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뇌
사이언스북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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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내가 맡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읽어야 할 [뇌과학] 책을 <e-멋진 책세계>의 박영진님의 도움을 받아서 목록을 작성해보니 자그만치 20권에 달한다… 이를 전부 다 읽으면 웬만한 의사 수준의 지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해야되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로서 내 성격이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생소한 [뇌과학]을 만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솔직히 별로 미덥지는 않았다. 물론 국내 자연과학 서적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이언스북스>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 제목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춤추는 뇌]라… 물론 뇌과학이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이긴 하지만 이렇게 제목만 그럴듯하게 만든다고 절대 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속된 말로 "꽉 차"있었다. 1장에서는 주로 앞으로 자주 나올 뇌의 구조와 이름, 그리고 담당 역활을 주로 설명하고 2장에서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3장에서는 기억과 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4장에서 여러가지 뇌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질병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정도만 보면 [뇌과학]에 대한 큰 그림은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쉽고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솔직히 [뇌과학]이 최근에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책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글쓴이의 탁월한 능력인지 아니면 <사이언스북스> 편집자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훌륭하게 [뇌과학]을 접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만 곳곳에서 <용불용설>을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정도 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획득성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시/공간 지각능력이 남성에 비해 부족한 것은 집에 남아 있던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이런 능력을 계발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p.68)고 말한 것이나 과학의 발달로 컴퓨터나 로봇이 인간의 머리를 쓸 일조차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 역시 가축처럼 작은 뇌를 가진 머리 나쁜 동물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p.332)라는 주장은 <용불용설>을 주장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외에도 글쓴이는 주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을 분석하는데 '우리가 쾌락 중추를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게 된다면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사람들이 분명 등장할 것이며 이는 점점 늘어나는 마약, 담배, 술 중독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과연 인간은 올스의 실험쥐보다 현명할까?'(p.106)라고 묻는 부분에서는 정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이런 장치가 개발된다면 우리는 1시간에 7000번이나 스위치를 누른 실험쥐보다 적게 누룰까? 그리고 인위적인 쾌락과 자연적인 쾌락을 구별할 수 없다면 인위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우리가 비난할 수 있을가? 그리고 과연 이것이 '자위행위'와 다를 것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컴퓨터 하드에 야동 없는 사람은 나를 돌로 쳐라'고 했는데 나는 과연 이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또한 이른바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대한 이야기도 서술하고 있다.(p.321) 이 책에서는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가 현재는 벽에 막혀있지만 계속 발전된다면 여러가지 뇌관련 질환의 불치병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이 책은 황우석의 사이언스 논문이 거짓으로 드러나기 전에 쓰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맨 뒷장을 넘겨보니 이 책은 '05.3.7에 출판된 것인데 아마도 황우석 박사의 거짓말이 밝혀지기 전에 쓴 내용같이 보인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아쉬워하는 것이 황우석 박사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 또한 청운의 꿈을 안고 지금쯤 생명공학과 실험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이 책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는 뇌의 활동 또한 궁극적으로 '적자 생존 및 성선택'이라는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면서 [뇌과학]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뇌과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굉장히 쉽게 서술되어 있다. 현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뇌과학]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과 함께 시작하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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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건너는 법 - 서경식의 심야통신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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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멋진 책세계> 11월 정기 모임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읽어야 할 서경식 선생의 책은 아직도 많은데다가 앞으로 읽어야 할 뇌과학 관련 서적도 대략 20권 정도니… 정말 이제는 책에 쓰인 글씨가 싫어지려고 하고 있다.(앞으로 글쓴이의 호칭을 그냥 서경식 선생이라고 할 생각이다. '님'자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서경식 선생이 반대하였으므로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는다.(p.183)) 그리고 앞서 읽은 서경식 선생 책이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 책도 읽어 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을 보면 알겠지만 표지에서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며 책 내용 또한 <한겨례>에 격주간으로 실던 글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런 글을 하나로 묶는 주제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다른 곳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서 내놓은 책은 너무 다양한 주제를 다루다보니 난잡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이런 점은 이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날짜 순으로 배열하다보니 앞에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어느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염려, 팔레스타인 문제, 홀로코스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차라리 이렇게 3~4개의 주제로 각 챕터를 구성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초판 1쇄이다 보니 오타도 2군데에서 보이는 등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많은 것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특히 <베트남전쟁은 끝났는가>라는 글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사실 본인도 한 때 베트남전쟁에 대한 책을 구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전쟁>은 잊혀진 전쟁인지 대형 서점에 가도 관련 서적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이란 책을 찾아서 읽게 되었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전쟁을 통해 베트남 국민이 겪은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 오직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어떻게 베트남이 이길 수 있었을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경식 선생의 이 글을 읽고 나서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한동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오직 '전쟁'을 그저 전술과 전략이란 면에서만 고찰했을 뿐 전쟁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다니… 그리고 한국 또한 분명 베트남 전쟁의 가해자이고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때(p.99)가 올 것인데 과연 우리는 일제시대에 대한 보상 요구를 무시하는 일본과 달리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책에서는 프리모 레비로 대표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대량학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걱정이 함께 하는데 솔직히 아직 프리모 레비의 책(<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를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일종의 '산업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오히려 이것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심까지 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각 내용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양자를 묶어서 통합된 시각에서 서술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는 좀 더 좋은 길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경식 선생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선활동이나 선행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p.115)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본인도 평소에 지하철이나 길을 다닐때면 많은 구걸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학생이라는 점을 핑계로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이동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친구와 만나서 먹는 술값은 아까워 하지 않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자선이나 선행 따위는 그런 죄의식이 깊이 밴 무력감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서경식 선생에 비해 나는 행동으로부터 '위선'이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선이 위악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은 비록 주제가 산만하고 오타가 곳곳에 보이긴 하지만 서경식 선생의 관심사와 생각을 한 번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서경식 선생을 만나는 입문서적으로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다음에 개정판이 나올 때는 제발 오타 좀 수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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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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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본인의 생일에 <e-멋진 책세계>의 돌레인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이다. 원래 11월 정기 모임에서 "서경식"선생님을 읽기로 했기 때문에 책을 중앙도서관에서 빌릴까 생각해 보았지만 서경식 선생님의 책은 전집으로 모으기로 결심했었으므로 내 생일을 기회로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모으게 되었다. 역시 돌레인님께서는 책 안에 간단한 메세지를 적어서 주셨는데 이렇게 책을 선물로 받을 때 표지를 넘겨서 과연 어떤 글이 써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 나를 즐겁게 한다. 돌레인님께서 나에게 주신 책에 쓰신 대로 되기 위해서는 계속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해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특별히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가 서경식 선생님의 책 중에서도 강력히 추천한 것이라서 굉장히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별 5개 만점에 3개를 준 것을 알면 보나마나 눈을 휘둥그레 뜰 선배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지만 분명히 나의 기대보다는 별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작이라는데 흠… 수필이라고 하면 뭔가 감동적인 것을 기대하는데 별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침략자의 나라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 서경식 교수의 독서 편력영혼의 성장기를 묶어서 낸 책이다. 사실 일반적인 독서기는 너무 개인적인 감상으로 흐르거나 단지 '나는 이렇게 어려운 책을 어려서부터 읽었다'는 자기 자랑에 치우치기 쉽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반적인 독서기와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주로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한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런 책을 통해 자신이 재일조선인 2세로서 일본에서 겪어야 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주 내용을 이룬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재일조선인은 조선과 일본 양 쪽에서 버림받고 차별받는 2등 국민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재일조선인의 귀국 또한 남한, 북한, 일본 간의 묘한 역학관계 때문에 쉽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중학교 때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돌이켜 보면 정말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본인의 경우 중학교 시절에 <드래곤 라자>, <영웅문>, <소오강호> 등 판타지와 무협 소설을 밤새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이에 비하면 서경식 선생님이 읽은 책은 현재 내가 봐도 읽거나 심지어 들어본 책도 아니다.

