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정래의 소설에서는 항상 고향이 등장한다. 인간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대부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것이 소설임에도 그의 글에서는 어김없이 고향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같은 고향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임과 동시에, 고향에 자주가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찾듯 그들이 돌아가고자해도 쉬 돌아갈 수 없는 현실적 아픔이 베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정래의 소설은 그저 허구일수만은 없는 역사적 아픔이다.

이 소설로 인해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변에서 미군에게 붙잡힌 독일포로들의 심문장면에 독일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한 동양인. 사료에 그는 독일말도, 영어도, 소련말도, 일본말도 하지 못하는 조선인으로 밝혀졌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너의 국적은 어디인가?

고향에서 강제징집당해 일본군으로 끌려나간 그는 만주군으로 배속되고, 몽골초원에서 몽골군과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소련군으로 귀속되어 모스크바 사수방어선에 투입된다. 독일군에 밀리던 와중 포로로 붙잡히고 다시 독일군복을 입고 히틀러의 '대서양 방벽' 작업에 동방부대의 일원으로 투입되나, D-Day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미군에게 두 손을 들게되는 기구한 운명의 주체다. 다시 영국을 거쳐 미국 포로수용소로, 종전이후 얄타회담 결과에 따라 다시 소련으로. 그런 그에게 너의 국적은 어디인가를 묻는다면 총칼이 눈앞에 버젓한데 뭐라 당당히 내 조국을 말하겠는가?

고향 벌교를 눈 앞에 두고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지 못한 태백산맥의 '염상진'처럼 '신길만'은 지구 한바퀴를 도는 말도 안되는 운명 속에서도 끊임없이 고향을 아로새긴다. 그에게 고향은 결국 돌아가야할 조국이지만, 그를 떠돌게 만든 것도 결국 늙고지친 어머니 같은 힘없는 조국이었다. 휘몰아치는 세계사의 격변 속에 내동댕이쳐진, 아무도 지켜줄 수 없었던 외로운 영혼의 몸부림이다.

읽는 내내 아쉬운 점은, 너무도 안타까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는지 모를 일이나, 소설을 읽는 내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떠나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진지함이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극적인 그 삶에도 불구하고 글은 높낮이가 없이 그저 평탄하다. 그의 소설을 읽고 이렇게 허망한 적은 없었다. 내겐 너무 부족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옥에 살어리랏다 - 아름답게 되살린 한옥 이야기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 지음 / 돌베개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개 한국적 정서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마당넓은 집에서 사철 자연과 벗하고 싶고, 대청마루에 들누워 살랑거리는 바람에 낮잠 한숨 청하거나 식구들 모여앉아 앉은뱅이 밥상에 밥 한끼하고 숭덩숭덩 수박 쪼개 나눠먹는 정경이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우리의 음악을 국악이라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서양음악이 우리를 지배했듯, 우리의 집 형식을 한옥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의 곁을 떠난 집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집을 그냥 집이라 부르지않고 한옥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주류가 아니거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만큼 생활 속에서 멀어졌음을 반증하는 용어라 싶다.

내 마음 속에도 어릴적부터 오랫동안 그리던 집이 있었는데, 물론 고색창연한 고래등 같이 거대한 집은 아니나 어찌되었건 마당에 정원딸린 아담한 한옥에서 사는 꿈을 꾸고있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터는 물론이요, 집 지을 돈도 없는 것을.

