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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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운명이란 것이 존재할까? <e-멋진 책세계> 12월의 인물로 칼 세이건(Carl Sagan)을 선정해서 국내에서 번역된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읽고 '08.12.9(금)에 상암동 독서 아카데미에서 독서 모임을 가졌는데 바로 다음날 12월 20일이 칼 세이건 서거 12주기가 되는 날이였고 12월 20일 네이버 오늘의 책에 바로 이 책 [코스모스(Cosmos)]가 선정되었다. 이를 보면 흔히 어떤 알지 못하는 미지의 힘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비과학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던 칼 세이건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우연이 모여서 필연처럼 보이게 된 것 뿐이겠지….

 어쨌든 이 책은 수많은 권장과학도서 목록에 언제나 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양장본의 경우 엄청난 크기와 두께, 그리고 학생으로는 심히 부담스런 가격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에 2006년에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를 맞아 저렴한 가격의 보급판이 출판되었고 평소 눈독 들이던 책이었기 때문에 지름신의 가르침을 쫓아 이 책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인간적으로 너무 두꺼웠다. 자그만치 700여 쪽 두께에 달하는 책을 보고 주눅이 든 나머지 자신있게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주의 광활함에 비해 지구가 얼마나 자그많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칼 세이건도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대 중요는 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라고 말하고 있다.(p.36) 얼마 전에 적외선 우주 복사를 연구할 끝에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 가량이라고 밝혀졌다.(약 ±1% 오차로 이를 밝혀냈는데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본인의 경우 이를 알고 나서 힘들거나 화난 일이 있을 때마다 우주의 나이와 본인의 수명을 비교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혜성 충돌에 대해 살펴보자. 얼마 전에 <딥 임팩트(Deep Impact)>란 영화가 큰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지구에 혜성이 충돌할 때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인데 실제 중생대 공룡 멸종을 이로써 설명하려는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점은 걱정 안 해도 좋다. 그 이유는 목성이 그 거대한 크기 만큼이나 강력한 중력으로 혜성이나 소행성이 내행성계로 향하는 것을 한 몸 희생해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혜성 조각 6개가 목성과 차례대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과연 이 사건에서 목성과 혜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책은 딱딱할 수 있는 우주 과학을 여러가지 시적 표현을 동원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압권이 바로 "새로운 진리의 아버지는 바로 시간이다"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비록 칼 세이건이 직접 쓴 표현이 아니고 1638년에 쓰인 존 윌킨스의 [달세계의 발견]에 있는 내용이지만 이 짧은 말 속에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말 같다. 과연 인류는 언제쯤 이렇게 광활한 우주의 끝을 알게 될까? 언제쯤 인류 외의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가? 이에 대해서는 오직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만 믿고 꾸준히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효한 것 같다.

 이어서 칼 세이건은 6장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16~17세기 네덜란드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개방적 사고와 생활양식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과 개척의 정신은 네덜란드를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이다. 데카르트도 그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는데 그는 직접 굴절 망원경을 제작하여 다른 행성의 크기를 잰 인물이며 추시계를 발명하고 증기 기관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등 놀라운 인물이었다.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 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비록 과거와 달리 자꾸 학문이 분화되어 더 이상 이런 팔방미인이 존재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통해 자꾸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외계 문명을 찾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한 칼 세이건의 설명이 흥미롭다(p.620~621) 인류는 우리보다 진보한 외계 문명과 접촉하면 그들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킬까봐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칼 세이건은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으며 그래서 우리의 외계 문명 접촉에 대한 공포감에는 우리 자신의 죄의식이 담겨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성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진보된 문명이 있다면 그들은 문명으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다른 문명과 잘 어울려 사는 법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야 말로 인류의 종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두 가지 규칙을 이야기한다.(p.660)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과학하기에 있어서 절대 진리일 것이다. 이런 절대 진리가 무시된 경우는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익히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멀게만 보이던 우주를 잘 소개해주는데 성공했다. 괜히 영어로 쓰인 과학 서적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수많은 오타가 보이는데 보급판을 내면서 번역자가 수정했다고 하지만 계속 보이는 오타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다음에 개정판을 낼 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오타와 비문을 수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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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안인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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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칼 세이건(Carl Sagan)'을 처음으로 알게 된 시기는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대학교 3학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평소 무협/판타지를 제외하고는 책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2년 간의 군생활 기간 동안 '글자', '운동', '먹을 것'의 부족한 공급 때문에 이것들에 대한 엄청난 갈망을 가지고 전역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남들보다 2년간 뒤쳐졌다는 생각은 살인적인 독서량을 통해 단시간에 <잃어버린 2년>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책 앞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발견하게 된 책이 바로 <코스모스(Cosmos)>였다. 권장 과학교양도서 목록에 있었던 이 책은 중앙도서관에서 수많은 예약자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으며 힘들게 손에 넣은 책은 엄청난 크기와 두께, 무게로 인해 단 1쪽도 읽지 못하고 대출 기간이 다 되어 반납하게 만들었다.

