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 - 개마고원신서 26
강준만.권성우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활을 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지 못해서 각 대학 주요 학생회장실과 사회비판적 동아리방 주요 교수의 방이 도청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서목록제도때문에 책을 직접 구하지 못하고 복사해서 돌려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미 추억거리가 되어 버린 이 금서목록을 지난 해에 우연히 그 때의 금서목록이란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했던 기억들이 난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분이 합법화되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형식적으로 문민정부의 출현과 함께 희석화되면서 80년대 민중의 목소리의 대변자적 역할을 했던 길지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예동네 등의 문학잡지와 한겨레신문도 변화된 사회에 맞게 컨텐츠를 만들어가야 했고 어느 부분은 더욱 변화되어야 했다.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던 것이 이 즈음이었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 구도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무렵 이제 비로소 그간에 양 구도 때문에 묻혀 있었던 또 다른 문학과 이론과 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을 보며 나는 민주화의 결실로 인한 사회의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물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학생운동의 PD, NR파의 분파 생성, 민주노총과 비합법 정당활동 등이 포스트모던 논쟁과 사회민주주의 논쟁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운동과 활동들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단순히 사회의 다양성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80년대에 비판적 사회운동의 입의 역할을 했던 문학잡지와 평론이 출판자본의 지배에 의해 구조재편과 새로운 생존경쟁의 여건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민족적 저항주의나 비판적 민중운동의 역할을 접고 생존과 확장을 위해 자본의 파수꾼에서 아르바이트생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역할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내가 대학의 생리를 좀 알게 된 것은 군대생활을 통해서였다. 서울 타대학의 대학원 생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대학원 생활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나는 이 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학에서 공부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세의 도제교육이나 봉건제적 구습에 적응할 정도의 삶의 수용이 가능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단의 구조는 그것보다 더욱 봉건적이고 봉건적이다 못해 고대 노예제적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더 절망적인 것은 서로간의 인간적인 신뢰에 기반한 정당한 비판 자체가 허용되지 못하는 현실이었고, 그것이 문인들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비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티없는 순수함으로 치장한 문학이 사실은 얼마나 더러운 오물통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문학 내부에서의 어떤 자성적 목소리도 그 고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은 적어도 갈증에 타는 목을 적셔줄 시원한 냉수 한 잔은 되었다. 그의 말대로 물론 외부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더욱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밝힐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것이었다. 문인들은 자신의 소신대로 상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가고 문학평론가들은 소신있게 자신의 바른 목소리를 내어 출판자본에 대항하여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야 한국문학의 미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도 알다시피 200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국가마저도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들러리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라고 하는 대자본의 지배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노무현 정부도 20000만불 시대의 경제논리에 말려들고 각종 방송사 신문사를 포함한 언론기관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주무르는 한국 사회에서 일개 기자나 일개 문인의 붓끝에서 나온 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미 2000년대는 대자본의 지배구조아래 모든 군소 자본 권력이 줄서기를 하는 시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하긴 싫지만 지금의 전개흐름대로라면 앞으로의 자본 비판 사회운동이나 정당운동도 대자본의 지원아래서 사회내의 저항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체제내로 포섭하는 장치로서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 경제논리 아닌 인간논리가 세상의 삶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오물통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거대구조와 담론은 외부에서 우리를 강요하는 사회적 짐이 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에서 나의 행동과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가?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소비자(이 말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로서 나는 책을 고르는 주권을 바르게 행사하고 문인들은 그들의 학문적 양심을 지켜나가고 그들의 삶의 터에서 삶의 조건을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선 표현의 자유를 우리는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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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가슴에 울리네요.
좋아하는 작가 강준만.. 이 책 방학 때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달팽이 2006-08-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시류를 놓쳐 아쉽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사실엔 변함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