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근래 가장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십중팔구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해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분명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수요가 늘은 면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책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가 눈이 멀고 만 시대가 그려진다.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해보라. 만약 내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 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눈이 멀게 된다면? 과연 이 상황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앞서서 인간 이성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인간 본성이 과연 '추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가 바로 <현재>라는 것이 글쓴이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주장이다. 이 책 마지막에 의사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란 거죠."  

이런 의사 아내의 말이 바로 글쓴이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물론 극소수의 사람은 예외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2MB 정부가 서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보호에만 힘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익'이란 이름으로, 혹은 '체념'이란 이름으로 침묵한다. 바로 우리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아닐까?

 여기까지가 글쓴이의 의도겠지만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바로 올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컨데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맞게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서 '본다'. 이 중에서도 실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똥을 음식으로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지만 자신의 이익에 맞게 실제 보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바로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 아내"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눈먼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눈먼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모두가 눈 멀어 있고 나만 눈이 멀쩡하다면 나는 일종의 <신>이 될 것이다. 눈먼 사람들의 먹을 것을 언제나 뺏어 먹을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그들을 때리거나 죽일 수도 있고 소설 속에서처럼 먹을 것을 무기로 자신의 욕망을 쉽게 채울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2MB를 비롯한 한나라당/뉴라이트 일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 초반에는 안과 의사가 최초 눈먼 사람들을 진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최초 눈먼 사람의 눈은 지극은 정상이므로 시신경을 통해 시각 신호를 받아들이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해 "너희들의 뇌는 문제 있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너희는 전부 미쳤어"라는 작가의 독설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미쳐 있을까?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수용소 안에서 까패 집단이 식량을 독점하고 이를 무기로 수용소 안의 여자를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너무 힘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남자들이 먹을 것을 위해 여자들을 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여자들은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당신이 가겠나요?"라고 되묻는다. 만약 나라면 나의 아내 혹은 어머니, 딸을 먹을 것을 위해 그들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내 몸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나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겠다. 나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아내의 몸을 댓가로 구차한 삶을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상황이라면 나는 깡패 집단 전부, 혹은 단 한 명이라도 함께 죽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뒤에 아내에게 닥칠 보복을 생각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솔로였다면? 여자들은 나하고 관계가 있는 여자들이 아니니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녀들의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혹여 몸을 팔 수 없다고 하든 몸을 팔고 나서 얻은 식량은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든 말이다. 역시 매인 것이 없는 '솔로'는 굉장히 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며 선택할 필요 없이 오직 타인의 선택만 기다리면 되니 말이다.

 정말 이 책은 이 시대 속에서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져 주는 소설이다. 눈먼 자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 소설이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점은 희망적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도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는다는 점은 정말 비관적이다. 다만 나는 볼 수 있지만 눈먼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책 맨 마지막 장에 쓰여있는대로 "끊임없이 눈이 있으면 보고 볼 수 있으면 관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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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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