 <코스모스(Cosmos)>는 책 수집벽이 있는 나로서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며 이미 그 두께에 질렸기 때문에 칼 세이건을 만나는 일은 하염없이 뒤로 미뤄졌다. 그러던 중 저렴한 보급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름신의 가르침을 받들어 구입하게 되었으나 보급판 또한 700쪽에 달하는 양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e-멋진 책세계>의 '08.12월 인물로 칼 세이건이 선정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칼 세이건의 책들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읽게 된 책이 비록 칼 세이건의 저작은 아니지만 일종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이다. 그런데 이 책 또한 700여 쪽이나 된다! 물론 평전의 두께가 그 사람의 위대함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과학자'의 평전이 이렇게 두꺼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세이건의 생애와 연구성과, 관련 인물, 심지어 사생활마저도 글쓴이의 엄청난 노력과 연구 끝에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이란 인물에 대해 드는 생각은 그는 굉장한 자유주의자이고 과학의 대중화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하였으되 과연 과학자로서 유능하였는가는 의문이다. 주류 과학계가 그동안 칼 세이건을 이미지와 행운에 근거해 그를 공명심에 빠진 뻔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어보인다.

 그렇지만 칼 세이건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론들에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피하라고 권했는데(p.211) 이는 자신의 이론이 무너질 때 그 사람도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경계하기 위해 한 권고였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돈? 명예? 사랑? 과학자들처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어떤 특정한 이론이나 가치 기준 아래 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만약 자신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것들 - 돈 또는 명예, 혹은 그 어떤 무엇이든 -이 사라진다면 우리 역시 무너져버리지 않겠는가?

 이어서 칼 세이건에 대한 극단적 평가의 원인인 대중화와 독창적 연구와의 괴리는 정말 좁히기 힘든 것 같다. 대중화가 인기가 없는 원인이 칼 세이건은 단순한 시기심 때문이라고 말했지만(p.464) 실제 원인은 대중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 연구를 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주류 과학계의 인식이었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 나라 과학계에서도 지배적인 정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이나 대중적 책 집필이 정당한 연구 성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비록 독창적 연구 성과네은 못 미쳐도 어느 정도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성은 자기 자신을 재빨리 소모시키는 기묘한 진화라고 여겼던 슈클로프스키의 생각(p.557)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견해는 역사상으로 개발된 신무기는 반드시 사용되어져 왔고 우리는 끝없는 군비 경쟁 끝에 스스로 개발한 무기로 우리 자신을 태워 없앨 것이고 그 때문에 우주가 텅 비어 있으며 인류도 결국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지성을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는 진화라고 여긴 슈클로프스키의 생각은 우리에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 준다. 과연 인류는 이런 암울할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텅 빈 우주는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나의 수명 안에 이런 미래를 맞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보지만 인류 최후의 순간을 직접 맞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칼 세이건을 정말 잘 연구한 책이다. 책 뒤의 참고 문헌과 논문만 봐도 글쓴이의 노력에 감탄을 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에도 오타와 비문(非文)이 보이는데 700여 쪽에 달하는 책의 분량과 번역자에게 생소한 분야라는 것을 감안하면 수용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개정판이 나오면 이를 수정해서 온전한 <칼 세이건>을 만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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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지음, 김경윤 옮김 / 삼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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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재일 조선인' 2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도쿄경제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읽힌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글쓴이면서 '재일'이라는 존재 조건 속에서 네오 내셔널리즘의 발흥 등 일본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끈질기게 고발한 서경식 선생과 도쿄대학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에서 전쟁 희생자들의 증언과 그들에 대한 기억을 무화시키려는 일본 내셔널리스트들의 논리의 허구성을 통박한 바 있는 다카하시 테츠하(高橋哲哉)간의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를 모은 책이다. 

