 읽었다는 것과 뭔가 실망스러웠다는 점 뿐이었다. 그나마 과거(2006년 가을)에 썼던 서평이 남아 있었는데 마치 과거 즐거웠던 기억과 추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과 같아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권하건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꾸준히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면 훗날 이와 같은 즐거움을 얻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과거 내 서평을 읽어 보니 젊어 쓴 글이라 과욕과 치기가 더러 보인다. 그 시간 만큼 나 역시 세월 따라 생각이 바뀌고 안목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찌되었건 그 당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제목은 멋있는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 하여 굉장히 기대하고 읽었으나 기대에 못 미쳐 이와 같은 평가를 한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책의 글쓴이 역시 <미쳐야 미친다>의 글쓴이 정민 교수다. 이번엔 과연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지 궁금해 하며 이 책의 첫장을 펼쳤다.

 

'한시'의 현대적 의미는? 

'한시'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단 읽기 어려운 꼬부랑 글씨로 써져있어 해석하기 어렵고 공자님 말씀처럼 현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 역시 나름 정규 교육을 잘 받아 왔다고 생각하지만 옆 그림과 같은 꼬부랑 글씨(초서체) 같은 것은 전혀 해석할 깜냥이 없다. 그저 흰 것은 종이요 검정 것은 글씨일 뿐이다. 

 이와 같을진대 '한시'가 오늘날 외멸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 이상 한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젊은이가 줄어들고 한시 전문 시인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시는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정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선인들의 한시 이야기를 먼지 털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과연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놓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힐 수 있을지 곰곰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

 아마 이 글귀가 글쓴이 정민 선생이 이 책을 통해 독자 및 시인에게 던지고자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날 한시에 대한 관심이 한갓 골동품 완상 같은 호사 취미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고 시론과 비평론은 꼭 '현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구의 문예이론을 전달하는 상황에서 한유가 말한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라는 원리를 환기한다면 우리가 한시를 통해 퍼 올릴 수 있는 샘물은 무궁무진하다(p.667~668)고 정민 선생은 말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문화의 차이나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최신의 서구 이론을 무작정 대입하는 연구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미셸 푸코,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의 영향으로 cm가 아닌 자척으로 한시를 설명하겠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알아 듣는 사람이 없다고 글쓴이는 지적한다.(p.669)

 하지만 이와 같은 글쓴이의 주장엔 의문만 더 커진다. 한시 해석에 있어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이라면 대체 어떻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문학성과 미의식을 기준으로 한 한시 연구를 강조하는데 이런 한시 연구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저 원론적인 말을 되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 책에 나온 연암 박지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마치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을 하나 주워놓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숟가락 주웠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p.290)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을 배울 뿐 표현은 본받지 않는다.'라는 원리는 한시의 현대적 의미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한시를 현대적 양식과 표현에 맞게 변화시키자는 것인지 아니면 한시에 담긴 정신 중 현대적 의미와 맞는 것만 찾아 보자는 건지 그 의미가 모호하다.

 

'한시 미학 산책'의 현대적 의미는?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가 잃어 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한시에 대해 글쓴이의 의도대로 어느 정도는 신선한 숨결을 불어놓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한시에 대한 좋은 책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 '한시'에 대해 한 권 추천해달라고 할 때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서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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