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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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 P. 475

  자기 보호 본능으로 냉담을 가장해 위악을 떠는 사람이 있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냉랭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한다. 긴장은 냉담으로 이어지지만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인간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삶의 본질을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온기가 바탕이 되어야 사람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에서 발원한 그 온기는 타인에게 전이되고 사회와 세계로 전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눈처럼 희고 눈부신 환상과 몽환의 공간쯤으로 상상되는 것이 북극의 나라들이다. 얼음과 눈의 나라로 상상할 뿐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편견과 상상은 그곳의 삶을 왜곡하기에 충분하기까지 하다. <인어공주>외에 덴마크의 어떤 작가를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그만큼 신선하지만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덴마크 북쪽 동토의 땅으로 알고 있는 그린란드는 고교 시절 지리 시간에 그 존재 사실을 확인한 이후 없는 장소와 같았다. 적어도 이 소설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소재를 취하고 호흡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북극에 관한 보고서로 읽어도 좋을 만큼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이사야라는 한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밀라의 아이도 아니다. 그저 한 아이에 대한 애정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소설이, 아니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는지 모른다. 호기심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욕망이다. 알고 싶다는 스밀라의 욕망은 물론 한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은 현실에서도 많지 않다. 스밀라가 한 아이의 죽음에 바치는 행동은 삶에 대한 경건함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해진 답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아이러니다.

  스밀라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 온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스밀라는 경계인이다. 10대 초반에 어머니가 죽자 그린란드를 떠나 덴마크에 건너오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고정된 실체를 거부한다. 결혼이나 종신직 등 안정적 삶에 대한 애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스밀라는 아주 특별한 캐릭터다.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의 유형들이 많이 있겠지만 페터 회는 ‘조르바’처럼 현실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있어야할’ 인물 유형을 창조해낸 것이다. 독자들은 이 묘한 매력에 빠져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보여주는 특유한 문체이다. 매력적이 소설들은 하나같이 ‘문체의 힘’을 알고 있다.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 속에 생에 대한 통찰과 작가의 생각들이 배어 나온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기도 하고 안정과 불안에 대한 충돌이기도 하며 나와 너의 혼돈이기도 하다. 기막힌 묘사나 서정적인 분위기는 때때로 감상에 젖게 하지만 눈물에 호소하거나 억지 웃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때로 메마른 듯 하지만 스밀라를 둘러싼 인물들이 보여주는 특이함이나 인물들간의 관계가 보여주는 냉정함은 스밀라의 생각과 행동을 오히려 빛나게 한다.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 P. 509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밀라도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그리움에 한 없는 외로움을 속을 헤맸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은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했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도시에서 바다로 그리고 얼음으로 공간을 이동하며 스밀라가 찾아나선 것이 단순히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추리 소설 형식을 띤 이 소설은 참으로 허망하게 끝을 맺는다. 정교한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방식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 구도라는 커다란 기본 구도를 가지고 있다. 문명과 자연 혹은 도시와 바다 그리고 인간과 얼음 등 다양한 대립 구도를 그려 볼 수 있다. 대척점에 서 있는 각각의 요소들은 유클리드나 수학이 보여주는 객관성을 벗어난 지점에 사람들의 본성과 생의 태도가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이 책은 자연을 통해 그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읽히고 나도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섹스가 친밀감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섹스는 거의 시작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P. 517

  책을 읽다가 전체 맥락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밑줄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단 두 문장이지만 여러번 곱씹었다. 내가 ‘나중’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나중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문장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중’에 대해 작가는 알려주지 않고 여운을 남긴 채 소설을 맺는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해 줘’라고 사람들은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이해하고 끝맺을 수 있잖아’라고.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 619


07111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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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전체 맥락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밑줄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맞아요.
그런 적 있어요.

그런데 맨 마지막 줄의 숫자는 뭔가요?
2007년 11월 18일에 올해로는 133번째 읽은 책이란 뜻인가요?
부럽군요.


sceptic 2007-11-22 09:55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그럴테죠...저도 그렇구요...손이 가는 대목은 전체 맥락과 무관할 수도 있는거겠죠...

맞습니다. 매년 일련 번호를 붙이는 버릇이 있어서...
부러워하실 만한 건 아니고요...저도 권수를 줄이든가...한곳에 집중수렴하던가 계획을 세워봐야죠...
 