생활속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음이라 생각된다.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이거나. 불편은 물리적 구조상 현대의 주택구조와의 비교일 것이고, 비효율이라 함은 집을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이 일반 주택에 비해 두세배 더 드는 경제적인 측면이 강할 것이다. 그렇게 멀어졌던 한옥이 다행이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주거공간으로서만의 한옥이 아니라, 문화공간, 상업공간, 업무공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은 거의 사진집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한옥사진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로 종로구 북촌일대의 한옥을 개보수하면서 건축주와 건축가의 교감으로 완성된 가옥 하나하나를 도면까지 펼쳐놓고 개보수한 과정과 의미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가회동의 e믿음치과, 안국동의 경인미술관과 같은 상업문화공간부터 한국 최초의 한옥청사라 일컬어지는 혜화동사무소 같은 업무공간까지도 한옥이 얼마나 훌륭한 공간을 연출하는지 보여준다.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이라는 저자들의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현대의 한옥을 가장 고민을 많이 한 건축가들의 글이라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아주 이상적인 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옥을 생활속에 되살리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한옥이 가졌던 수많은 장점들을 우리가 너무 쉽게 버렸던 탓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택은 그저 사람이 먹고자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인 이유에, 한옥은 방이 좁아도 마당을 가져 창을 여는 순간 마당이 방으로 들어오는 아주 여유로운 주택이며, 자연과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물건을 쌓아 과시하는 집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공간을 비울수록 채워지고 공간을 나눌수록 커지는 묘한 주택이라 도심에 꽉 막힌 우리의 삶에 풍요로움을 한껏 더해줄 수 있는, 그러하기에 한옥 자체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한옥에 살고있는 사람의 삶이 부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설계도면과 사진들을 비교해가며 꼼꼼히 본 탓인지 책을 덮고도 그 아름다운 많은 집들이 눈에 선하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한옥을 현대생활에 맞게 고치고 싶으나 방법을 모르는 이를 위한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참으로 충실히 잘 해내었고, 관심만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한옥에 접근할 것인지도 잘 알려줄 좋은 지침서임에 틀림없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5-2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다 크고 나이 더 들면 호젓한 곳에 한옥을 짓고 살자고 하는 옆지기와 저,
이 책이 무척 당깁니다. 그러잖아도 한옥에 관심이 많은 옆지기도 요새 한옥에
관한 무슨 책을 보고 있던데 이 책은 한옥을 현대식으로 꾸미는 것과 관련있는 것
같아 더 당기네요. 담아갑니다.^^

다락방 2007-05-2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동안 한옥에 살고싶다는 꿈을 꾸고 계셨나보군요. 눈에 선한 그 아름다운 집에 언젠가는 살게 되실거예요. 그나저나 글도 꼼꼼하게 쓰시지만 책도 꼼꼼하게 보시는군요. :)

dalpan 2007-05-2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저도 한옥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샀는데, 요것부터 읽었습니다. 읽었다기보단 좋은 한옥구경이었어요. 관련 건축사무소와 대목(목수)님들의 연락처도 있답니다. 빨리 애들 키우시고 호젓한 곳에서 넉넉히 사세요!

다락방님) 맨날 꿈꿉니다. 대청에 벌러덩 누워 낮잠자는 꿈. 얼마나 시원할까요? 잘 지내시지요?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김현경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 놓고 책장에 그냥 묻어둔지가 꽤 된 느낌이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펴낸 날짜를 보고는 나의 착각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초판인쇄 2006년 6월 1일. 얼마되지도 않았네? 하긴 작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이 책은 북한의 득을 본 것 보다는 아마 실이 더 컸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하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대전제에 확실한 금을 그어놨으니 온유하고도 느긋한 눈으로 북한을 보기보다 도끼눈 쳐든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만큼 북한 관련된 일은 부침이 심하다.

북한에 대한 연구자들 사이에 '북한학'이라는 말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가 있다. 흔히 학문으로 인정을 받기위한 연구결과에 있어 기초적인 '자료(Data)'의 존재와 이의 검증이 아주 기본적인 사항인데 북한에 대한 자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한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어딜가도 북한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북한에서 자료를 내놓지 않는 폐쇄적인 국가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하니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가짜다. 김정일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등과 같은 설(說)만 판을 칠 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에 비해 지금은 상당부분 서로의 정보들이 공개되고 교류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저자와 같은 북한전문기자들도 시인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정보에 상당히 목말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아주 가볍게 읽고 싶었던 반면에, 한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기자들의 눈에만 비친 비공식적인 사실들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런 욕구를 잘 충족시켜 주었다. 저자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한참 시끄러운 시절에 대학 다닐 때 '의식없는 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가는 돈 버는 셈치고 딱 2년만 일하자고 들어온 MBC, 북한전문기자도 친구가 그만두는 바람에 비어버린 자리 대타로 떼우면서 시작했지만, 1994년 영변 핵시설과 한반도 전쟁위기, 지미 카터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예정, 이를 10여일 앞둔 시점에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일련의 급박한 상황을 거치면서 저자는 남의 손에 전쟁이 운운되는 한반도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지? 북한 제대로 알기라는 복잡한 퍼즐게임에 손발을 쑤-욱 담그고 만다.

