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경계에서 말한다(talking at the edge)"란 제목으로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에 연재되었던 "우에노 치즈코 - 조한혜정 서신교환"을 묶어서 낸 책이다. 조한혜정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해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는 도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며 주로 사회학과 여성학 연구에 집중하면서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두 명의 글쓴이의 약력을 보고 있으면 두 분 편지의 주제가 주로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름지기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책의 제목과 차례를 읽어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보아야 하는데 이 책의 제목과 차례에서는 전혀 "페미니즘"이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드를 내린 무방비의 상태에서 크게 한 방 맞았다고나 해야할까… 책의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음을 고백해야겠다. 특히 기존에 여성학 강의를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단어나 주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으며 두 분의 거침없이 솔직한 말에는 조금은 "질리게" 되었다. 원래 한 번 책을 잡으면 도중에 잠시 접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이 책은 절반 정도 읽은 후에 잠시 커피 한 잔 하면서 쉬는 것이 필요할 정도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나 잠시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거침 없는 말에 대해 "여자 답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정의하는 것 같아서 반성을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편지인 "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 연구의 차이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학위나 교직 자격이 없어도 강단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라는 비관세 진입장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본 대학은 지금가지 국산품 우위를 지켜왔다(p.56)고 하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미국 박사 학위증은 성차별을 상쇄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 '증서'였음(p.74)을 고백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던 것도 이런 사대주의적 토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내 후배 중에 조한혜정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하자센터"의 캠프에 자신이 봉사활동 하는 포이동 판자촌 동생들을 데리고 참가한 친구가 있는데 그 후배 말로는 하자센터 역시 일종의 문화 엘리트들을 위한 장소며 그들을 키우기 위한 장소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조한혜정 교수도 미국 사대주의, 특히 엘리트주의에 기대서 페미니즘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재 편지 "선택할 수 없는 조국, 그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에서는 조한혜정 교수가 요즘도 386세대를 보면 너무 규범적이거나 상대주의적 사고 훈련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낼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지금의 386세대들이 가장 고심해야 할 괴제는 바로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을 길러가는 일(p.111)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국 386세대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조한혜정 교수나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올해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한국의 386세대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는데 이런 결과가 바로 386세대의 상대주의적 사고력과 심미적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세 번째 편지인 "여성의 급진성으로 다른 세상 만들기"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 이건 나름 유익했지만 이 부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로 많이 거북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우에노 치즈코(p.143)와 조한혜정 교수의 글(p.131)은 이것이 과연 남자가 여자를 비교하는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만약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둘을 비교하는 발언을 하면 기분이 나쁘고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데 비해 이렇게 남자를 여성이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머지 절반에서는 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개호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개호 보험"이란 지금까지 정당한 평가나 댓가를 받지 못하고 주로 며느리가 해왔던 노인 봉양을 국가에서 보험을 통해 이런 여성의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주고 좀 더 질 좋은 봉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가부장적인 사고가 남아있으며 자식을 일종의 노후 대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 의미있는 제도로서 한국에서도 토론할 가치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은 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기존에 여성학 강의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했던 남자들로서는 이런 담론이 있다는 것이 대해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거북하겠지만 이런 책을 통해 좀 더 양성 평등에 다가갈 수 있으며 한 국가 내에서만 진행되었던 여성운동이 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어떤 연대가 가능한지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니 차마 만점은 주지 못하지만 이것은 내 취향으로 존중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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