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독서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대학 배치표>를 보게 되었다.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여 학벌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다니는 학교와 학과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계에서 당당히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른바 <Life science>를 유망한 학문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 나라도 미국과 같이 종교 근본주의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교육은 점점 경시되고 있는 듯 하다. 본인의 경우도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진화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책의 글쓴이인 장대익 선생과는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상태이다. 장대익 선생과 최재천 박사가 함게 번역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현재 쉽게 풀어쓰는 일에 잠시 몸 담고 있는데 아마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통섭의 번역자로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통섭의 경우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대익 선생이 과연 진화론을 대중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 이었다. 역시 나의 기대대로 이 책을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일반 생물학] 수준의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일반 생물학을 수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지 않는 일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진화론]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구성으로 특이한 점은 가상으로 현재 진화론의 쌍두마차인 굴드도킨스의 토론을 통해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글쓴이 장대익 선생은 뻔뻔하게 그 토론의 제목을 [다윈의 식탁]이라고 정하고 서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장대익 선생은 굴드보다는 도킨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큰 맥락에서 나도 도킨스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화의 속도와 양상><진화와 진보>에 대한 토론에서는 굴드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하나 둘 살펴보면 생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진화론이 받게 되는 공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예컨데 언어의 기원에 대해 '단지 그럴듯한 이야기 just so story'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설명하려고 한다든지(p.37),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을 동일시하여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도킨스에 대해 유전자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는 것 등이다. 분명 유전자 환원주의는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유전자 환원주의가 경험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증거가 없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단순히 거북하고 불쾌하다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윈에게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해밀턴 규칙(Hamilton's rule)>이 소개되어 있다. 즉 "rb-c>0"이라는 규칙인데 r=유전도, b=이득, c=손해 라는 것으로 이타적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의 전설적 생물학자 홀데인 J.B.S Haldane이 선술집에서 했던 "나는 2명의 형제나 8명의 사촌의 생명을 위해 언제나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유명한 일화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TFT 전략>이란 것도 소개하면 "먼저 배신하지 않되, 상대방의 배신에는 즉각적인 응징을 하고, 상대방의 이전 배신들에 대해서는 눈 감아 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상대방과 다시 만날 확률이 일정 이상되면 항상 배신을 때리는 전략에 비해 더 이득이 됨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딱딱한 진화론적 논점을 굴드와 도킨스의 토론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 준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도킨스의 다른 책들을 읽는다면 서양 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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