북한전문기자로서 북한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직업적 유리함에, 남북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시선, 투박한 남자들보다 훨씬 섬세한 여성의 시선으로 인해, 북한을 다루는 그 딱딱하고 불리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책은 한결 재밋어진다. 북한전문기자로서의 분석과 전망보다는 가슴으로 만나는 얘기들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남북간 도로/철도 연결을 두고 북한의 남침로를 열어주었다는 보수인사들의 우려를 현장을 방문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이해해 주면서도, 오히려 북한의 강경보수세력들은 북침로가 열렸다고 남쪽 보수인사의 호들갑보다 더한 북북갈등이 존재함을 담담히 말해주고, 남쪽은 길만 열었지 땅은 주지 않았지만, 북은 땅을 내놓고 군사시설 옮기고, 장전항과 같은 천혜의 최남단 군사항구마저 금강산 관광 때문에 남쪽에 내어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퍼주기보다 북으로부터 퍼오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주저없이 말한다.

(60p) 그렇다면 한 번 거꾸로 생각해보자. 금강산 연결 육로와 개성으로 가는 경의선 육로는 북한의 보수 진영과 군부에게 어떤 의미일까? (중략)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을 때 북한 군부의 위기감은 남쪽 보수 인사들의 걱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하늘 같은 '장군님' 명령이라 해도 개성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로 달리면 불과 2시간. 북침 진격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우회로도 없는 데다 공군력에서도 열세인 만큼 북한 군부의 고민은 더욱 컸다. 서부전선의 군사 작전 계획을 변경하고 포 진지를 이동한 뒤에야 어렵사리 도로를 개통할 수 있었다.

(62p) 금강산도 마찬가지다. 해상 호텔과 해상 골프연습장. 해수욕장과 횟집 등이 들어서 있는 장전항은 북한의 최전방 천혜의 군사항이다. 한 퇴역 군인은 과거 정보부대가 가장 갖고 싶어했던 정보 중 하나가 장전항 사진이라고 했다. 그런 장전항에 남쪽의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중략) 최전방 군사항을 내준 북한 해군의 속은 얼마나 쓰렸겠는가? (중략) 앞으로는 내륙 쪽 내금강까지 개방하기로 했으니 북쪽 군부의 걱정은 늘어가고 있다. 남쪽에서 오는 저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69p) 우리가 북한에 퍼주는 돈은 눈에 보이지만 남북관계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중략) 핵문제나 남북관계로 인해 북한만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는 주장은 분명 착각이다. 북한의 한 해 예산은 삼성전자의 1/4분기 매출 정도이다. 이렇게 엄청난 경제규모의 차이로 볼 때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안정으로 우리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는 북한이 얻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되로 주고 말로 퍼오는 격이다.

(202p) 2000년 8월, 평양 2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전금진이라는 본명으로 회담에 나왔다. 그는 베이징의 4성급 호텔 일반실이 아닌 북한 최고의 고려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회담을 지휘했다. 대동강 유람선상에서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1998년 회담을 진솔하게 회고했다.
"내 그때 조국으로 돌아가며 피눈물을 흘렸소. 남북대화 30년에 회담 탁자를 치며 고함을 치긴 그때가 처음이었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슬프고 분하게 했을까? 판문점에서 국회의장들과도 자신만만하게 회담하던 그는 굶주린 주민들을 대표해 베이징에 나와 비료를 얻기 위해 10여일이나 회담에 매달렸다. 회유도 해보고 소리도 쳐봤지만 그도, 그의 조국도 힘은 없었다. 받고자 하는 것은 많았지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패장이 돼 빈손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서 그는 없는 자의 설움을 통감했으리라.
서글픈 회상도 잠시, 그는 웃는 낯으로 남쪽 인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S선생이 가장 악질이었소. 그때 다 될 뻔했는데 거기서 트는 바람에 안 된 거요. 그런데 이제 다시 마주앉아 이렇게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지 않소."

