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상담소 -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철학자들의 카운슬링
루 매리노프 지음, 김익희 옮김 / 북로드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저기 한 철학도가 있다. 머리는 덥수룩하게 길러서 아무렇게나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굴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옷은 편한 느낌이다 못해 조금은 예의없고 건방져보이기까지 하다. 시선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촛점이 없다. 때로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땅에 고개를 박은 채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도 한다. 괜히 말을 잘못 걸었다간 인생의 골치아픈 개념들의 폭탄세례를 맞아야할 것 같아 두렵다. 왜 철학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고리타분하고 생활에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문제들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책을 만나야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책 표지 사진에는 많은 동그란 것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을 눈 가까이 가져가고서야 그것이 아스피린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철학이 우리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배아프면 즉시 통증을 없애주는 아스피린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해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침을 맞는 것 처럼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철학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가 있어왔고, 물론 그 책임의 일부는 철학자들에게 있음을 저자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으로 볼것인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객관적인 상황의 문제(병이 있으면 병원에서 치료하면 되고, 정신병이 있으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된다)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자기의 인식이나 스스로의 자신에 대한 정당성 부여의 부족이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이나 괴로움일 수가 많다. 그래서 의무론, 목적론, 종교윤리학, 객관주의적 윤리학, 프리마파시 의무론, 사회생물학, 타자 중심의 윤리학, 불교 윤리학, 법적 도덕론, 메타 윤리적 상대주의의 열한 가지 이론으로서 각 각의 장, 단점을 통해 개개인에게 필요한 처방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서 철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거나 타 종교를 종교로 가진다고 해도 때로는 삶의 문제들이 구체적인 해결 방법과 그 자신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철학적 근거를 따로 가질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입장에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목적론적 입장에서, 의무론적 입장에서, 객관주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처한 생활 상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때에 따라서 이 문제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비록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죽음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거나, 죽을 병이라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생의 의지를 스스로가 내어서 죽음에 맞서 싸우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어떤 병원에서 암 말기 진단으로 수술이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병원 진단을 바탕으로 자신의 죽음을 확정짓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활하고만 있다. 이런 경우 철학은 우선, 그 병이 말기암의 죽을 병이 확실한가? 둘째, 말기 암이라도 수술도 필요없는가? 아니면 수술에 의해 삶을 연장하거나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가? 셋째,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음으로써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던 그가 자신을 보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파악하게 됨으로써 죽음을 보다 잘 준비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든 철학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적 판단을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살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이끌 것인가가 우리들의 내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각자가 자신의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 책도 역시 철학이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가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우리들의 영혼의 존재와 진리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들이 중요시여기고 의존해온 삶의 가치가 변해야 하는 문제이고 그것은 참된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에 파생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생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삶의 궁극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모아갈 때 비로소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은 단순히 배아픔을 치료해주는 아스피린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구명보트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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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옵니당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잘 하고 싶은 비자림 올림^^

달팽이 2006-08-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고 계신 비자림님께 안부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