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입사 우리공예.디자인리소스북 11
최응천 지음 /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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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사'라는 말은 흔히 고려시대 향완이나 정병에 쓰인 금속 표면을 파고 실처럼 가는 유연성있는 금속재료를 실처럼 박아넣는 기법을 말한다. 이는 중국에서 '양감', '착' 또는 '착금'이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선상감', '면상감' 또는 '포목 상감'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속 기물의 표면에 끌 등을 이용하여 파내고, 찍는 등으로 장식하는 조금기법 중 하나인데 사용되는 금속은 청동이나 철이고 입사되는 재료로는 금, 은, 동이 사용된다.

 

  세계에서 이는 최초로 시리아에서 기원전 14~15세기경 금입사된 철제 도끼가 가장 오래된 유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는 상주시대에 송록석을 갑입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주시대에 성행했고 춘추전국시대에 철제 공구가 발달함에 따라 더욱 발전되어서 우리나라에까지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백제 4세기 후반의 충남 천안시 화성리 출토의 철제 은입사 환두대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한 '칠지도'에 새겨진 은입사도 한 사례이다. 이후 통일신라로 오면서 금동제 은입사 병을 비롯한 여러 기물이 출토되었고 청동제 금은입사 향로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아무래도 은입사의 전성기는 고려시대로 많이 전해지고 있는 정병과 향완과 합 등이 국보와 보물로서 전해진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것은 은입사의 과정이 고려시대 끼움입사의 방법이다. V자형으로 끌로 파들어간 홈에 은실로 채워넣는 방법으로 그 정교함과 복잡한 문양이 아주 수작이다. 특히 이 시대의 기물들은 주로 불교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이 많았다. 정병도 그렇고 향완도 향을 피우는 제기였으며 향합 또한 그러하다. 고려가 불교이념이 통치하는 시대였으니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종교적 심성과 공경심으로 수놓은 용과 학, 구름과 꽃무늬들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다. 국보 214호 고려 1229년에 제작된 높이 38.1센티의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흥왕사가 새겨진 청동제 은입사 향완'은 섬세하게 수놓은 용과 봉황이 구름과 함께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또 국보 171호인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청동제 은입사 봉황문 향합은 아주 드문 기형으로 향합자체가 그리 많이 전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조그만 향합도 은입사기법이나 조형이 우수한 편이다. 비록 기물은 작은 편이지만....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92호의 '청동제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은 그 조형과 은입사의 수준이 탁월하다. 안정감과 상승감을 고루 겸비하고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정병의 무늬를 보고 있으면 고려 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평화로웠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로 오면서 불교의식용 은입사기물이 생활용기로 더욱 다양하게 제작되면서 사용되는 문양도 다양해진다. 앙부일구, 거울걸이, 화장품그릇, 철퇴 등 다양한 장식적 기법을 띄고 고려의 기술을 전수받은 조선의 은입사기법은 쪼음입사기법이라 하여 쌀 '미'자 형으로 네 번을 가로, 세로 대각선 두 번을 쪼아 문양을 만드는 기법으로 발전하고 기물로 철이 사용되는 예가 많아진다.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디자인으로 제작되고 있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역시 온고지신이라 했던가? 현대에 와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세련된 문양과 기법은 세계인의 미감을 사로잡을 것 같다.

 

  다만 나의 기물과 은입사 기물은 보면서 드는 의문은 청동의 표면이 어떤 것은 자연부식의 과정을 거쳐 다양한 녹슬음이 드러나는 데 비해 어떤 기물은 표면이 고르게 검은 색으로 부식되어있다는 점이다. 표면에 무슨 처리를 하였는지 그런 기물에 대한 설명이 아직 없다. 또한 기물에 드러난 다양한 문양에 대한 분석도 조금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미술품인 청동 은입사 제품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를 갖게 해 준 점에서 이 책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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