그런 살아있는 뒷얘기들을 듣다보면, 결국 일이라는 것이 다 사람들이 하는 것인걸 하는 단순한 결론에 이른다. 험한 얘기들이 오가던 남북간 대화나 시시때때로 부침이 심했던 남북간의 상황은 저자의 말대로 뒤돌아보면 분명히 어렵고 험한 산길을 함께 꽤 많이 오른 셈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세기의 이벤트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서해안에서 해전이 일어나고 핵실험이 있어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니 쌍방의 신뢰만 지켜지면 앞으로 더 나은 일들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그런 희망을 얘기하고 그런 꿈을 꾸는데 가볍게 접근하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업시간에 교수가 서양철학을 얘기하던 중 뜬금없이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듣던 배 고픈 수업시간, 그것도 철학얘기에 웬 밥상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자연으로 귀의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에 대한 나의 지식은 거의 무지해 지금까지도 자세히 알지 못하나, 오늘 책장을 덮은 "농부의 밥상"(안혜령 글, 소나무)을 읽고 어렴풋하게나마 철학과 밥상이 관계지어짐을 뒤늦게나마 깨쳤으니 사람은 역시 배우고 볼 일이다.

흔히들 철학하는 사람에게 '철학이 밥 멕여주냐?'고 놀리지만, Well-being에 미친 시대에 철학없는 밥상에 Technique만 알려준들 근본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무슨 Well-being이 되겠냐싶다. 근본이 되어 다른 학문을 끌어주고 받쳐주는 철학처럼, 농사짓고 밥상차리는데 밑바탕으로 자리잡은 우직한 유기농 농부들의 '철학'은, 거칠어진 손발처럼 이쁘고 멋지지는 않으나 소박한 그들의 삶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첫번째 요소임에 틀림없다.
 
"농부의 밥상"은 유기농을 고집하는 대표농부(?) 10분의 집을 철따라 방문하여 그 분들이 집에서 차려주어 얻어먹은 조촐한 밥상을 소재로, 그들의 삶과 농사, 음식얘기로 채워놓은 글이다. 쌀이 쌀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농사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리고 스팸 굽고 라면이나 끓일 줄밖에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거의 전문서적(!)에 가깝다. 그렇다고 따분한 유기농에 대한 하염없는 칭찬이나,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요리책이 아닌 것은 그분들의 삶이 간편하고 단촐한 탓에 그런 사치를 부릴 게재가 아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글 또한 뭇 농부의 말처럼 담백하며 소박하다.

소개된 열 분의 면면이 공동체를 통해 유기농을 실현하는 분도 있고, 화학농법을 통해 깨친바가 있어 홀로 유기농을 고집하는 분들도 있으나, 모두가 한결같은 것은 자연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나 잘 살자고 땅과 한낱 미물들을 해하지 않는 기본 바탕은 모두 똑같다. 그 분들의 음식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틀리고 자연환경마다 틀리지만, 결코 낭비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하늘이 철마다 내려주는 지천에 널린 것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밥상차림의 기본이었다. 결국 자연의 섭리를 따라 오랜 세월 삶의 지혜로서 과거 방식들을, 깡그리 뒤집어 엎어버린 현대화의 미덕이 되레 그 분들 앞에서는 미개할 따름이다. 인위적인 삶과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오히려 무안하다.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부엌 또한 늘 밝아야 한다고 집 동쪽에 자리잡게 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다. (77p)

