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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가끔씩 참 공교롭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자그마한 인문/사회 독서 모임을 하는데 다음 달에 읽을 인물 혹은 책에 대해 의논하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혹은 <1984> 혹은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었다. 평소 나는 문학 작품을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었고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수필로 쓴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지 오웰의 글을 한 번 읽어 보기를 소망했었다. 모든 남자가 그렇듯이 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고 특히 기존 전쟁과 다른 양상을 보인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었다.
일단 조지 오웰의 수필을 모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간단히 [스페인 내전]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는 순리인듯 싶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시대 상황이나 배경을 미리 알아야 이해하기 쉬운 법이다. 스페인 내전은 기존의 전쟁과 양상이 다른 전쟁이었다. 적법한 선거에 의해 세워진 좌파 정부와 우파 군부 반란군 사이에 의해 일어난 전쟁으로 각국이 참전하여 제 2차 세계대전 전초전 성격을 띄었으며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군부 반란군에 대항하여 정부 편에서 총을 들었다. 많은 지식인들은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지 오웰처럼 총을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블로 피카소처럼 게르니카 학살에 대한 분노로 <게르니카>라는 명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앤터니 비비가 쓴 <스페인 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감히 말하건대 국내에 소개된 책 중에서는 가장 스페인 내전에 대해 객관적으로 잘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을 살펴보면 조지 오웰의 수필 중에서 29편을 뽑아 소개한 책이다. 사실 조금 안타까운 점은 조지 오웰의 모든 수필을 전부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옮긴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29편을 선정하여 [편역]한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되었건 총 29편의 에세이는 각각 독립적인 것이므로 인상깊었던 <과학이란 무엇인가?>, <정치와 영어>, <어느 서평자의 고백>, <나는 왜 쓰는가> 이렇게 총 4편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한다.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조지 오웰은 일반 대중에게 좀 더 많은 과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J. 스튜어트 쿡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물론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근거는 빈약한 점이 사실이다.(p.217) 또한 우생학으로 대표되는 '인종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인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은 "대중에 대한 과학 교육이 결국 문학이나 역사를 희생해가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등을 더 가르치는 것이 될 경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주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p.218)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과학 교육을 받은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인문/사회 과학이 자연 과학보다 높은 수준의 것이라는 편견이 들어간 주장이며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문/사회 과학을 주로 배운 사람들 중에 악인이 없는가? 조지 오웰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히려 이런 주장은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전인 교육, <통섭> 등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 시대에는 이렇게 구분 지어 하나 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반쪽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불과할 것이다.
이어서 <정치와 영어>라는 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1.익히 바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네는 반드시 뺀다. 3.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 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라는 자신이 글을 쓰면서 6가지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즉 그는 지금의 정치 혼란이 언어의 타락과 결부되어 있으며, 언어 문제부터 건드림으로써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바(p.275) 오늘날 아무나 '정의', '공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 현실에서 한 번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글쓴이의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이라고 봐도 옳겠다. 나 역시 1년에 100여권의 서평을 써 왔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책을 읽고 정리하기 위해 서평을 써 왔지만 시간이 흐르니 일종의 직업과 같이 되어 버려 진짜 제대로 된 서평을 쓰려면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후 써야 하지만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다가 아무래도 공짜로 책을 제공받고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나쁜 말을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상황 하에서도 되도록 정당한 평가를 하고 단순히 책 내용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서평을 쓸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따름이다.
<나는 왜 쓰는가>는 가장 유명한 수필로 여겨진다. 내가 이 서평의 제목을 이와 대구를 이루어 <나는 왜 읽는가>로 적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이 수필에서 지난 1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며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른바 순수한 문학 작품을 싫어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현실과 격리되어 <아름다움>만을 논하는 문학을 볼 때면 과거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하에 고통 받고 있을 때 현실을 회피하여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방조한 여러 작가들이 떠오른다. 물론 너무 정치적 색깔을 띄는 작품도 역겨운 것이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위선' 아래 현실을 외면하는 작품보다는 차라리 솔직해 보이는 것이 나아 보인다.
결국 이와 비슷한 이유로 해서 <나는 왜 읽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읽는 것을 통해 불의를 감지하고 '의문'을 품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 Matrix의 명대사 "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가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하겠다.
앞서 살펴본 수필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와 같이 나 역시 냉철히 이 책을 평가하건데 비록 편역이나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많은 조지 오웰의 수필을 최초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식상한 표현이지만 강력 추천한다는 말 외에는 다른 단어를 찾기 힘들다. 뭐… 6번째 규칙에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된다면 위의 원칙들을 과감히 깬다는 규칙이 있는 바 조지 오웰이 무덤에서 일어나 내 서평을 읽는다고 해도 이런 표현에 대해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