 그리고 서경식 선생님은 "얄미운 녀석은 다름 아닌 나 자신"(p.120)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 '대사'를 위해, 혹은 다른 무엇을 위한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지만,

   결국 '엘리트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한 것은 아닐까?

   나는 마음속으로 고상한 중산층 속으로 잠입할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나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나몰라라 배신하지는 않을까?

    아니, 나는 벌써 그들을 배신했는지도 모른다."

라는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이른바 386운동권이 이를 바탕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후에는 쉽게 '변절'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으며 졸업할 때만 되면 그렇게 비판하던 기득권층에 스스로의 학벌을 바탕으로 이에 들어가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 또한 흔하다. 나도 과연 현실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계속된 독서와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인다. 오직 초심을 잃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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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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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책을 읽는 방법 중에는 어떤 한 가지 주제를 잡고 이와 관련된 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어나가는 방법과 어떤 한 사람을 읽어나가는 방법, 즉 한 글쓴이의 책을 모두 읽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이 책은 독서클럽 인문/사회 1기(지금은 <e-멋진 책세계>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08.11월의 인물로 "서경식" 선생님을 정하고 읽어가는 중에 처음 읽게 된 책이다. 기본적으로 인물을 읽어갈 때도 오래된 책부터 읽어나가면서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정석'이기 대문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하지만 "서경식"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부담되는 일이었다. e-멋진 책세계로 바뀐 이후 첫 시작을 여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독서클럽 인문/사회 2기 분의 메일에는 서경식 선생님의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을 읽고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보다는 젊은이의 호기심과 호승심이 나를 이끌었다. 아직 젊어서 겁이 없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단점이 있는 나는 아무리 내용이 거슬러도 담담히 이 책, 혹은 서경식 선생님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서경식 선생님을 완전히 이해/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 책은 200여쪽 정도로 얇은데다가 책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저 서양미술에 대한 에세이 정도로 보이지 않던가?

