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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평점 :
먼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청춘의 사신(死神)>이라… 과연 이런 제목에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예술 서적 보다는 문학 서적의 제목으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말하길 <반시대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사람들은 시시각각 불합리하게 수명을 줄이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데 이것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자각할 수 없도록 유도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고 있기도 하며 화를 내도 안되고 울어서도 안되는데, 하물며 '감동'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라는 서경식 선생의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할 것이지만 최소한 자신은 이러한 현실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p.8)
이에 대해서 나는 서경식 선생과 견해가 다르다. 물론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데 불리하다는 점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의 불합리에 대해서 스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찌라시들과 기득권층의 끊임없이 계속된 이념 교육으로 인해서 이런 부조리한 사회를 꿰뚫어 보는 눈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서경식 선생의 형님 두 분이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일정한 직업도 없는 처지에 유럽을 석 달 동안이나 여행하면서 여러 예술가의 작품을 보는 것은 정말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나에게 예술은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나 흐르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결과 나는 살아 있을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p.10) 물론 서경식 선생이 두 분 형님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형님들 차입금이라도 넣어 드리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의문이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전반의 회화예술에 관한 에세이 31꼭지를 한 권에 모은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베토벤 프리즈 : 적대하는 힘(Beethovenfries : Die Feindlichen Gewalten)](1902)이 가장 인상 깊었다.(p.25) 오스트리아 미술관 지하실을 꽉 채우고 있는 이 벽화는 괴물 티폰과 그의 딸들인 '질병', '광기', ' 죽음', '욕망', '불순', '무절제'가 추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오히려 추상화보다는 이렇게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회화를 나는 더 좋아한다. 왜 구스타프 클림트는 괴물 티폰과 여러가지 악덕들을 벽화로 그려넣었을까? 서경식 선생 말대로 환희에 대한 난관이 아니라 파국에 대한 불안이 바로 이 작품을 낳았으며 그 후 2개의 커다란 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불안이 현실화 되었으며 이 큰 원숭이는 바로 언제든지 파국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예술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서경식 선생 자신의 입장에서 예술을 소개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성 아래에서 예술을 검토했지만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이 다른 예술 에세이 서적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서경식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책인 것 같다. 앞선 <서양 예술 순례>를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에도 맞고 일관성이 있어서 서경식 선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