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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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새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책이 바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이 책에서는 의사 부인 단 한 명만 빼놓고 전부가 눈이 멀고만 도시를 그리고 있다면 후속편인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거의 대다수가 "백지투표"를 내는 도시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전 편에서는 "눈이 먼" 상황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백지투표"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헷갈리는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권 포기는 민주 시민으로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백지투표"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단 투표는 했으니 투표권의 포기는 아니지만 아무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표권의 포기와 동일하게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글쓴이는 백지투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즉 기존 우익 정당, 중도 정당, 좌익 정당 모두에 대한 거부의 한 가지 방법으로 "백지투표"를 선택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한 우익 정권의 대응은 가관이다. 정상적이라면 재빨리 민심을 깨닫고 이에 맞게 개혁을 해야 하지만 민심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후가 있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시민을 감시하고 비상 상태를 선포하여 수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기까지 하며 심지어 국가로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도 저버리고 수도에서 야밤에 수도에서 전부 철수하고 외곽 출입을 군대를 이용해서 봉쇄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 전쟁 당시 국민을 저버리고 도망친 이승만과 다를 것이 없다. 글쓴이가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의 파렴치한 행태를 알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을 스스로 적의 손에 던져놓고는 후에 점령군처럼 복귀하여 국민이 적에 부역했다고 그들을 단죄하였는데 이는 이 책에서 우익 정권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경찰과 소방관도 전부 수도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에 수도에서 강도, 강간, 살인 같은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이를 견디다 못한 국민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장군처럼 자신들을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수도에서는 강력 범죄가 일어나기는 커녕 너무나 평화롭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이에 우익 정권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지하철 폭탄 테러를 스스로 일으킨 후 테러의 배후가 백지 투표의 배후와 동일인이며 단지 4년 전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 부인을 배후로 지목하고 그녀를 암살한다. 마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이를 글쓴이가 9.11 테러를 염두해 두고 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특히 의사 부인이 암살 당할 때 그녀의 눈물을 핥아주는 개 콘스탄테도 죽임을 당하는데 눈먼 남자가 "잘 됐군,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맨 앞에서는 "짖자, 개가 말했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눈먼 남자의 말을 보면 전 편에서 보였던 낙관주의가 비관주의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한 눈먼 남자가 바로 9.11테러 이후 복수심에 눈이 먼 미국인이고 우익정권은 부시를 비롯한 네오콘들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래도 정치적 메세지가 많이 들어간 만큼 전 편보다 완성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비관주의로 변했지만 나는 아직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짖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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