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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 실격 책세상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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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자전적 소설이다. 人間失格(인간실격)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염세적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인데 이는 이 책의 출판일은 1948년 7월 25일인데 일본의 항복선언일은 1945년 8월 15일이고 다사이 오사무가 1948년 6월 13일에 자살했다는 점을 알게되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염세적 분위기를 풍기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은 결국 시대상의 반영이고, 당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절망적이고 염세적 분위기를 풍길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분위기가 이 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大庭葉蔵)는 스스로 "인간 실격(人間失格).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라고 자조하는데 그렇다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은 인간 실격(人間失格)의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지 주인공과 호리키가 하는 놀이, 즉 앤토님 알아 맞추기 놀이에 비추어 이하 살펴보도록 한다.


첫번째 사진 - 그 남자의 어린시절 사진


이건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가 다자이 오사무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어릿광대짓이었습니다.

어릿광대짓은 인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구애 행위였습니다.

— 첫 번째 수기 中

놀랍게도 머리말에 있는 3장의 사진은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즉, 스스로 평가하길 "아이의 웃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께름직하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는 그 사진이다. 같은 사진에 찍힌 7명의 아이들이 "무표정"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오바 요조(大庭葉蔵)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가 어린시절에 행하였단 "어릿광대짓"이고 인간합격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두 번째 사진 - 교복차림



다자이 오사무의 가장 유명한 사진일 것이다.

갈매기가 ''여女"자와 비슷한 모양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 두 번째 수기 中

두 번째 사진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 묘사와 일치한다. "교복 차림인데 등나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웃고 있다."는 묘사가 바로 그러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웃음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웃음을 띄고 있다.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를 다케이치에게 들키고, 이어서 검사에게까지 들킨 후 지었을 멋적은 웃음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실제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도 애인과 동반 자살 시도를 하였다가 혼자만 살아 남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가 있었다. 아마도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버지께서 힘을 써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혼자만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같이 죽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했을까?

세 번째 사진 - 죽을상



정확하게 세 번째 사진 묘사와 일치하진 않지만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져왔다.

"진짜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시게코는 다를 줄 알았는데, 이 아이에게도 '느닷없이 쇠파리를 때려죽이는 소의 꼬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 세 번째 수기 中

세 번째 사진에 대하여 글쓴이는 '말하자면 화롯불에 양손을 쬐다 그대로 죽은 듯, 음산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서 지극히 평범하고 이상한 얼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글쓴이인 다자이 오사무는 머리말을 쓰는 순간에 자살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스스로의 사진에 대해서 "죽은 듯"이라고 마치 시체를 보듯 평가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의 페르소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자가 있는 경우 이를 매우 부끄러워 하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人間失格과 人間合格,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가?

인간 합격(人間合格)은 인간 실격(人間失格)의 antonym(반대말)인가 synonym(동의어)인가? 삶(life)와 죽음(death)는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중간단계가 없으므로 완전한 antonym(반대말)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뇌사 등 애매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이 아니면 인간 실격(人間失格)이고, 인간 실격(人間失格)이 아니면 인간 합격(人間合格)으로 중간이 없는 개념인가? 누구나 가면, 즉 페르소나를 쓰고 있고 인간 합격(人間合格)과 인간 실격(人間失格)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인간 합격이라고 단언해서도 아니될 것이고 가면이 벗겨 졌다고 인간 실격이라고 자조하고 것 역시 인간의 본질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antonym(반대말)도 synonym(동의어)도 아니지만 인간 합격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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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모임 - 책, 수다에서 토론까지
강원임 지음 / 이비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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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시작

 나는 언제나 천국이 어떤 종류의 도서관일 거라고 상상해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서관에 가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천국"이라는 느낌보다는 엄청난 양의 장서에 기가 눌리기도 하고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서울대 추천 100대 도서 이런 책들을 대출 받아 보다가 조금 읽다가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처음에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읽기를 시작하는 것은 책 읽기를 시작하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된다.


독서모임의 어려움

그러나 독서모임의 경우 다양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지식의 수준, 그리고 좋아하는 책의 장르 등이 각자 다르므로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하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독서모임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실제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는 경우에도 어떤 방향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해 나가야 할 지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의 책모임

이 책은 평범한 주부였던 글쓴이가 주부들만의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또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점들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책과 관련없는 수다가 많은 경우, 무성의한 책 선정, 그리고 독서모임 안에서 친목 모임을 계속 만드는 리더의 문제점, 논제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 실제 독서모임을 하면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독서모임을 이끌어 가는 리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논제의 중요성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논제"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정 "논제"를 제시하는 경우 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독서모임이 활발하게 이어지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다만, 이런 "논제"를 만드는 것은 해당 책, 또는 글쓴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고서는 요원한 일이므로 리더의 경우 미리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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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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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참 공교롭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자그마한 인문/사회 독서 모임을 하는데 다음 달에 읽을 인물 혹은 책에 대해 의논하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혹은 <1984> 혹은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었다. 평소 나는 문학 작품을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었고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수필로 쓴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지 오웰의 글을 한 번 읽어 보기를 소망했었다. 모든 남자가 그렇듯이 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고 특히 기존 전쟁과 다른 양상을 보인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었다.

