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소방관 - 희망 가계부 프로젝트
제윤경 지음 / 이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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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표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표지가 아름답고 그럴듯해 보이면 내용도 훌륭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함정에 빠져 있는 잠재 고객을 목표로 하여 출판사들은 표지를 되도록 예쁘게 만들고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해 양장을 하는 듯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선입견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이 책에서 그런 점을 더욱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인 <나의 특별한 소방관>은 마치 어린이 소방 교육 동화책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표지는 세련되지 못하며 글쓴이도 여자라는 점이 이 책을 쉽사리 꺼내들기를 망설이게 하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이 책을 먼저 읽으신 후 나에게도 이 책을 강력히 권해주셨다. 그래도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책의 양도 적당해 보이고 쉽게 읽히는 책 같아서 공부 쉬는 시간마다 한 마당씩 꾸준히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선입견에 의해 책장 한 구석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독수공방 해야 했던 이 책과 이 책의 글쓴이에 대해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 중국에서 한 나라는 흉노의 지도자에게 왕의 후궁 중 1명과 결혼시켜서 흉노의 중국 칩입을 막는 정책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왕이 자신이 총애하는 예쁜 후궁을 줄리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왕 체면에 수 많은 여자들의 외모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화가를 이용해서 후궁의 외모를 그려오도록 하였다. 이를 안 후궁들은 화가에게 뒷 돈을 찔러주면서 자신의 외모를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결과 절세미인이었던 한 후궁은 돈이 없어서 화가가 못 생기게 그려서 왕이 흉노의 지도자에게 이 후궁을 주었는데 흉노의 지도자가 갑자기 왕 앞에서 정말 고맙다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왕이 이 사실을 알고 매우 아까워 하였지만 이미 약속한 일을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씁씁해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도 나는 남의 손에 이 책이 가기 전에 읽었으니 최소한 이와 같이 후회한 일은 안 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학해도 무방할 정도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집 안에 존재하는 "불씨"를 제거하는 "가계 재정 소방관"을 등장시키는 우화를 통해 가정의 재정과 행복을 지키는 방법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이 책에서는 <재테크 신드롬>이라는 <나쁜 마법>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특히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으며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사람들과 빚내서 투자하는 것이 저금리 시대의 재테크라는 책을 쏟아내는 출판사들에게 "제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선동 좀 그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글쓴이는 머릿말에서 말하고 있다.(p.6)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미래를 낙관함으로써 많은 실패를 겪었는데 이렇게 우리를 만든 것이 바로 우리의 '욕심'이고 이런 욕심을 극단적인 물신주의로 끌고 같 것이 바로 '부러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조차 내 집값이 오르는데 영향 미칠 사람을 치명적인 도덕적 흠결 때위는 무시하고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예컨데 2MB가 당선된 것이나 노원갑에서 노회찬 대신에 홍정욱 따위가 당선된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정말 한국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나 또한 반성해야 한다. 나 역시 청약저축을 위해 실제 사는 곳은 신림동이었지만 주소는 노원갑으로 되어 있어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 또한 부동산으로 '억' 벌었다는 이야기, 판교 로또 이야기, 순식간에 몇백, 몇십 %의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 내 돈이 아닌 빚으로 투자에 성공한 레버리지 투자 전략을 들으면서 나 역시 욕심과 부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이 책의 글쓴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젊은 나이에 100억대 부자가 될 필요는 없으며 이런 나쁜 마법에서 깨어나 갑자기 수억대의 부자가 되는 엉터리 부자 꿈이 아닌, 매일 매일 조금은 더디지만 확실한 부자가 되는 꿈을 꾸라고 조언한다.(p.11) 이렇게 나로 하여금 '욕심''부러움'이라는 나쁜 마법에서 확실히 벗어나게 해 준 이 책과 글쓴이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앞으로 나도 글쓴이가 예로 들고 있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다른 애벌레를 밟고 가장 위에 오르려는 헛된 욕심을 버리고 껍데기를 벗는 고통을 자처해서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하기를 꿈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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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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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책이 바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이 책에서는 의사 부인 단 한 명만 빼놓고 전부가 눈이 멀고만 도시를 그리고 있다면 후속편인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거의 대다수가 "백지투표"를 내는 도시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전 편에서는 "눈이 먼" 상황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백지투표"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헷갈리는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권 포기는 민주 시민으로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백지투표"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단 투표는 했으니 투표권의 포기는 아니지만 아무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표권의 포기와 동일하게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글쓴이는 백지투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즉 기존 우익 정당, 중도 정당, 좌익 정당 모두에 대한 거부의 한 가지 방법으로 "백지투표"를 선택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한 우익 정권의 대응은 가관이다. 정상적이라면 재빨리 민심을 깨닫고 이에 맞게 개혁을 해야 하지만 민심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후가 있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시민을 감시하고 비상 상태를 선포하여 수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기까지 하며 심지어 국가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도 저버리고 수도에서 야밤에 수도에서 전부 철수하고 외곽 출입을 군대를 이용해서 봉쇄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 전쟁 당시 국민을 저버리고 도망친 이승만과 다를 것이 없다. 글쓴이가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의 파렴치한 행태를 알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을 스스로 적의 손에 던져놓고는 후에 점령군처럼 복귀하여 국민이 적에 부역했다고 그들을 단죄하였는데 이는 이 책에서 우익 정권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경찰과 소방관도 전부 수도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수도에서 강도, 강간, 살인 같은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이를 견디다 못한 국민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장군처럼 자신들을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수도에서는 강력 범죄가 일어나기는 커녕 너무나 평화롭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이에 우익 정권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지하철 폭탄 테러를 스스로 일으킨 후 테러의 배후가 백지 투표의 배후와 동일인이며 단지 4년 전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 부인을 배후로 지목하고 그녀를 암살한다. 마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이를 글쓴이가 9.11 테러를 염두해 두고 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의사 부인이 암살 당할 때 그녀의 눈물을 핥아주는 개 콘스탄테도 죽임을 당하는데 눈먼 남자가 "잘 됐군,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맨 앞에서는 "짖자, 개가 말했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눈먼 남자의 말을 보면 전 편에서 보였던 낙관주의가 비관주의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한 눈먼 남자가 바로 9.11테러 이후 복수심에 눈이 먼 미국인이고 우익정권은 부시를 비롯한 네오콘들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래도 정치적 메세지가 많이 들어간 만큼 전 편보다 완성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비관주의로 변했지만 나는 아직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짖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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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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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가장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십중팔구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해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분명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수요가 늘은 면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책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가 눈이 멀고 만 시대가 그려진다.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해보라. 만약 내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 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눈이 멀게 된다면? 과연 이 상황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앞서서 인간 이성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인간 본성이 과연 '추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가 바로 <현재>라는 것이 글쓴이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주장이다. 이 책 마지막에 의사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란 거죠."  

