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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처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차라리 1권과 2권을 함께 묶어서 양장본으로 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그림을 넣기 위해 반들반들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이 경우 양장본이 아닌 경우 쉽게 제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권과 2권 따로 내놓은 것 역시 따로 따로 판매하여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주석 선생 사후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에서 유고를 모아서 출판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로 묶어서 내는 것 역시 좋은 모양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유고를 묶어서 낸 것이기 떄문에 1권에 총 12개의 옛 그림이 소개된 데에 비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이렇게 6개의 작품만 소개되고 있다.

 

 일단 가장 먼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소개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따로 언급할 것이 없지만 글쓴이는 일제 시대 일본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의해 한국 호랑이가 멸종된 것은 한민족의 정신, 그 기개와 기상이 허물어졌음을 상징한다(p.22)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호랑이를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유전적으로 극히 미비한 것이나 나는 호랑이 보다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호랑이의 수난은 굳이 일제 시대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글쓴이는 <송하맹호도>의 표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은은한 옥색의 우리 나라 전통 표구가 아니라 화려한 비단으로 치장된 표구로 인해 그림 관람에 적잖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구된 옛 그림을 대할 때에는 원래의 여백이 좀 더 넓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p.55)

 

 그리고 <마상청앵도> 역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살펴본 바 넘어가도록 하고 이 책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금강전도는 한마디로 '이상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이상한 형태로 '제시'를 배열해 쓰고, '기년명' 그리고 '작품 제목'과 '작가 호'를 따로따로 적은 관지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아래 사진은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온 것인데 제시 윗부분이 짤려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이를 주역의 심오한 이치가 담긴 그림이라고 평가한다. 즉,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태극을 세워놓은 모양이고 제시 역시 주역으로 해석하여 조선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원하다는 깊은 뜻까지 담았다고 보는 것이다.(p.135) 덕택에 책에 갑작스레 주역 내용이 나와서 당황을 하였으나 같은 그림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그림을 보는 기쁨이 아닐까? 다만 조금 억지로 주역을 꿰맞춘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해석은 나름 일리있고 흥미있다. 





 그리고 글쓴이는 [조선과 이조]라는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p.207) 이렇게 아주 열변을 토하시던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고 남의 춤을 추는 것은 과거 우리의 전통 옷, 음악, 술, 춤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짐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뛰쳐진 것에 대해 반성은 없고 단순히 시대 한탄만 하고 있으면 불만만 많은 늙은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한 현재 우리 나라가 주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오늘날 젊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인 글쓴이 세대 사람들 잘못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라가 백년 못가도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라라라면 차라리 망하는게 좋은 것이다. 이렇게 가끔 맹목적으로 전통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만 보여주는 글쓴이의 글을 읽을 때면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오주석 선생 사후 처음 유고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유고를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문장의 흐름 역시 다듬어 지지 않았는데 과한 손질을 하면 고인에 대한 누를 끼칠 가능성이 높아 그 작업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편집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미리 알지 못하면 유고라고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책이 나온 것에 대해 독자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기쁠 따름이다. 다만, 다시는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누군가 오주석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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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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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직도 나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 가끔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통해 여러 한국 옛 그림을 보아 왔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 많은 평품을 보면서도 전혀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저 멋진 그림이네 딱 이정도 생각 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은 후에 비로소 옛 그림을 어떻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만큼 그 책은 우리 문화 안내서로는 최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오주석의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그 중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이 책에는 9명의 화가의 12개의 옛 그림이 담겨 있는데 처음 옛 그림을 만나는 사람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많은 그림과 친절한 설명이 담겨 있는 책이다. 순서대로 김명국의 <달마상>,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담겨 있다.

 