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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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향기 더 하는데 워~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별이 빛나는 밤에>에 귀 기울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 시대의 흐름은 유행가의 변천 과정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나 결정적 시기라고 하는 말들은 불가해한 심리적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불안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청소년기는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 청소년이다. 정확하게 세대를 규정지을 만한 기준은 없다. 그래서 명칭도 모호하다. 청년과 소년의 합성어인 청소년은 보통 1318세대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과정으로 보면 중고등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세대마다 독특한 특징과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 세대들을 4.19세대 혹은 386세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를 가리켜 지칭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어떤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통’을 공유하는 세대이다. 불안한 심리상태와 급격한 신체 변화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주변에 훌륭한 멘토를 만나 호기심을 해결하고 마음을 의지하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이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왜곡된 시선과 부정확한 정보로 세상을 잘못 인식하기도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삐그덕 거리기만 한다. 이런 시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폭력적인 입시지옥과 규율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철저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하나의 길로 인도하거나 결국 똑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길러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인생에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고민하며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고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아동문학의 범람과 성인 문학의 확고한 아성 사이에서 소외되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창비청소년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시도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본격적인 창작 문학 분야에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해서 발간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라일락 피면>은 8명의 소설가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선옥 ‘라일락 피면’,  방미진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성석제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오수연 ‘너와 함께’, 오진원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조은이 ‘헤바(HEBA)’, 최인석 ‘쉰아홉 개의 이빨’, 표명희 ‘널 위해 준비했어’

  기성 작가들과 아동 문학을 업으로 삼은 작가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써 놓은 단편들이 모여 있지만 기획의도와는 달리 전체가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의도와 명분은 높이 살만하지만 작품들의 수준(?)과 깊이가 제각각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여줄 수 없었던 소설만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다. 석진이의 내면 풍경과 그의 시선에 비친 80년 5월 광주의 봄이 라일락으로 상징되는 화려함과 겹쳐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아픔을 겪지 않은 시대는 없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는 없다. 석진과 윤희의 선택을 보며 청소년들을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들을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여 표제작이 되었지만 대표작이 될 만하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와 ‘널 위해 준비했어’는 동성애와 은둔형 외톨이라는 비주류 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 있다.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머리로만 되지 않는다. 가슴으로 다가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접근 방식으로 청소년 문학이 풍성해지기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덟 편의 단편이 다소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따로, 또 같이 그들만의 문제와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고, 보다 폭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변화 가능한 청소년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고민의 단면들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계속되길 바란다.


071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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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7-10-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중학생 딸애에게 이 책을 권해줘야겠네요.

sceptic 2007-10-25 15:27   좋아요 0 | URL
화려한 휴가를 보며...참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갖는 건 기성세대 뿐만은 아니겠지요...중학생 따님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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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함형수 시인의 말처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한 편의 소설이 전하는 즐거움은 독자마다 다르다. 동갑내기여서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일시된 감정으로, 혹은 공감을 극대화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만나면 어떤 방식의 접근 방식보다도 세계를 , 혹은 과거를 해석하고 규정하며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만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의 하나는 바로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사서 읽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한가로운 주말에 눈을 떼지 못했던 그의 장편은 기꺼이 그의 책들을 의심 없이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었다. 책을 쓰는 방식과 세상에 대한 접근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그런 점에서 김연수도 한계와 단점을 지니고 있다. 몸으로 부대끼는 현장성이나 폭넓은 사회적 관심에 대한 부족은 나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그의 단편들이나 장편을 통해 우리가 그를 만날 때 가졌던 아쉬움이 남더라도 다른 측면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만원의 행복은 연예인들의 쇼가 아니라 책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 인드라망

인드라망은 제석천이 사는 도리천 세계의 하늘을 뒤덮은 그물을 지칭한 것인데, 모든 그물의 매듭에는 구슬이 달려 있고 그 구슬 모두에는 사바세계 전체가 비추어진다고 한다. 그물 매듭의 구슬이 세계 전체를 비출 수 있는 이유는 세계의 모두가 하나의 그물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즉(卽)하고 의(依)하여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인 세계로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에는 촘촘한 그물이 덮여 있다. 그물에 매달린 구슬들이 서로 비추어 주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의 모습이다. 어떤 논리와 합리적 이성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작가는 정교한 씨줄과 날줄로 그것들을 직조하고 있다.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가 『링크』에서 주장한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추측이나 가정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상이다. 그것을 소설로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여자 친구의 삼촌 그리고 노동운동가였다가 프락치로 등장하는 강시우의 아버지가 중첩되고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흥미와 공감을 선사한다.

