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 다산·추사·초의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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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선생님이 오랜 시간과 공력을 들여 차문화를 정리했다. 조선 후기 다산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의 차애호문화를 중심으로 조선후기의 차문화는 번성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초의스님의 차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다. 물론 다산과 추사가 있었기에 초의스님의 차문화는 더욱 발전을 거듭했고 경화세족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연이어 읽고 있는 다완의 시리즈를 이쯤에서 접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 한 권으로...

 

  신라 흥덕왕 때 중국에서 차 씨앗이 들어와 국토에 뿌려졌지만 그것을 가꾸고 차로 만들줄 몰라서 오랜 세월을 기다려 조선후기의 차를 통한 만남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책은 차 문화와 관련한 고문을 일일이 찾아서 해석하고 검증해가며 차와 관련한 글귀를 뽑아서 정리했다. 그래서인지 개인문집에 실린 글이 많았고 또 걸차의 편지글 형식이 매우 많았다. 차를 통한 교우에 서로 상찬하는 글을 통해서 차문화에 대해 알려준다.

 

  차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봄에 올라오는 풀은 새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성을 가지고 있는 데 이 차잎 또한 곡우 전후로 흐린 날을 골라 채취하는 방법부터 덖는 방법, 그리고 구증구포의 반복적 덖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이 알려진다. 체증을 내리고 학질을 치료하고 감기를 치료하는 약성으로 인해 다산선생님은 차를 마셨다. 이 차가 기호품으로 되기까지는 독성제거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예술품이 그러하듯 생산자 뿐만 아니라 그 수요자의 기호가 예술품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한다. 다산 선생님과 그 제자들, 그 아들 정학연 정학유 등이 차를 애호하고 즐기지 않았다면 초의스님의 차는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또한 추사의 까다로움과 그 우정을 나누었던 벗들이 없었던들 차문화는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자하의 남차시병서 그리고 홍현주의 요청에 의해 동다송이 씌여지는 과정에서 그들은 차를 매개로 인생을 나누었고 삶의 깨달음을 나누었고 시정을 나누었고 무엇보다도 차의 그윽한 맛을 나누었다.

 

  다산 선생님이나 추사 선생님의 걸명시 또한 때로는 구걸하고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거칠고 험하게 차를 보내달라고 하는 편지글은 웃음을 선사한다. 조선 후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가 차에 미친 차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차를 둘러싼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나는 이 봄이 올 때까지 차를 달여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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