 일단 조지 오웰의 수필을 모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간단히 [스페인 내전]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는 순리인듯 싶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시대 상황이나 배경을 미리 알아야 이해하기 쉬운 법이다. 스페인 내전은 기존의 전쟁과 양상이 다른 전쟁이었다. 적법한 선거에 의해 세워진 좌파 정부와 우파 군부 반란군 사이에 의해 일어난 전쟁으로 각국이 참전하여 제 2차 세계대전 전초전 성격을 띄었으며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군부 반란군에 대항하여 정부 편에서 총을 들었다. 많은 지식인들은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지 오웰처럼 총을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블로 피카소처럼 게르니카 학살에 대한 분노로 <게르니카>라는 명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앤터니 비비가 쓴 <스페인 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감히 말하건대 국내에 소개된 책 중에서는 가장 스페인 내전에 대해 객관적으로 잘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을 살펴보면 조지 오웰의 수필 중에서 29편을 뽑아 소개한 책이다. 사실 조금 안타까운 점은 조지 오웰의 모든 수필을 전부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옮긴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29편을 선정하여 [편역]한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되었건 총 29편의 에세이는 각각 독립적인 것이므로 인상깊었던 <과학이란 무엇인가?>, <정치와 영어>, <어느 서평자의 고백>, <나는 왜 쓰는가> 이렇게 총 4편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한다.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조지 오웰은 일반 대중에게 좀 더 많은 과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J. 스튜어트 쿡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물론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근거는 빈약한 점이 사실이다.(p.217) 또한 우생학으로 대표되는 '인종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인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은 "대중에 대한 과학 교육이 결국 문학이나 역사를 희생해가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등을 더 가르치는 것이 될 경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주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p.218)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과학 교육을 받은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인문/사회 과학이 자연 과학보다 높은 수준의 것이라는 편견이 들어간 주장이며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문/사회 과학을 주로 배운 사람들 중에 악인이 없는가? 조지 오웰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히려 이런 주장은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전인 교육, <통섭> 등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 시대에는 이렇게 구분 지어 하나 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반쪽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불과할 것이다.  

 이어서 <정치와 영어>라는 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1.익히 바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네는 반드시 뺀다. 3.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 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라는 자신이 글을 쓰면서 6가지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즉 그는 지금의 정치 혼란이 언어의 타락과 결부되어 있으며, 언어 문제부터 건드림으로써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바(p.275) 오늘날 아무나 '정의', '공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 현실에서 한 번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글쓴이의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서평자의 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이라고 봐도 옳겠다. 나 역시 1년에 100여권의 서평을 써 왔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책을 읽고 정리하기 위해 서평을 써 왔지만 시간이 흐르니 일종의 직업과 같이 되어 버려 진짜 제대로 된 서평을 쓰려면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후 써야 하지만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다가 아무래도 공짜로 책을 제공받고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나쁜 말을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상황 하에서도 되도록 정당한 평가를 하고 단순히 책 내용을 요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서평을 쓸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따름이다.

  <나는 왜 쓰는가>는 가장 유명한 수필로 여겨진다. 내가 이 서평의 제목을 이와 대구를 이루어 <나는 왜 읽는가>로 적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이 수필에서 지난 1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며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른바 순수한 문학 작품을 싫어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현실과 격리되어 <아름다움>만을 논하는 문학을 볼 때면 과거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하에 고통 받고 있을 때 현실을 회피하여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방조한 여러 작가들이 떠오른다. 물론 너무 정치적 색깔을 띄는 작품도 역겨운 것이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위선' 아래 현실을 외면하는 작품보다는 차라리 솔직해 보이는 것이 나아 보인다.

  결국 이와 비슷한 이유로 해서 <나는 왜 읽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읽는 것을 통해 불의를 감지하고 '의문'을 품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 Matrix의 명대사 "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가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하겠다. 