 특히 일본에서 점점 네오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고 평화 헌번의 요체를 이루는 교전권을 포기한 헌번 9조의 수정을 기본으로 한 '일반국가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은 전쟁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면서 일본의 전쟁 책임 인정 및 책임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 그리고 전쟁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통해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다만 이 들의 주장은 일본 내에서 점점 소수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타카하시 테츠하가 말했듯이 삼무주의(三無主義 : 젊은 층의 행동 양식을 지칭하는 말로 무책임, 무기력, 무관심을 일컬음)라든지 미이즘(me-ism :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가볍게 지칭하는 말)이 젊음이와 학생을 지배하고 있으며(p.32) 자연적 시간의 논리(Chronology)에 의해 점점 전쟁의 기억이 잊혀지고 있으며 역사를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나가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타카하시 테츠하는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p.57) '과거의 극복'이란 이름 아래 역사를 딱 잘라 정리하려는 시도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p.44)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역사를 책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계속 극복되지 못하고 잊을만 하면 계속 되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사과가 있다면 '과거의 극복' 또한 인정해야되지 않을까?

 그 밖에 인상 깊은 것은 1936년에 독일 함부르크 시에 있는 거대한 전쟁 기념비를 그대로 세워 둘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함부르크 시 당국은 이 기념비를 그대로 두고 다른 한쪽에 이것을 대항하는 반전 기념비를 세운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즉 "낡은 기념비를 부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적대시한 나머지 나치의 선전 도구가 어떠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데 필요한 증거물을 없애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는데(p.85) 이런 관점을 보여준 함부르크 시 당국의 견해에 정말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교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p.134) 내가 봉사활동 하는 <하자센터>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와 친분이 있어서 <하자센터>에도 많이 오는 분인데 서경식 선생과 다카하시 교수는 우에노 교수에 대해 일본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의 책임이 문제되는 장면에서 그것을 비켜 가기 위해 젠더나 직업이나 지위라는 다른 측면을 가져오는 논의는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내셔널리즘의 철저 비판을 지향하는 우에노 씨답지 않게 묘하게 일국적/일본 중심적인 관점에 서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역시 우에노 치즈코 교수도 이런 약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여성 지도자/지식인 풀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본인의 경우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에 갈 때 경기 전에 하는 국민의례를 무시하는데 사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이승만 개새끼처럼 혼자 살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친 놈도 있고 박정희, 전두환처럼 말 하기도 더러운 새끼도 있고 현재 2MB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놈도 있다. 그래서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데 이는 미국에서 판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3년 독일 및 일본과 전쟁이 한창일때 바네트(Barnet)가의 사람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였는데 연방최고재판소는 지적/정신적 자유를 보장한 합중국 헌법 수정 1조, 14조를 근거로 국기에 대한 경례의 의무화를 위헌이라고 하여 경례 거부를 인정(p.183)했는데 이렇게 미국이 타락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치 않는 이유는 법이 바로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법이 과연 중심이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 책은 200쪽에 불과할 정도로 양이 적지만 <나의 서양미술 순례>같은 쉬운 에세이 책으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 책의 무게에 눌릴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절대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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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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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청춘의 사신(死神)>이라… 과연 이런 제목에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예술 서적 보다는 문학 서적의 제목으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말하길 <반시대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사람들은 시시각각 불합리하게 수명을 줄이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데 이것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자각할 수 없도록 유도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고 있기도 하며 화를 내도 안되고 울어서도 안되는데, 하물며 '감동'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라는 서경식 선생의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할 것이지만 최소한 자신은 이러한 현실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p.8)