  독일에서 만난 헬무트 베르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을 듣고 싶다. 그 선율을 타고 한국과 독일, 서울과 베를린과 평양, 제 2차 세계대전과 광주, 강경대와 김귀정은 모두 연결되었다가 흩어진다. 세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모습들을 감추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만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 연결 고리들을 찾는 재미가 이 소설에는 담겨 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 P. 150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 P. 378


  나와 세계와의 갈등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관점이 아니라 그저 나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작가의 이 말들에 공감하게 된다. 불가해한 인생과 그 연결망에 대한 신비로움은 인간이 영원히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의 일인지도 모른다.

2. 사랑

  그는 정민을 사랑했을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1인칭 화자인 나는 ‘정민’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만난다. 그녀는 그의 전부였고 생의 목적이었고 생명이었다는 식의 진부한 사랑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랑의 방식들 중에서 그들은 ‘이야기’를 선택한다.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연결되고 사랑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현실을 직시한다.

  나의 정민에 대한 사랑과 베르크의 안나에 대한 사랑은 비교할 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의미와 사랑이 찾아오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극히 작가의 개성에 해당할 이 사랑의 방정식 또한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된다. 가령 이런 구절들,

내가 한때나마 존재했었다면 그건 오직 당신 때문이었어. 얼룩무늬 소피에게 맹세했다시피. 존재가 없었다면 고통도 없었을까.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 나는 그 고통을 매순간 맛보고 있어. 너무나 달콤한 고통이야. 나는 지금 하얀 숲속에 있고, 모든 것은 끝나가고 있어. 지금으로서는 그 고통을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 뿐이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P. 270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인 ‘사랑’은 존재한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 뿐. 그리고 그것은 ‘그리움’이라는 형태로 변형, 왜곡되기도 한다. 그녀 혹은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그리움의 본질은 온기의 결여였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는 기억에 대한 방식 때문이다. 이성적인 작용이나 두뇌의 한 구석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기억은 놀랄 만큼 문득문득 선명하고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옥상에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뺨에 스친 그녀의 머리카락이나 땀이 나도록 맞잡은 손의 온기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도 그것이 이어져가는 방식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1인칭 화자인 내가 사랑한 ‘정민’은 어디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3. 우리의 인생, 그 후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 P. 384

  지나온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참으로 편리하다.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진다. 안개처럼 아련한 추억들은 재생할 때마다 편리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우리의 기억은 추억이라는 미화된 사진으로 인화되며 삶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적당한 망각과 편집과 재생 기능이 없다면 견뎌낼 수 없는 미련과 아쉬움, 고통과 환희들을 모두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이렇게 회고담의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들이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식일 수도 있다. 짧은 생에도 이토록 많은 기억과 관계들이 그물처럼 얽혀있다. 그래서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다.

  1991년 10월 이전을 정리한 김연수는 이 한 권의 소설로 시대를 마감했고 정리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단편처럼 읽히다가 정교하게 얽히다가 하나로 묶인다. 스스로 ‘프로 소설가’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그 목소리에 공감하며 벌써, 다음 소설을 기다리는 성급한 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인생, 그 후를.


07100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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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0-0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의 이 소설에 대한 평가가 다들 좋군요. 발췌하신 소설속의 구절도, 님의 쓰신 리뷰속의 구절도 와닿는 것이 많네요.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07-10-10 20:4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소설가라서...이 장편도 좋게 읽었습니다...여러가지로 보여주니까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었어요...함 보세요...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2
조향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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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어디서부터 울려 퍼졌나

꿈결처럼 아련한 노랫소리

영원인 듯

먼 지평선 아래로 잦아드는 화음

마지막 발자국을 지우며

사막 끝으로 장엄히 사라져간 부족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노랫소리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시인을 만나기 어렵다. 시의 범주 안에서 살갑게 부대끼는 소리만 들릴 뿐인 시들과 마주하는 일은 지겹다. 같은 대상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과 방법을 통해 언어의 울림을 전해주는 시인은 그만큼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조향미의 세 번째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는 자연의 울림과 생활의 발견으로 가득하다.