 앞서 살펴본 수필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와 같이 나 역시 냉철히 이 책을 평가하건데 비록 편역이나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던 많은 조지 오웰의 수필을 최초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식상한 표현이지만 강력 추천한다는 말 외에는 다른 단어를 찾기 힘들다. 뭐… 6번째 규칙에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된다면 위의 원칙들을 과감히 깬다는 규칙이 있는 바 조지 오웰이 무덤에서 일어나 내 서평을 읽는다고 해도 이런 표현에 대해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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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수첩 - 내 취향에 딱 맞는 125가지 위스키 구르메 수첩 6
성중용 지음 / 우듬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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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 나라의 위스키 음주 문화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즐기기 위한 술'이 아니라 '취하기 위한 술'을 마시는 우리 나라에서는 알콜 도수가 40% 이상 되는 위스키는 취하기에 매우 좋은 술로서 우리 나라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른바 '폭탄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알콜도수 20% 이상의 독주는 거의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위스키 같은 독한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와인의 경우에는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위스키 같은 증류주의 경우에는 그런 효과를 얻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위스키는 '비싼 술'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누구를 접대할 때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술이기는 하나 취하기 위한 술로서 고급술임에도 불구하고 와인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 최초로 위스키를 마셔본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조니 워커 블랙라벨]이었는데 선배가 가져온 것을 그냥 길거리에서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셔본 것에 불과하였다. 당시에 든 생각은 이렇게 독한 술을 왜 마시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술 역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위스키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위스키에 대한 역사 및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다. 위스키는 보리를 증류한 것으로 위스키 특유의 거칠고 연기 냄새가 나는 듯한 맛과 향은 이른바 피트(Peat)를 이용하여 보리를 증류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피트라 함은 우리 나라 말로 이탄인데 석탄의 일종인 이탄을 이용하여 증류하기 때문에 위스키 특유의 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약 40여 종의 위스키를 설명하고 있는데 주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스카치 위스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현재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이 스코틀랜드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코틀랜드가 가장 먼저 위스키를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피트가 풍부하여 위스키 제조에 좋은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날 최고의 위스키로 스카치 위스키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발렌타인 30년 산>을 가장 높게 치는데 블렌디드 위스키로 현재 최고의 위스키로 꼽히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좋은 위스키가 생산된다는 점이 놀랍고 한 때 우리 나라에서도 위스키를 제조하려고 하였으나 오랜 숙성 기간에 따른 재정 압박 때문에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위스키를 제조하지 않고 스코틀랜드에서 제조된 위스키를 블렌디드하여 수입하는 것만 이루어 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윈저><임페리얼>이 이렇게 생산되 위스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각 위스키 마다 구체적인 별점을 매기던지 혹은 가격을 표시해 주었으면 좀 더 유용한 책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이렇게 '취하기 위한 술'로 대접받는 위스키를 좀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얇고도 충실한 책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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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숨결
변택주 지음 / 큰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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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해서는 서평을 쓰기 개인적으로 난감하다… 만약 글쓴이를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면 법정스님이 2010년 3월 11일에 입적하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모든 책의 절판을 부탁한 이후 아래 책과 같이 상업적으로 법정스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책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작년부터 글쓴이가 법정 스님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고 글쓴이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로서 법정스님 법회의 사회를 맡아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법정스님의 최측근으로 법정스님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법정 스님 입적 후 전화통화를 통해 '법정 스님의 책이 모두 절판되는 이상 이 책 역시 출판되지 않는 것이 도리에 맞다'며 이 책 역시 절판시킬 것임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이런 저런 오해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비록 누구 때문에 '오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싫지만 이 상황에서는 이 단어 외에는 대체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업보가 아닐까? 그러나 한가지 확실히 해주고 싶은 것은 "최소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입적 이후 법정 스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려는 책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말씀이나 행적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여러 사안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꾸준히 '나눔''나'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법정 스님의 글과 비교하자면 법정 스님이 일상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로부터 쉽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면 이 책의 글쓴이는 좀 더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여러 역사적 이야기나 한자의 풀이 등에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사실 평범한 일상 생활에 이른바 <통찰력>을 발휘되는 경우는 일반인에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수양을 통해 눈이 띄여진 경우 조그마한 사건에서도 통찰력을 발휘하여 일반인이 찾아낼 수 없는 의미와 깨달음을 찾아내게 된다. 이 책에서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글쓴이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을 짚어 보면 소제목 <나눈 것만 남는다>에 나오는 4명의 아내를 둔 상인의 이야기이다. 4쪽에 걸쳐 있는 우화인데 결국 내가 지은 업만 우리가 어디를 가든 유일하게 우리를 따라온다는 것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부분만 읽어도 최소한 책 값 및 책 읽는데 소모된 시간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객관성을 띠었다고 믿어지면 그것을 합리(合理)라고 여긴다. 하지만 객관을 잘못 소화하면 주관을 잃게 된다. 그 속에 내가 없다. 무엇을 객관으로 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그 객관 위에 뚜렷한 주관, '나'가 바로 서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곧 옳은 것이라 여기곤 한다. 하지만 때론 '객관'이 바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을 글쓴이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바로 내가 바로 선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중언부언이 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법정 스님 사후 법정 스님의 이름에 기대 상업적으로 책을 판매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때가 때이니 만큼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 역시 글쓴이의 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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