 그러나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미술 에세이가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인 [나의 서양미술순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나""서양미술"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글쓴이 서경식 선생님의 개인적 체험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며 불행한 가족사와 접점이 있는 책형도나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그래서 였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불행했던 한국 현대사가 떠오르고 서경식 선생님의 두 형님과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 온전히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를 바로 자신의 형이라고 부른 것(p.60)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고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는 바로 자신이라고 표현(p.110)하는 것은 바로 서경식 자신, 즉 "나"를 서양미술을 통해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바로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Christ showing his wound)]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두 손의 손가락들을 오른편 옆구리의 상처 속에 집어넣어 그것을 확 열어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글쎄…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 책이 바로 [상처를 보여주는 서경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 곳곳에 담겨있는 서승, 서준식 형님의 고초와 부모님의 침략자의 나라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그리스도와 서경식 선생님은 이렇게 상처를 보여줌을써 무엇을 알리고자 했던 것인가?

 어쨌든 서경식 선생님의 첫 책은 나에게는 그저 무난가헤 다가왔다. 아무리 남의 아픔에 민감한 사람이라도 남의 고통을 그대로 자신이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감정이 메마른 나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AT필드를 뚫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저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으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희망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역사 앞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을 다하고 계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올 뿐이다. 자 이제 다음에 읽을 책은 [소년의 눈물]인데 과연 나에게 어떻게 이 책은 다가올지 기대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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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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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경계에서 말한다(talking at the edge)"란 제목으로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에 연재되었던 "우에노 치즈코 - 조한혜정 서신교환"을 묶어서 낸 책이다. 조한혜정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해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는 도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주로 사회학과 여성학 연구에 집중하면서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두 명의 글쓴이의 약력을 보고 있으면 두 분 편지의 주제가 주로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름지기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책의 제목과 차례를 읽어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보아야 하는데 이 책의 제목과 차례에서는 전혀 "페미니즘"이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드를 내린 무방비의 상태에서 크게 한 방 맞았다고나 해야할까… 책의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특히 기존에 여성학 강의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단어나 주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으며 두 분의 거침없이 솔직한 말에는 조금은 "질리게" 되었다. 원래 한 번 책을 잡으면 도중에 잠시 접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 책은 절반 정도 읽은 후에 잠시 커피 한 잔 하면서 쉬는 것이 필요할 정도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나 잠시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거침 없는 말에 대해 "여자 답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정의하는 것 같아서 반성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편지인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 연구의 차이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학위나 교직 자격이 없어도 강단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라는 비관세 진입장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본 대학은 지금가지 국산품 우위를 지켜왔다(p.56)고 하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미국 박사 학위증은 성차별을 상쇄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 '증서'였음(p.74)을 고백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던 것도 이런 사대주의적 토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내 후배 중에 조한혜정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하자센터"의 캠프에 자신이 봉사활동 하는 포이동 판자촌 동생들을 데리고 참가한 친구가 있는데 그 후배 말로는 하자센터 역시 일종의 문화 엘리트들을 위한 장소며 그들을 키우기 위한 장소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조한혜정 교수도 미국 사대주의, 특히 엘리트주의에 기대서 페미니즘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재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는 조한혜정 교수가 요즘도 386세대를 보면 너무 규범적이거나 상대주의적 사고 훈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괴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가는 일(p.111)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국 386세대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조한혜정 교수나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올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한국의 386세대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는데 이런 결과가 바로 386세대의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편지인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이건 나름 유익했지만 이 부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로 많이 거북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우에노 치즈코(p.143)와 조한혜정 교수의 글(p.131)은 이것이 과연 남자가 여자를 비교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만약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둘을 비교하는 발언을 하면 기분이 나쁘고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데 비해 이렇게 남자를 여성이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머지 절반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개호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개호 보험"이란 지금까지 정당한 평가나 댓가를 받지 못하고 주로 며느리가 해왔던 노인 봉양을 국가에서 보험을 통해 이런 여성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좀 더 질 좋은 봉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가 남아있으며 자식을 일종의 노후 대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의미있는 제도로서 한국에서도 토론할 가치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은 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기존에 여성학 강의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했던 남자들로서는 이런 담론이 있다는 것이 대해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거북하겠지만 이런 책을 통해 좀 더 양성 평등에 다가갈 수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만 진행되었던 여성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어떤 연대가 가능한지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니 차마 만점은 주지 못하지만 이것은 내 취향으로 존중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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