 일단 김명국의 <달마상>에서는 흑색 외에 '색이 없는 이유'에 대해 글쓴이는 설명한다. 불가에서 색(色)은 존재를 가리키고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정신의 흐름이 치열하게 나타난 달마상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수묵화는 채색화가 완숙 단계에 접어든 이후 나타난 것으로 무채색을 통해 순수하고 검소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색이 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존에 화려한 원색이 아닌 수묵화가 동양에서 발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색깔을 내는 염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나라가 흰색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염료가 없기 때문이지 실생활에서 때가 많이 타는 흰색을 많이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주석 선생은 이와 다르게 해석하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안견의 명작 <몽유도원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몽유도원도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안평 대군의 꿈에 나타난 도원을 안견이 그린 그림인데 현재 일본에 있다는 것 정도만 국사 시간을 통해 알고 있었다. 국사 책에 나온 몽유도원도 그림은 너무 작고 흐릿하여 '이것이 왜 이렇게 명작이라고 칭송받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였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몽유도원도에는 서양의 일점투시도법과 다른 동양의 삼원법, 즉, 고원법(깍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쳐다본 시각), 심원법(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 본 시각), 평원법(높은 곳에서 아래 쪽은 폭 넓게 조망한 시각)이 골고루 담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만 글쓴이는 "서양의 일점투시는 일견 과학적인 듯 보이지만 카메라 앵글처럼 포용력이 부족한 관찰 방식이며… 동양의 고차원적 인본주의, 즉 회화적으로는 삼원법에 의해서만 충분히 표현된다."라고 이야기한다.(p.81) 이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사대주의 혹은 서양중심주의도 문제지만 우리 것만 최고라고 여기는 태도 역시 역겹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윤두서의 <자화상>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히 이 그림은 극사실로 그려졌지만 귀, 목, 상체도 없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충격적이라고 부를만큼 지나치게 강하고 날카롭기만 했던 느낌을 받게 되었으나 실제 옛 사진 속의 모습에는 유탄(柳炭)으로 상체가 그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미완성작으로 남겨진 이유는 이 후 표구상이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문지르다가 지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윤두서의 모습은 얼굴만 남은 강하고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었다.

 

 이어서 유명한 김정희의 <세한도>를 살펴보자. 사실 세한도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어왔다. 즉, 작품 속의 집은 그 오른편이 보이는데 둥근 창문을 통해 본 벽의 두께가 어째서 왼편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와 지붕은 뒤로 갈수록 줄어들어 원근법을 쓴 듯 한데 아래벽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져 역원근법에 가까우며 지붕의 오른편 시선도 앞쪽에 비해 뒤쪽이 훨씬 가파르니 오류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추사는 <세한도>에 집을 그린 것이 아니라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을 그린 것으로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옛 그림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p.171) 물론 마음으로 보야야 하는 것도 맞지만 뭔가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글쓴이는 동양 옛 그림을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예로부터 그림 감상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하였는바 화첩을 만들어 보관하여 그림 한복판에 세로로 접은 금이 생긴 것이므로 옛 글 읽듯이 즉, 서양처럼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볼 것이 아니라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읽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그림을 볼 때에는 오른편으로 돌게 하는 것이 올바른 그림 감상법이라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이는 굉장히 좋은 정보이다. 이렇게 감상하지 않으면 글쓴이가 지적한대로 예컨대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볼 때 시선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라는 책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글쓴이가 이야기 하는 '옛 그림 보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까 한다. 글쓴이는 옛 그림 보는 방법으로 첫째 좋은 작품을 무조건 많이, 자주 보아야 하며 둘째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을 통해 작품 내용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물론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실제 박물관 가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실제로 묘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옛 그림을 제대로 보기는 요원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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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바이블 - 2010 에디션
케빈 즈렐리 지음, 정미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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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와인(Wine)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어렵게 보이는 외국어가 난무하는 와인의 이름을 보고 질리게 마련이다. 본인 역시 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레이블을 봐도 도무지 어떤 품질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대충 지불 가능한 가격대의 와인을 추천받아 마시거나 사곤 한다. 그러던 중에 한 번 와인에 대해 관심을 환기 시키는 책이 있었는데 바로 만화책 <신의 물방울> 이었다.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로서 와인에 대한 정보와 재미를 골고루 담고 있었던 이 만화책은 비록 와인에 대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와인을 마시면서 너무 과장된 감정 표현과 평가가 난무한다.)도 가지게 하였지만 나름 와인에 대해 공부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전해준 책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어떤 책을 와인 입문서로 읽어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사전 형식으로 여러 와인 빈티지를 분류해 놓은 책은 일단 그 두께부터 질리게 하였고 와인에 대한 초보자인 나로서는 읽기에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 <와인 바이블>(원제는 Windows on the world COMPLETE WINE COURSE 2010 edition)였다.

 

