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면서 벤쿠버 피겨 쇼트 스케이팅을 보았다.
자신감 넘치는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 잘 만나 행복하구나'
나는 그녀가 늘 자신의 일을 즐거워하고 만족스러워하며 한다고 느꼈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재능이나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을 뜻한다.
여유가 없어 물질적인 지원은 못 해줘도 마음만은, 정신적으로만은 아이가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자유롭게 그리고 올바르게 인도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모 아닐까 싶다.
본의 아니게 나는 1월부터 어떤 학생을 과외하고 있다.
처음부터 2월 말까지로 못을 박아놨지만 끝내기로 한 책의 진도가 시원스레 나가지 못해
3월초까지 끌어주기로 했다.
하루에 1시간, 5일, 한 번에 2~3과를 나가는 스피드 스터디다.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진도가 시원스레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이가 늘 마지못해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들을 가르쳐 봤어도 학생은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아, 내가 10대 중반 때 초등학생을 가르친 적은 있지만, 그 때는..나도 아이였으니까, 생략)
상대방이 집중해서 듣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예의없는 행동을 하면 나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바로 벼락같은 호통을 쳐온 나이다.
그러나 차마 15살짜리 그 소년, 하고 싶은 것은 다른데에 있는데 아버지 때문에 꾸역꾸역
공부를 해야만 하는 소년에게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내내 나는 인내심이라는 침을 몇 번이나 꼴각꼴각 삼켜야만 한다.
아이가 전망이 좋지 않은 직업군과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거나 하고자 할 때, 어느 부모가
쌍손 들고 환영하겠냐만은... 너무 무리하면 아이는 부러진다. 대나무처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소년이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것으로 보아 과외가 늘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숙제도 착실히 해오고, 다른 일로 수업 시간이 변동될 것 같으면 스스로 먼저
스케쥴 조정까지 해서 알려주는 거 보면. 천만다행이다.
(한 가지라도 좋은게 있으면 낫지 않을까 싶어 그 동안 아이에게 갖다 바친 과자와 차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가끔 가다 비치는 건방진 말투에 내가 얼마나 속을 삭혔는지! -_-)
'아, 이걸 왜 시작했지' 하고 약간의 죄의식 비슷한 감정이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에.
나도, 이 아이에게 한 점의 그늘을 씌우는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 불편한 마음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생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그의 나이 고작 12살이었다.
어떤 소녀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왜?"냐고 묻는 말에, 소녀는
"엄마가 불쌍해져서요."
자살을 꿈꾸던 소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이에게 학원이며 과외며 지나치게 공부에 대한 강요와 스트레스를 주는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그럴싸하게 아이에게 호소하면서, 뒤로는 '우리 애가 1등이어야 해.
지난번 아무개네 아이가 잘 해서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따위나 생각하는 몹쓸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아이가 오로지 부모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을? 놀지도 못하게 하는 부모를 동정까지 한다는 것을?
N의 절친했던 친구 중에 1명이 19살 때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었다.
예전에는 청소년의 자살이란 수험생들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수험생의 자살 또한 있어서는 안 되지만, 신나게 뛰어다니며 세상의 모든 경이로움을 느끼고 감탄하며
행복하기만 해야 할 10살 전후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너무 빨리 알아버리는 것이,
죽음만이 자신의 불행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빌어먹을 사회는 시간이 지나도 자중하거나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릴 때 부터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확실하고 그것을 꿈꾸던 아이들은 나중에 대부분 성공한다.
그러나 수 많은 학원과 과외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 중에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못 봤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고작 일개 회사원이나 되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그 미친 짓을 했니? 싶을 정도로 그들의 인생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초라하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당연 그들 부모다.
그들 부모는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한 생명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시켰으니까.
그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두었을 때 미래에 찾아올 훌륭한 인재들을 다 죽여놨으니까.
이 땅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
그저 길이가 큰 어른과, 조금 작은 어른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