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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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 P. 475

  자기 보호 본능으로 냉담을 가장해 위악을 떠는 사람이 있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냉랭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한다. 긴장은 냉담으로 이어지지만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인간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삶의 본질을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온기가 바탕이 되어야 사람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에서 발원한 그 온기는 타인에게 전이되고 사회와 세계로 전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눈처럼 희고 눈부신 환상과 몽환의 공간쯤으로 상상되는 것이 북극의 나라들이다. 얼음과 눈의 나라로 상상할 뿐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편견과 상상은 그곳의 삶을 왜곡하기에 충분하기까지 하다. <인어공주>외에 덴마크의 어떤 작가를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그만큼 신선하지만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덴마크 북쪽 동토의 땅으로 알고 있는 그린란드는 고교 시절 지리 시간에 그 존재 사실을 확인한 이후 없는 장소와 같았다. 적어도 이 소설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소재를 취하고 호흡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북극에 관한 보고서로 읽어도 좋을 만큼 이국적이고 신선하다.

  이사야라는 한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밀라의 아이도 아니다. 그저 한 아이에 대한 애정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소설이, 아니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는지 모른다. 호기심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욕망이다. 알고 싶다는 스밀라의 욕망은 물론 한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은 현실에서도 많지 않다. 스밀라가 한 아이의 죽음에 바치는 행동은 삶에 대한 경건함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왜 그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해진 답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아이러니다.

  스밀라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 온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스밀라는 경계인이다. 10대 초반에 어머니가 죽자 그린란드를 떠나 덴마크에 건너오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고정된 실체를 거부한다. 결혼이나 종신직 등 안정적 삶에 대한 애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스밀라는 아주 특별한 캐릭터다.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의 유형들이 많이 있겠지만 페터 회는 ‘조르바’처럼 현실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있어야할’ 인물 유형을 창조해낸 것이다. 독자들은 이 묘한 매력에 빠져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보여주는 특유한 문체이다. 매력적이 소설들은 하나같이 ‘문체의 힘’을 알고 있다.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 속에 생에 대한 통찰과 작가의 생각들이 배어 나온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기도 하고 안정과 불안에 대한 충돌이기도 하며 나와 너의 혼돈이기도 하다. 기막힌 묘사나 서정적인 분위기는 때때로 감상에 젖게 하지만 눈물에 호소하거나 억지 웃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때로 메마른 듯 하지만 스밀라를 둘러싼 인물들이 보여주는 특이함이나 인물들간의 관계가 보여주는 냉정함은 스밀라의 생각과 행동을 오히려 빛나게 한다.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 P. 509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밀라도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그리움에 한 없는 외로움을 속을 헤맸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은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했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도시에서 바다로 그리고 얼음으로 공간을 이동하며 스밀라가 찾아나선 것이 단순히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열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추리 소설 형식을 띤 이 소설은 참으로 허망하게 끝을 맺는다. 정교한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방식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대립 구도라는 커다란 기본 구도를 가지고 있다. 문명과 자연 혹은 도시와 바다 그리고 인간과 얼음 등 다양한 대립 구도를 그려 볼 수 있다. 대척점에 서 있는 각각의 요소들은 유클리드나 수학이 보여주는 객관성을 벗어난 지점에 사람들의 본성과 생의 태도가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이 책은 자연을 통해 그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읽히고 나도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섹스가 친밀감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섹스는 거의 시작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P. 517

  책을 읽다가 전체 맥락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밑줄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단 두 문장이지만 여러번 곱씹었다. 내가 ‘나중’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나중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문장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중’에 대해 작가는 알려주지 않고 여운을 남긴 채 소설을 맺는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해 줘’라고 사람들은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이해하고 끝맺을 수 있잖아’라고.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 619


07111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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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2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전체 맥락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밑줄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맞아요.
그런 적 있어요.

그런데 맨 마지막 줄의 숫자는 뭔가요?
2007년 11월 18일에 올해로는 133번째 읽은 책이란 뜻인가요?
부럽군요.


sceptic 2007-11-22 09:55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그럴테죠...저도 그렇구요...손이 가는 대목은 전체 맥락과 무관할 수도 있는거겠죠...

맞습니다. 매년 일련 번호를 붙이는 버릇이 있어서...
부러워하실 만한 건 아니고요...저도 권수를 줄이든가...한곳에 집중수렴하던가 계획을 세워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