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지음, 김경윤 옮김 / 삼인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재일 조선인' 2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도쿄경제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읽힌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글쓴이면서 '재일'이라는 존재 조건 속에서 네오 내셔널리즘의 발흥 등 일본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끈질기게 고발한 서경식 선생과 도쿄대학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에서 전쟁 희생자들의 증언과 그들에 대한 기억을 무화시키려는 일본 내셔널리스트들의 논리의 허구성을 통박한 바 있는 다카하시 테츠하(高橋哲哉)간의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를 모은 책이다. 

 특히 일본에서 점점 네오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고 평화 헌번의 요체를 이루는 교전권을 포기한 헌번 9조의 수정을 기본으로 한 '일반국가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은 전쟁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면서 일본의 전쟁 책임 인정 및 책임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 그리고 전쟁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통해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다만 이 들의 주장은 일본 내에서 점점 소수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타카하시 테츠하가 말했듯이 삼무주의(三無主義 : 젊은 층의 행동 양식을 지칭하는 말로 무책임, 무기력, 무관심을 일컬음)라든지 미이즘(me-ism :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가볍게 지칭하는 말)이 젊음이와 학생을 지배하고 있으며(p.32) 자연적 시간의 논리(Chronology)에 의해 점점 전쟁의 기억이 잊혀지고 있으며 역사를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나가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타카하시 테츠하는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p.57) '과거의 극복'이란 이름 아래 역사를 딱 잘라 정리하려는 시도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p.44)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역사를 책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계속 극복되지 못하고 잊을만 하면 계속 되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사과가 있다면 '과거의 극복' 또한 인정해야되지 않을까?

 그 밖에 인상 깊은 것은 1936년에 독일 함부르크 시에 있는 거대한 전쟁 기념비를 그대로 세워 둘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함부르크 시 당국은 이 기념비를 그대로 두고 다른 한쪽에 이것을 대항하는 반전 기념비를 세운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즉 "낡은 기념비를 부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적대시한 나머지 나치의 선전 도구가 어떠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데 필요한 증거물을 없애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는데(p.85) 이런 관점을 보여준 함부르크 시 당국의 견해에 정말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교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p.134) 내가 봉사활동 하는 <하자센터>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와 친분이 있어서 <하자센터>에도 많이 오는 분인데 서경식 선생과 다카하시 교수는 우에노 교수에 대해 일본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의 책임이 문제되는 장면에서 그것을 비켜 가기 위해 젠더나 직업이나 지위라는 다른 측면을 가져오는 논의는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내셔널리즘의 철저 비판을 지향하는 우에노 씨답지 않게 묘하게 일국적/일본 중심적인 관점에 서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역시 우에노 치즈코 교수도 이런 약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여성 지도자/지식인 풀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본인의 경우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에 갈 때 경기 전에 하는 국민의례를 무시하는데 사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이승만 개새끼처럼 혼자 살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친 놈도 있고 박정희, 전두환처럼 말 하기도 더러운 새끼도 있고 현재 2MB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놈도 있다. 그래서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데 이는 미국에서 판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3년 독일 및 일본과 전쟁이 한창일때 바네트(Barnet)가의 사람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였는데 연방최고재판소는 지적/정신적 자유를 보장한 합중국 헌법 수정 1조, 14조를 근거로 국기에 대한 경례의 의무화를 위헌이라고 하여 경례 거부를 인정(p.183)했는데 이렇게 미국이 타락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치 않는 이유는 법이 바로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법이 과연 중심이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 책은 200쪽에 불과할 정도로 양이 적지만 <나의 서양미술 순례>같은 쉬운 에세이 책으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 책의 무게에 눌릴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절대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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