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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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교수가 서양철학을 얘기하던 중 뜬금없이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듣던 배 고픈 수업시간, 그것도 철학얘기에 웬 밥상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자연으로 귀의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에 대한 나의 지식은 거의 무지해 지금까지도 자세히 알지 못하나, 오늘 책장을 덮은 "농부의 밥상"(안혜령 글, 소나무)을 읽고 어렴풋하게나마 철학과 밥상이 관계지어짐을 뒤늦게나마 깨쳤으니 사람은 역시 배우고 볼 일이다.

흔히들 철학하는 사람에게 '철학이 밥 멕여주냐?'고 놀리지만, Well-being에 미친 시대에 철학없는 밥상에 Technique만 알려준들 근본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무슨 Well-being이 되겠냐싶다. 근본이 되어 다른 학문을 끌어주고 받쳐주는 철학처럼, 농사짓고 밥상차리는데 밑바탕으로 자리잡은 우직한 유기농 농부들의 '철학'은, 거칠어진 손발처럼 이쁘고 멋지지는 않으나 소박한 그들의 삶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첫번째 요소임에 틀림없다.
 
"농부의 밥상"은 유기농을 고집하는 대표농부(?) 10분의 집을 철따라 방문하여 그 분들이 집에서 차려주어 얻어먹은 조촐한 밥상을 소재로, 그들의 삶과 농사, 음식얘기로 채워놓은 글이다. 쌀이 쌀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농사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리고 스팸 굽고 라면이나 끓일 줄밖에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거의 전문서적(!)에 가깝다. 그렇다고 따분한 유기농에 대한 하염없는 칭찬이나,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요리책이 아닌 것은 그분들의 삶이 간편하고 단촐한 탓에 그런 사치를 부릴 게재가 아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글 또한 뭇 농부의 말처럼 담백하며 소박하다.

소개된 열 분의 면면이 공동체를 통해 유기농을 실현하는 분도 있고, 화학농법을 통해 깨친바가 있어 홀로 유기농을 고집하는 분들도 있으나, 모두가 한결같은 것은 자연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나 잘 살자고 땅과 한낱 미물들을 해하지 않는 기본 바탕은 모두 똑같다. 그 분들의 음식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틀리고 자연환경마다 틀리지만, 결코 낭비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하늘이 철마다 내려주는 지천에 널린 것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밥상차림의 기본이었다. 결국 자연의 섭리를 따라 오랜 세월 삶의 지혜로서 과거 방식들을, 깡그리 뒤집어 엎어버린 현대화의 미덕이 되레 그 분들 앞에서는 미개할 따름이다. 인위적인 삶과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오히려 무안하다.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부엌 또한 늘 밝아야 한다고 집 동쪽에 자리잡게 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다. (77p)

그러하기에 그 분들에게는 밥은 평화요, 보약이요, 나눔이요, 똥인 것이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어느 식당의 뭐가 맛있다는 소문만 나도 문전성시에 난리인데, 소위 맛집멋집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삼아 즐기는 나에게도 정작 부모님들 맛있는 것 드시게 한다고 모시고 가면 영~ 반응이 시원찮던 경험들이 많다. 너른 앞마당을 두고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철에 나는 나물과 풋고추에 된장, 김치 하나만 걸쳐도 식은 밥이 따뜻하게 느껴짐은 무위자연과 간소함에서 오는 마음의 풍성함에서 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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