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육기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엔 남녀간의 고리타분한 사랑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함없는 이야기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또 얼마나 울고 웃고 하는가?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 운명처럼 다가와서 당사자를 완전히 삼켜버린 사랑, 당사자도 모르게 시작되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들의 결혼 후 생활은 마치 결혼 전의 사랑이 받았던 조명의 밝기만큼이나 두껍게 드리운 그늘로 캄캄해져버리고 만다. 이런 사랑 이야기에서 결혼 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 결혼 후의 생활이야말로 얼마나 두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커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짐이 되고 회피해버리고 싶거나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삶을 산다. 물론 살붙이고 살다보면 정이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정이 계속 살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이란 것은 알고보면 익숙하게 몸에 베어있는 습관같은 하잘것 없는 집착이 아닌가?

  바야흐로 세상은 변해가는데 그에 걸맞게 부부관계는 제대로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부부는 한때의 충동적 사랑으로 만나서 그 열꽃을 피운 결과물에 의무를 지고 평생을 가족과 가족관계에 묶여사는 노예같은 남녀의 삶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직감적으로 나를 끌어당긴 매력 속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 그녀에게 비친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부부 각각이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구제도의 가족에게서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 가지며 허덕댈 때 단순한 부부간의 정을 넘어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체험 학습장인 인생에서 배움을 공유하는 벗으로서 그 관계의 폭을 넓힐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이 현대의 부부들이나 부부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심복과 아내 운과의 관계도 역시 그러했다. 결혼 후 23년의 부부생활동안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골목에서 만나도 지긋이 손을 꼭 쥐며 '당신 어디가요?'하고 묻곤 했으며, 어떤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달 밝은 밤이면 함께 술자리를 펴서 시를 논했고, 삶의 문제를 글로써 논했다. 이렇게 함께 살면 살수록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서로의 삶의 풍요롭게 만드는 동반자일진대 어찌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행복한 시간들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녀가 마흔 정도 밖에 안된 젊은 나이로 요절하게 된 것을 지켜본 후로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고 또 그리워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왜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났을까? 그녀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앞서 그녀의 마음의 병이 깊었던 탓이다. 그는 사랑하는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마음과 몸의 관계를 생각했을 것이고 마음이 몸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이 6번째 글인 '건강하고 여유롭게 사는 법'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한 때 세상이 가진 것 없이도 더없이 행복했던 날들, 그녀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듯이 행복했던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잡을 수 없고, 허공에 새들이 그들의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뜬 구름같이 곧 흘러갈 꿈 속에서 우리는 또 꿈을 꾼다. 덧없는 인생의 꿈을 깨어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허물없이 살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손을 잡고서 행복해하게 되고, 그녀의 무덤 앞에서 좌절하지 않게 된다.

  결혼을 한 지도 어느덧 4년이 다되어 간다. 늘 나의 반쪽으로 생각되던 그녀를, 오직 그녀 하나만을 바꾸면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녀 하나 바꾸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우선 내가 바뀌는 것을 전제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를 바꾸는 것은 바뀌는 그녀가 아니라 바뀐 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이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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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0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浮生六記인 모양이군요. 부초처럼 덧없는 삶에서 여섯 꼬투리를 쓴...
자동차와 마누라는 5년마다 바꾸고 싶어진다고들 하더군요. ㅎㅎㅎ
연애의 짜릿한 감정이 결혼 후엔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겠지요.
연애하듯이 결혼 생활을 즐겁게 하는 법엔... 서로 배려하고,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길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 수행인 셈이지요. 배려와 독립은 수행인 셈이니까요.

비자림 2006-09-0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차라면 아직은 좋을 때 같은데요.^^ 그래도 아이들 키우며 번잡한 일상을 같이 하다 보면 부부간에 해야 할 말과 나누어야 할 감정들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옆사람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또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서로를 지켜주고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달팽이 2006-09-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비자림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도 정신적인 홀로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요즈음의 저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중심이 서 있을 때라야 상대방이 간혹 보이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에 덩달아 반응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운이와 같은 여자와 산다는 것...너무 부럽더군요...
그런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귀한 일이지요...

혜덕화 2006-09-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이 책을 읽고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고판 작은 책이었는데, 책들을 정리해서 버리거나 줄때도 이 책만은 꼭 남겨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달팽이님의 글을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달팽이 2006-09-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덕화님과는 책읽는 인연이 있나봐요..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