그러하기에 그 분들에게는 밥은 평화요, 보약이요, 나눔이요, 똥인 것이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어느 식당의 뭐가 맛있다는 소문만 나도 문전성시에 난리인데, 소위 맛집멋집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삼아 즐기는 나에게도 정작 부모님들 맛있는 것 드시게 한다고 모시고 가면 영~ 반응이 시원찮던 경험들이 많다. 너른 앞마당을 두고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철에 나는 나물과 풋고추에 된장, 김치 하나만 걸쳐도 식은 밥이 따뜻하게 느껴짐은 무위자연과 간소함에서 오는 마음의 풍성함에서 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출장길에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 서재에 꽂힌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살펴보니 5년 전 여름에 읽은 것이었지만, 2002년 여름이면 월드컵에 미쳐있어야 할 때인데도 나는 한가롭게 책을 들고 있었나 싶어 하품이 난다. 그해 가을에 인생에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던 새로운 공부를 한답시고 대학원을 진학했었으니 이 책도 그 시절에 분명 내게 뭔가를 던져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읽는 즐거움이 분명 있을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읽는 내내 새로움을 느꼈으니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고약하다. 싫은 기억들이 모두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그러하기에 고뇌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똑똑한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지표와 지수가 현재를 얘기하고 미래를 예견하며, 기억된 그 인자들로 경제는 서서히 성장하고 쇠퇴한다. 중국의 경제가 지금 빛을 발하는 것 역시 어쩌면 제국주의의 침탈로 피폐해진 늙은 호랑이로 기억되던 세인들의 기억을,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고 시장을 받아들인 개혁개방의 성과들로 인해 그 기억을 일거에 뒤집어놓았다고 여겨 더 주목을 받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운영 교수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고 2001년에 중국경제에 대한 취재를 위해 중국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고 온 뒤 쓴 일종의 르뽀이지만, 알다시피 정교수 특유의 해박함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경외심이나 경계심으로 바로 보는 중국을 아주 삐딱한 시선으로, 어떻게든 정부관료들의 정해진 답변이 아닌 뭔가 현실감 있는 얘기들을 파헤치려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한 흔적이 가득한 재미있는 중국이야기이다. 중국경제를 알아보고자 이 책을 쥔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역사얘기와 정치얘기가 훨씬 많다.

흑묘백묘 조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그게 좋은 고양이다. (鄧, 82p)

영요사회주의적초(寧要社會主義的草)
불요자본주의적묘(不要資本主義的苗)
사회주의의 잡초를 키울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지 말라. (毛의 鄧 비판, 86p)

현대중국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고양이'인데, 이것 역시도 경제노선을 놓고 벌인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정치투쟁의 흔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가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앞서 예를 든 정치투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경제현상으로 드러나며 이는 곧 인민들의 삶으로 직결되는 국가구조에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 힘은 13억의 인구도 아니며, 막강해진 군사력도 아니며, 바로 인민들을 이끌고 있는 정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정교수의 생각이었다면 수치와 지표를 들어 교과서적으로 중국경제를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일 것이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일 것이다.

다들 중국을 외치는 사이, 이미 중국은 쑁하니 앞으로 달려나가 버렸지만 여전히 그는 의심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서부대개발, 경제특구의 성공, 계획경제 목표의 초과달성 등 찬사를 들어 마땅한 것들 뒤에 공무원의 부패, 많은 인구와 실업, 국유기업의 부실, 무엇보다 급격해진 소득의 빈부격차 등의 함정을 과연 어찌 극복할 것인지가 그의 관심사이다. 결국 이는 사회주의 국가에 독 같은 자본주의 시장을 들여다 놓고, 시장에서 챙길건 챙기고 생기는 문제는 사회주의적 정치체재로 풀겠다는 심산인데, 아직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모순을 동시에 굴려 이를 제대로 실현한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하기에 정교수의 말대로 이는 인류의 1/5를 놓고 벌이는 도박같은 실험인게다.

그가 본 중국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결국 작가와 우리의 관심은 잠자는 호랑이가 깨어났으니 우리는 어쩔 것인가에 귀결될 수 밖에 없지만, 이는 호들갑스러운 경외심과 경계심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닐 것이다.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지우고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시킨 그들의 힘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국가의 운명이나, 경제의 변화나 인간의 삶이나 다 마찬가지라 싶다.

문제는 아픈 몸이 아니라, 아픈 몸을 치유할 건강한 정신인 것이다. 낡은 기억을 버리고 변화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