 비록 들고 다니면서 읽기엔 책 크기가 부담스럽지만 양장본이면서 많은 지도와 사진이 담겨져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특히 책 제목인 <와인 바이블>이 맘에 들었다.(오히려 원제보다 번역한 제목이 더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그리고 샴페인 등 종류 별로 그리고 프랑스, 캘리포니아, 스페인, 독일 등 기존의 와인 생산국 뿐만 아니라 신흥 와인 제조국인 칠레,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의 와인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게다가 각 챕터 별로 마지막에 <핵심 체크> 문제를 통해 소믈리에 준비를 위한 도움도 주고 있으며 각 챕터 별로 해당 나라와 와인의 특색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와인 시음을 위한 와인도 추천해주고 있어 쉽게 와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와인과 직접 상관 없는 Windows On the World 레스트랑 소개가 너무 많고 미국의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번역 역시 나름 깔끔한 바 초보자를 위한 와인 입문서로 무난하고 추천하는 책이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와인의 종류는 너무 많고 와인 레이블에 나타나는 외국어는 낯설기 때문에 꾸준히 와인을 마셔보면서 느끼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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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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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 이 책을 읽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한시도 편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책 제목이 <굿바이 클래식>이었는데 실제 책 내용은 'Good-bye Classic'이 아니라 'Bad-bye Classcis'이었다. 심지어 악위적으로 느낄 정도로 클래식에 대한 비판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이건 또 뭥미?'라고 생각하면서 불편해 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나 과연 이런 '불편함'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을 만나면 '불편함'을 느끼며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과연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그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기 마련이다.
 
 나를 비롯해 다대수가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불편함'은 바로 이 책에서 기존 클래식에 대한 생각과 상식이 정면으로 도전받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아예 클래식의 까놓고 비판하는 책이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생각과 '다름'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과 관점을 알려주는 책은 높게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나름 일리가 있다. 현재 클래식이 '악보 중심주의'를 넘어 악보를 신성화하고 있어 연주자의 능력, 혹은 해석이 발휘될 토양이 없다는 점이나 클래식 역시 그 당시 대중에게 인기 있었던 대중 음악이었는데 현재에는 대중과는 거리가 먼 음악으로 '박제화'되어 근근이 이어가고 있으며 현대에 새로운 클래식 음악과 작곡이 이루어지지 않아 죽은 음악이라는 점 역시 일리있다. 또한 과거 우리가 모짜르트나 베토벤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으나 그들의 친필 악보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닌 고침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클래식을 듣게 되면 감정이 가라앉게 되고 똑똑해 진다는 속설 역시 근거 없음을 이 책은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여러 음악 중에서 유일하게 연주자와 관객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를 취하여 관객이 능동적으로 음악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근거있다.
 
 결국 글쓴이는 클래식은 말 그대로 '죽은 음악'이고 현대 철학과 같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아름다운 음악'만을 추구하여 현실과 동 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불편함'의 근원이라 보인다. 우리는 흔히 클래식을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 책은 이런 편견을 아예 깨부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위악적으로 보일 정도이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우리의 '편견'을 깨줄 수 있는 책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하지만 중립적으로 읽어 본다면 음악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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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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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청춘의 사신(死神)>이라… 과연 이런 제목에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예술 서적 보다는 문학 서적의 제목으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말하길 <반시대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사람들은 시시각각 불합리하게 수명을 줄이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데 이것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자각할 수 없도록 유도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고 있기도 하며 화를 내도 안되고 울어서도 안되는데, 하물며 '감동'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라는 서경식 선생의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할 것이지만 최소한 자신은 이러한 현실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p.8)

 이에 대해서 나는 서경식 선생과 견해가 다르다. 물론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하다는 점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의 불합리에 대해서 스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찌라시들과 기득권층의 끊임없이 계속된 이념 교육으로 인해서 이런 부조리한 사회를 꿰뚫어 보는 눈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서경식 선생의 형님 두 분이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일정한 직업도 없는 처지에 유럽을 석 달 동안이나 여행하면서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정말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나에게 예술은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나 흐르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결과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p.10) 물론 서경식 선생이 두 분 형님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형님들 차입금이라도 넣어 드리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의문이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전반의 회화예술에 관한 에세이 31꼭지를 한 권에 모은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Beethovenfries : Die Feindlichen Gewalten)](1902)이 가장 인상 깊었다.(p.25) 오스트리아 미술관 지하실을 꽉 채우고 있는 이 벽화는 괴물 티폰과 그의 딸들인 '질병', '광기', ' 죽음', '욕망', '불순', '무절제'가 추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오히려 추상화보다는 이렇게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회화를 나는 더 좋아한다. 왜 구스타프 클림트는 괴물 티폰과 여러가지 악덕들을 벽화로 그려넣었을까? 서경식 선생 말대로 환희에 대한 난관이 아니라 파국에 대한 불안이 바로 이 작품을 낳았으며 그 후 2개의 커다란 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불안이 현실화 되었으며 이 큰 원숭이는 바로 언제든지 파국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예술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서경식 선생 자신의 입장에서 예술을 소개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성 아래에서 예술을 검토했지만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이 다른 예술 에세이 서적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서경식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책인 것 같다. 앞선 <서양 예술 순례>를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에도 맞고 일관성이 있어서 서경식 선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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