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조정래의 소설에서는 항상 고향이 등장한다. 인간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대부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것이 소설임에도 그의 글에서는 어김없이 고향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같은 고향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임과 동시에, 고향에 자주가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찾듯 그들이 돌아가고자해도 쉬 돌아갈 수 없는 현실적 아픔이 베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정래의 소설은 그저 허구일수만은 없는 역사적 아픔이다.

이 소설로 인해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변에서 미군에게 붙잡힌 독일포로들의 심문장면에 독일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한 동양인. 사료에 그는 독일말도, 영어도, 소련말도, 일본말도 하지 못하는 조선인으로 밝혀졌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너의 국적은 어디인가?

고향에서 강제징집당해 일본군으로 끌려나간 그는 만주군으로 배속되고, 몽골초원에서 몽골군과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소련군으로 귀속되어 모스크바 사수방어선에 투입된다. 독일군에 밀리던 와중 포로로 붙잡히고 다시 독일군복을 입고 히틀러의 '대서양 방벽' 작업에 동방부대의 일원으로 투입되나, D-Day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미군에게 두 손을 들게되는 기구한 운명의 주체다. 다시 영국을 거쳐 미국 포로수용소로, 종전이후 얄타회담 결과에 따라 다시 소련으로. 그런 그에게 너의 국적은 어디인가를 묻는다면 총칼이 눈앞에 버젓한데 뭐라 당당히 내 조국을 말하겠는가?

고향 벌교를 눈 앞에 두고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지 못한 태백산맥의 '염상진'처럼 '신길만'은 지구 한바퀴를 도는 말도 안되는 운명 속에서도 끊임없이 고향을 아로새긴다. 그에게 고향은 결국 돌아가야할 조국이지만, 그를 떠돌게 만든 것도 결국 늙고지친 어머니 같은 힘없는 조국이었다. 휘몰아치는 세계사의 격변 속에 내동댕이쳐진, 아무도 지켜줄 수 없었던 외로운 영혼의 몸부림이다.

읽는 내내 아쉬운 점은, 너무도 안타까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는지 모를 일이나, 소설을 읽는 내내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떠나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진지함이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극적인 그 삶에도 불구하고 글은 높낮이가 없이 그저 평탄하다. 그의 소설을 읽고 이렇게 허망한 적은 없었다. 내겐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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