 이에 대해서 나는 서경식 선생과 견해가 다르다. 물론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하다는 점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의 불합리에 대해서 스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찌라시들과 기득권층의 끊임없이 계속된 이념 교육으로 인해서 이런 부조리한 사회를 꿰뚫어 보는 눈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서경식 선생의 형님 두 분이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일정한 직업도 없는 처지에 유럽을 석 달 동안이나 여행하면서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정말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나에게 예술은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나 흐르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결과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p.10) 물론 서경식 선생이 두 분 형님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형님들 차입금이라도 넣어 드리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의문이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전반의 회화예술에 관한 에세이 31꼭지를 한 권에 모은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Beethovenfries : Die Feindlichen Gewalten)](1902)이 가장 인상 깊었다.(p.25) 오스트리아 미술관 지하실을 꽉 채우고 있는 이 벽화는 괴물 티폰과 그의 딸들인 '질병', '광기', ' 죽음', '욕망', '불순', '무절제'가 추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오히려 추상화보다는 이렇게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회화를 나는 더 좋아한다. 왜 구스타프 클림트는 괴물 티폰과 여러가지 악덕들을 벽화로 그려넣었을까? 서경식 선생 말대로 환희에 대한 난관이 아니라 파국에 대한 불안이 바로 이 작품을 낳았으며 그 후 2개의 커다란 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불안이 현실화 되었으며 이 큰 원숭이는 바로 언제든지 파국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예술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서경식 선생 자신의 입장에서 예술을 소개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성 아래에서 예술을 검토했지만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이 다른 예술 에세이 서적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서경식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책인 것 같다. 앞선 <서양 예술 순례>를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에도 맞고 일관성이 있어서 서경식 선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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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로부터 마음을 읽는다 - 어떤 뇌 이야기
오키 고스케 지음 / 전파과학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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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는 '뇌와 마음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탄생하여 분자를 포함하여 물질존재의 모든 것을 해명한 양자론과 20세기 후반에 탄생하여 신비하게만 여겼던 생명을 분자수준에서 해명한 분자생물학은 이제 인간의 뇌와 마음의 관계를 분자수준에서 해명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1980년에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가 실용화되면서 인간의 뇌에 어떠한 장해도 주는 일 없이 뇌내 분자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른바 <뇌과학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96년에 출판된 책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뇌과학을 고려할 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뇌로부터 마음을 이해하려는 일원론적 이해, 즉 뇌라는 물질계의 성질로부터 마음의 현상을 연구하려는 <뇌과학> 전반을 생략한 부분 없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뇌과학 연구에 필요한 장비부터 설명을 시작해서 뇌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되는 신경 세포에 대한 설명을 거쳐서 본격적인 신경에 대한 설명을 거쳐서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분자에 대한 설명 함으로써 이 책을 순서대로 읽다보면 자연스레 뇌과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온전히 획득하게 도와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호르몬과 같은 작은 분자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는데 이런 점은 기존의 뇌과학 서적과 다른 점이다. 일반적 뇌과학 서적은 주로 뇌의 각 부분이 담당하는 역할을 설명하는데 촛점을 두는 반면에 이 책은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어떻게 작용하며 그 분자가 담당하는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아직 이 때에는 뇌의 각 구조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연구가 미진해서 이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분자생물학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 듯하다.

 다만 인간의 창의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오토리셉터가 없는 A10신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p.48)은 굉장히 흥미롭다. 사실 인간의 창의력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은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철학, 신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졌었다. 그런데 오토리셉터가 없기 때문에 쾌락을 담당하는 A10신경이 마이너스 피드백을 받지 못하므로 이는 결국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창의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추측하는 글쓴이의 생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이 책은 비록 오래되기는 했지만 분자생물학양자론을 통해서 <뇌과학> 전반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뇌과학>을 감안하면 이 책을 나중에 읽게 되면 오히려 헷갈릴 가능성이 있으니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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