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출장길에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 서재에 꽂힌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살펴보니 5년 전 여름에 읽은 것이었지만, 2002년 여름이면 월드컵에 미쳐있어야 할 때인데도 나는 한가롭게 책을 들고 있었나 싶어 하품이 난다. 그해 가을에 인생에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던 새로운 공부를 한답시고 대학원을 진학했었으니 이 책도 그 시절에 분명 내게 뭔가를 던져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읽는 즐거움이 분명 있을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읽는 내내 새로움을 느꼈으니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고약하다. 싫은 기억들이 모두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그러하기에 고뇌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똑똑한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지표와 지수가 현재를 얘기하고 미래를 예견하며, 기억된 그 인자들로 경제는 서서히 성장하고 쇠퇴한다. 중국의 경제가 지금 빛을 발하는 것 역시 어쩌면 제국주의의 침탈로 피폐해진 늙은 호랑이로 기억되던 세인들의 기억을,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고 시장을 받아들인 개혁개방의 성과들로 인해 그 기억을 일거에 뒤집어놓았다고 여겨 더 주목을 받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운영 교수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고 2001년에 중국경제에 대한 취재를 위해 중국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고 온 뒤 쓴 일종의 르뽀이지만, 알다시피 정교수 특유의 해박함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경외심이나 경계심으로 바로 보는 중국을 아주 삐딱한 시선으로, 어떻게든 정부관료들의 정해진 답변이 아닌 뭔가 현실감 있는 얘기들을 파헤치려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한 흔적이 가득한 재미있는 중국이야기이다. 중국경제를 알아보고자 이 책을 쥔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역사얘기와 정치얘기가 훨씬 많다.

흑묘백묘 조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그게 좋은 고양이다. (鄧, 82p)

영요사회주의적초(寧要社會主義的草)
불요자본주의적묘(不要資本主義的苗)
사회주의의 잡초를 키울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지 말라. (毛의 鄧 비판, 86p)

현대중국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고양이'인데, 이것 역시도 경제노선을 놓고 벌인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정치투쟁의 흔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가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앞서 예를 든 정치투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경제현상으로 드러나며 이는 곧 인민들의 삶으로 직결되는 국가구조에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 힘은 13억의 인구도 아니며, 막강해진 군사력도 아니며, 바로 인민들을 이끌고 있는 정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정교수의 생각이었다면 수치와 지표를 들어 교과서적으로 중국경제를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일 것이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일 것이다.

다들 중국을 외치는 사이, 이미 중국은 쑁하니 앞으로 달려나가 버렸지만 여전히 그는 의심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서부대개발, 경제특구의 성공, 계획경제 목표의 초과달성 등 찬사를 들어 마땅한 것들 뒤에 공무원의 부패, 많은 인구와 실업, 국유기업의 부실, 무엇보다 급격해진 소득의 빈부격차 등의 함정을 과연 어찌 극복할 것인지가 그의 관심사이다. 결국 이는 사회주의 국가에 독 같은 자본주의 시장을 들여다 놓고, 시장에서 챙길건 챙기고 생기는 문제는 사회주의적 정치체재로 풀겠다는 심산인데, 아직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모순을 동시에 굴려 이를 제대로 실현한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하기에 정교수의 말대로 이는 인류의 1/5를 놓고 벌이는 도박같은 실험인게다.

그가 본 중국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결국 작가와 우리의 관심은 잠자는 호랑이가 깨어났으니 우리는 어쩔 것인가에 귀결될 수 밖에 없지만, 이는 호들갑스러운 경외심과 경계심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닐 것이다.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지우고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시킨 그들의 힘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국가의 운명이나, 경제의 변화나 인간의 삶이나 다 마찬가지라 싶다.

문제는 아픈 몸이 아니라, 아픈 몸을 치유할 건강한 정신인 것이다. 낡은 기억을 버리고 변화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