이런 의사 아내의 말이 바로 글쓴이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물론 극소수의 사람은 예외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2MB 정부가 서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보호에만 힘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익'이란 이름으로, 혹은 '체념'이란 이름으로 침묵한다. 바로 우리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아닐까?

 여기까지가 글쓴이의 의도겠지만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바로 올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컨데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맞게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서 '본다'. 이 중에서도 실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똥을 음식으로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지만 자신의 이익에 맞게 실제 보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바로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 아내"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눈먼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눈먼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모두가 눈 멀어 있고 나만 눈이 멀쩡하다면 나는 일종의 <신>이 될 것이다. 눈먼 사람들의 먹을 것을 언제나 뺏어 먹을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그들을 때리거나 죽일 수도 있고 소설 속에서처럼 먹을 것을 무기로 자신의 욕망을 쉽게 채울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2MB를 비롯한 한나라당/뉴라이트 일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 초반에는 안과 의사가 최초 눈먼 사람들을 진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최초 눈먼 사람의 눈은 지극은 정상이므로 시신경을 통해 시각 신호를 받아들이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해 "너희들의 뇌는 문제 있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너희는 전부 미쳤어"라는 작가의 독설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미쳐 있을까?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수용소 안에서 까패 집단이 식량을 독점하고 이를 무기로 수용소 안의 여자를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너무 힘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남자들이 먹을 것을 위해 여자들을 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여자들은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당신이 가겠나요?"라고 되묻는다. 만약 나라면 나의 아내 혹은 어머니, 딸을 먹을 것을 위해 그들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내 몸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나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겠다. 나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아내의 몸을 댓가로 구차한 삶을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상황이라면 나는 깡패 집단 전부, 혹은 단 한 명이라도 함께 죽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뒤에 아내에게 닥칠 보복을 생각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솔로였다면? 여자들은 나하고 관계가 있는 여자들이 아니니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녀들의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혹여 몸을 팔 수 없다고 하든 몸을 팔고 나서 얻은 식량은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든 말이다. 역시 매인 것이 없는 '솔로'는 굉장히 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며 선택할 필요 없이 오직 타인의 선택만 기다리면 되니 말이다.

