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는 장자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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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붕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너무나도 큰 상상력의 존재인가? 아니면 마음의 웅혼함인가? 아니면 삶의 깨달음인가? 아마 그는 수천년을 자란 나무처럼 어디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어느 곳에도 쓸모없는 글을 이렇게 써내었는지도 모른다. 썩은 고목과 식은 재와 같이.....그는 처세하는 세상의 기술과는 상관없는 크고 깊은 도를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왠지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불교의 선사상과 같은 진정한 공의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경같이 엄숙하지 않다. 아주 문학적이다. 오히려 아주 큰 상상력으로 씌여진 글 같다. 소요유의 글이 제물론으로도 이어지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와 대종사 그리고 웅제왕에게로 이어진다. 모든 만물을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경지야 말로 권력과 명예와 돈이 태풍처럼 돌아가는 정치권의 소용돌이의 중심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왕을 보좌할 수 있는 곳에 처할 수 있는 길이다. 겉은 부드러운 원같되 안은 자신의 진리를 파지하는 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세상에 큰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 사는 방식이 있다면 세상을 떠나 소요하는 삶도 있지만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숨겨 도에 계합해 살아가는 진인도 있다. 장자는 소도축꾼의 예를 들어 그 칼의 씀을 비유해 설명하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자라 어떤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는 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때로는 발뒤꿈치가 없이 사는 사람에 비유하기도 하고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눈을 피해 사는 미치광이의 삶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삶의 진리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을 텅 비게 해서 깨끗한 거울처럼 우주의 진리를 마주하고 살 수 있을까? 왕멍님의 훌륭한 해설도 감히 내가 미치지 못하는 인연이지만 장자의 웅혼함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 대한 내 느낌이 그와 다른 것은 인문한적이고 문학적 해석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같은 무언가가 아쉬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찌하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허물없이 마셔서 소화해낼 수 있을까?  낙동강의 물을 다 마시고 맛을 알게 되는 그 '맛'이 내 마음 속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삶의 작은 행동 하나도 진실로 허물없이 하게 되는 진리의 삶...그는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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