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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이문세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리는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워~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향기 더 하는데 워~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저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별이 빛나는 밤에>에 귀 기울이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 시대의 흐름은 유행가의 변천 과정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나 결정적 시기라고 하는 말들은 불가해한 심리적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불안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청소년기는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 청소년이다. 정확하게 세대를 규정지을 만한 기준은 없다. 그래서 명칭도 모호하다. 청년과 소년의 합성어인 청소년은 보통 1318세대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과정으로 보면 중고등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세대마다 독특한 특징과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 세대들을 4.19세대 혹은 386세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를 가리켜 지칭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는 어떤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통’을 공유하는 세대이다. 불안한 심리상태와 급격한 신체 변화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주변에 훌륭한 멘토를 만나 호기심을 해결하고 마음을 의지하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이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왜곡된 시선과 부정확한 정보로 세상을 잘못 인식하기도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는 삐그덕 거리기만 한다. 이런 시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폭력적인 입시지옥과 규율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철저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하나의 길로 인도하거나 결국 똑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으로 길러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인생에서 자신이 걸어갈 길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고민하며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고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아동문학의 범람과 성인 문학의 확고한 아성 사이에서 소외되는 청소년 문학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창비청소년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시도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본격적인 창작 문학 분야에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해서 발간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라일락 피면>은 8명의 소설가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선옥 ‘라일락 피면’, 방미진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성석제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오수연 ‘너와 함께’, 오진원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조은이 ‘헤바(HEBA)’, 최인석 ‘쉰아홉 개의 이빨’, 표명희 ‘널 위해 준비했어’
기성 작가들과 아동 문학을 업으로 삼은 작가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써 놓은 단편들이 모여 있지만 기획의도와는 달리 전체가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의도와 명분은 높이 살만하지만 작품들의 수준(?)과 깊이가 제각각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여줄 수 없었던 소설만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다. 석진이의 내면 풍경과 그의 시선에 비친 80년 5월 광주의 봄이 라일락으로 상징되는 화려함과 겹쳐 비극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아픔을 겪지 않은 시대는 없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는 없다. 석진과 윤희의 선택을 보며 청소년들을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들을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여 표제작이 되었지만 대표작이 될 만하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와 ‘널 위해 준비했어’는 동성애와 은둔형 외톨이라는 비주류 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 있다.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머리로만 되지 않는다. 가슴으로 다가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접근 방식으로 청소년 문학이 풍성해지기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덟 편의 단편이 다소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따로, 또 같이 그들만의 문제와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고, 보다 폭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변화 가능한 청소년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고민의 단면들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계속되길 바란다.
071025-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