 정말 이 책은 이 시대 속에서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져 주는 소설이다. 눈먼 자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 소설이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점은 희망적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도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는다는 점은 정말 비관적이다. 다만 나는 볼 수 있지만 눈먼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책 맨 마지막 장에 쓰여있는대로 "끊임없이 눈이 있으면 보고 볼 수 있으면 관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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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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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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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독서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대학 배치표>를 보게 되었다.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여 학벌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다니는 학교와 학과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계에서 당당히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른바 <Life science>를 유망한 학문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 나라도 미국과 같이 종교 근본주의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교육은 점점 경시되고 있는 듯 하다. 본인의 경우도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진화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책의 글쓴이인 장대익 선생과는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상태이다. 장대익 선생과 최재천 박사가 함게 번역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현재 쉽게 풀어쓰는 일에 잠시 몸 담고 있는데 아마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통섭의 번역자로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통섭의 경우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대익 선생이 과연 진화론을 대중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 이었다. 역시 나의 기대대로 이 책을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일반 생물학] 수준의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일반 생물학을 수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지 않는 일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진화론]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구성으로 특이한 점은 가상으로 현재 진화론의 쌍두마차인 굴드도킨스의 토론을 통해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글쓴이 장대익 선생은 뻔뻔하게 그 토론의 제목을 [다윈의 식탁]이라고 정하고 서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장대익 선생은 굴드보다는 도킨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큰 맥락에서 나도 도킨스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화의 속도와 양상><진화와 진보>에 대한 토론에서는 굴드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하나 둘 살펴보면 생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진화론이 받게 되는 공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예컨데 언어의 기원에 대해 '단지 그럴듯한 이야기 just so story'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설명하려고 한다든지(p.37),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을 동일시하여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도킨스에 대해 유전자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는 것 등이다. 분명 유전자 환원주의는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유전자 환원주의가 경험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증거가 없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단순히 거북하고 불쾌하다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윈에게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해밀턴 규칙(Hamilton's rule)>이 소개되어 있다. 즉 "rb-c>0"이라는 규칙인데 r=유전도, b=이득, c=손해 라는 것으로 이타적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의 전설적 생물학자 홀데인 J.B.S Haldane이 선술집에서 했던 "나는 2명의 형제나 8명의 사촌의 생명을 위해 언제나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유명한 일화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TFT 전략>이란 것도 소개하면 "먼저 배신하지 않되, 상대방의 배신에는 즉각적인 응징을 하고, 상대방의 이전 배신들에 대해서는 눈 감아 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상대방과 다시 만날 확률이 일정 이상되면 항상 배신을 때리는 전략에 비해 더 이득이 됨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딱딱한 진화론적 논점을 굴드와 도킨스의 토론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 준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도킨스의 다른 책들을 읽는다면 서양 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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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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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 시대에 인문 교양은 왜 필요한가?"라는 화둘 가지고 서경식, 노마 필드(Norma field), 카토 슈이치(加藤周一) 3명이 '03.7.12에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란 특별강연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특히 서경식 선생은 머릿말에서 교양과 괴리된 일본 대학생들에 대해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정답이 '왜'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그것도 한 가지 사고방식이지요"라는 상대주의적,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있다고 서경식 선생은 안타까워한다. 이로써 점점 신자유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인간의 "기계화""야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계화""야만화"가 계속될수록 국가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이를 위해 맹목적인 애국심(쇼비니즘)과 내셔널리즘을 강화하여 계급적 모순과 복지예산의 삭감 같은 절박한 현실적 문제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쉽다는 것이다.(p.79) 그 결과 '인간은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산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라는 신념에 의지하며 살아온 쁘리모 레비(Primo Levi)같은 인간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이는 결국 자신의 외부에 참혹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애써 그것을 못 본 척 하는 '역逆 아우슈비츠'에 같히고 말 것이라고 서경식 선생은 주장한다.(p.207~211)

 이 같은 현실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MB와 공정택으로 대표되는 '쓰레기'들은 자신들의 입 맛에 맞게 역사 교과서를 뜯어 고치고 경제난을 핑계로 부자들만을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의료 보험을 민영화하려고 시도하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 안달이 나 있따.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그런 쓰레기들만 난지도에 마아서 따로 나라를 만들어 지들끼리 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 듯 나도 대한민국을 떠날 생각이다. 그 이후 대한민국이 전쟁터가 되든 말든 절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양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자유>, <상상력>, <차별에 대한 반대> 이렇게 3가지 화두를 이야기한다. 본인은 시청 앞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외쳐도 잡혀 가지 않아야 진정 <자유>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막걸리 보안법'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혹시 나도 잡혀가는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이제 일명 '최진실법'까지 제정되면 인터넷 언론 자유는 그 종말을 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토 선생과 서경식 선생의 대담 중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의논하는 대목이 있다.(p.105~106) 흔히 우리는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한정하거나 특권층의 대물림 수단(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집안)으로 외국어가 이용되므로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생가간다. 그런데 카토 선생은 외국어를 공부함으로써 나 스스로 가둬두고 있는 국가와 사회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이나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아닐까?

 비록 이라크 전쟁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 이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지만 이럴수록 인문 교양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인문 교양은 다시 밝은 미래를 인류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그 대답을 스스로 찾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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