  자연을 통해 전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숨겨 버릴 수도 있지만, 미주알고주알 친근하게 토로할 수도 있다.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고 그 선택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의 빛깔과 향기로 남는다. 그 모든 재료와 조리법은 언어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세와 대상들에 대한 인상을 전하는 시도 있다. 조향미의 ‘노을’은 하얀 화면에 소리 없이 빛이 스미는 장면을 보여준다. ‘노랫소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소리는 없고 그리만 남는다. 시각화한 이미지는 선명한 심상의 울림으로 남는다.

  시라는 형식을 통해 무엇인가 발언하고 싶은 내적 욕망을 얼마나 조절할 수 있을까? 섣불리 뱉어낸 과잉 감정의 토로나 육화되지 않은 건조한 말들로 조합해 낸 시들은 이내 균열을 일으키고 가슴에 닿지 못하고 무너진다. 조향미의 시들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속삭인다. 서정시가 보여줄 수 있는 감각의 이미지들을 잘도 잡아낸다.

산복도로 봄볕

스펀지 비어져나온 낡은 의자
구부정히 해바라기하는 백발노인
흐릿한 눈길 아슴한 저 길 위에
무장무장 쏟아지는 봄볕

황감하여라 두터운 봄볕
그러나 겨울옷처럼 묵은 육신
그만 벗고 싶다 하얀 나비처럼
팔랑팔랑 꽃상여 타고 싶다

죽기에 좋은 날이다


  절대 적막과 두터운 봄볕 속에서 ‘죽음’을 보는 시인의 인식태도가 절망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탈속적인 경지에 이른 생의 무결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죽기에 좋은 날’이 어디에 있는가? 죽는 날은 모두 ‘좋은 날’이다. 흰소리 집어치우고 팔랑팔랑 꽃상여나 타고 싶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끊임없는 경쟁의 시선을 던지는 시인은 행복할까? 나는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시인들은 마음에 대해 잘도 말한다. ‘그대는 어디 자취도 없’고 ‘마음의 샘’은 아득하기 만하다. 두레박줄 내려 보지만 ‘찰랑!’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등 하나 잠기지 않는 마음의 끝자락만 잡았을 뿐이다.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한없는 욕망이 무화되는 순간이다. 가려고 하지 말자. ‘마음은 가도 가도 끝없다.’

마음

가도 가도 끝없다
그대 마음의 솜털까지 헤아릴 듯
햇살처럼 화안하던 그 자리
한순간 자욱이 안개 내리고
천지사방 길 끊기고
그대는 어디 자취도 없네
아득해라 마음의 샘
두레박줄 내리고 내려도
끝닿을 줄 모르다가
드디어 찰랑!
수맥을 찾은 듯
한 동이 물 가쁘게 당겨올렸으나
막상
두레박은 텅 비어 있네
손등 하나 못 잠기네



0710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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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0-0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감하여라 두터운 봄볕, 이라니!
참 좋네요 ^^

sceptic 2007-10-09 13:14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순간, 유리벽 안에...세상과의 단절이죠...
 
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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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틈

살얼음 낀 겨울 논바닥에
기러기 한 마리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하늘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빈 틈이 있다. 가슴 속에 구덩이 하나씩을 파고 있는 것처럼. 그 빈 틈 때문에 정호승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호승’은 고교시절 나의 로망이었다. 열일곱에 그의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와 <새벽편지>를 읽으며 시에 눈뜨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손이 간다. 조희봉처럼 ‘전작주의자’를 꿈꾼 적은 없지만 정호승의 책은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라는 소설까지 읽었다.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서늘한 눈빛에 한동안 잠 못 이루던 시절이었다. 사춘기였고 한 시대를 어렴풋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감수성을 지닌 시기였다.

  김지하나 황지우, 오규원이나 김승희, 신경림이나 박노해 등 숱한 시인들을 만났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정호승은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툭, 툭 내뱉듯 혹은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하듯 이야기한다.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만큼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과 시선이 농밀하다. 꼼꼼하고 세심한 시선은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이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확대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증폭된다.

  정호승의 빈 틈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곳에 있다. 그의 뛰어난 시편들에는 언제나 역설이 숨어있다. 아니듯 그렇고, 그러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낸다. 진실은 사실에 앞선다. 객관적 정황들에 앞서 그가 보여주는 내면의 진실과 그 언어들은 솔직한 고백의 형태로 때로는 차갑지만 정확한 발언으로 빈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고구마를 파는 청년처럼 언제나 군고구마 대신 기다림을 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밤의 연못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 창 너머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 들이 내 뒤를 따른다
꽃잎을 꼭 다물고 잠자던 수련도 뒤따라와
꽃을 피운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낮은 것에 머물러 있다. 참여, 순수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회색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세상이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역할과 의미는 시인들마다 제 각기 다르게 해석한다. <슬픔이 기쁨에게>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라면을 끓여먹는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왔고 기쁨보다는 슬픔을, 웃음보다는 눈물을 사랑했던 시인이다.

  한 시인의 시적 경향이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부침을 거듭하는 것을 볼 때마다 변화 없이 꾸준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시인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정호승의 목소리에 질릴 때도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인 지망생이었던 후배 소설가 고원정이 어느 인터뷰에서 ‘정호승 시인이 내가 시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들을 만하다.

유등

등불 하나 강물에 떠나보내지 않고
어찌 강물을 사랑했다 하랴
강물에 등불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어찌 등불을 사랑했다 하랴
떠나가지 않으면 떠나보내리라
흘러가지 않으면 흘려보내리라
강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외로운 술집이 되어 가슴마다 술 마시는 밤
밤하늘을 헤엄치는 푸른 물고기들이
떼지어 강물에 뛰어내려 등불의 길을 따른다
부디 흐르는 강물에 칼을 꽂지 말아다오
누가 무너지는 촉석루를 껴안고 울고 있는가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떠나가는 사람은 떠나가게 내버려두고
유등(流燈)이여
그대 별들과 함께 서서 죽는 곳은 어디인가
나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지막 남은 등불 하나 바다에비치리라


  정호승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들이 있다. 밤, 하늘, 별, 강, 기다림, 사랑, 죽음, 가난 등이 그렇다. 서정시의 정의에 가장 근접해 있는 그의 시가 장수하는 비결이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여전히 제 목소리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정 어린 눈길이거나 진정성 때문이리라.

  언제나 완전한 시적 성취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의 시편들에서 읽어내는 완성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학적으로 완전한 시는 없다.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순간 시들은 전혀 다른 언어로 반응하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주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오독(誤讀)이 오히려 감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독자들은 그만큼 다양하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 유희에 그친 듯한 시들보다 정호승의 시가 오래 가슴에 남는 이유는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고 편안하고 가볍게 다가온다.

포옹

뼈로 만든 낚시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두 사람이 부부이든, 연인이든 그들의 부끄러움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가장 내밀한 언어로 표현되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여전히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수많은 연인들에게 신석기 시대의 꼭 껴안은 남녀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화석이 될만큼 사랑했던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시인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물고기는 조용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말을 듣고만 있을 뿐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파란 가을 하늘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꿈이든 희망이든 좌절이든 절망이든 하늘은 늘 푸르게 감싼다. 시원스레 탁 트인 하늘을 보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하늘에게 일하지 않았으니 굶겠다거나, 사랑하지 않았으니 굶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냥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웃어버릴 수 없는 일은 없다. ‘나는 언제나 한 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에 굶주린 ‘한 마리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에게

어제 하루 일하지 않았으므로
오늘 하루를 굶겠습니다
어제 하루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오늘 또 하루를 굶겠습니다

굶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일하지 않았으므로
내일 하루도 굶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내일 하루도 굶겠습니다

인생에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지만
나는 언제나 한 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한 마리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포옹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정호승의 ‘포옹’을 들고 가을을 맞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는 얼마나 포옹할 것들이 많은가? 포옹할 수 없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0709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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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09-2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들러 흔적 남기지 않고 글 읽고 갑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고 님도 행복한 가을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