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에게, 강우방 예술론
강우방 지음 / 솔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한 이야기가 있다. 70대 중반은 은퇴 학예사의 이야기이다. 공무원으로서의 신분도 은퇴하고 대학교 교수 신분으로서도 은퇴한 한 미술사가의 이야기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평생 몸담고 공부한 미술사에 매진해왔고 또 그 공부를 젊은이의 열정으로 이어가며 한국 건축과 불교 사찰 건축에 드러난 무늬의 의미를 쫓고 쫓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드러난 무덤양식 속의 무늬와 건축양식 속에 드러난 무늬의 상징성을 이해하는 코드를 갖게 되었다. 나는 [한국미술의 탄생]에 이어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무늬는 고대사로부터 그 보편성으로서의 공통점과 특수성으로서의 표현의 차이를 가진다. 그러나 무덤양식이 의미하는 것은 생명과 죽음과 사후 세계이고 또 왕이 상징하는 것은 용인데 그것이 무늬상으로 어떻게 원초적으로 생명이 나타나고 형화되어 표현되는지에 대해 '영기화생'이란 말을 사용하여 한, 중, 일의 고대사 양식을 해석하는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접근하는 방식과 격물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알아가는 방식보다는 예술품을 직접 격물하며 자신의 이해가 생길 때까지 마음 속에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이해와 깨달음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 마치 불교의 '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불화나 고구려벽화에 드러난 무늬의 새로운 색칠을 통해 무수하게 그려가며 가진 새로운 해석은 아주 설득력있게 무늬와 도상의 설명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그 예술품이 사용되고 수요되는 주체와의 지위와 상징과 더불어 일목요연하게 설명된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우리나라 신라 금관에 사용된 옥벽이 태아의 모습, 즉 생명의 단초의 모습이며 그것이 홍산옥기에 드러난 옥벽에서 용모양의 옥으로 화해가는 과정을 보며 한, 중, 일의 문화가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민족적 경계없이 서로 교류하여 공유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고 설득력있는 것이었다.

 

  선생님 자신이 무엇보다 공부를 사랑하였고 한국미술을 통해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공부인연을 깊게 만들었고 그래서 인연지어진 '일향'연구소의 탄생과 계속된 공부과정에서 드러나고 완성되어가는 세계미술사에 대한 공통적으로 나타난 보편성의 발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감동적이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의미있는 과정이 되는 것은 스스로의 즐거움과 의미성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불교미술사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인연의 만남은 한 곳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여 오랜 세월을 발효시켜가면서 '돈오점수'의 과정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때가 되어 그를 통로로 해서 드러난 신의 비밀이요 진리의 발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직은 뭔가 일목요연하게 체계잡힌 것이 아닌 까닭에 제목을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로 붙인 것은 어느 때인가 선생님의 새로운 책이 탄생하기 전의 초고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세계미술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붙든지 또는 어떤 제목의 책이 자신감과 더불어 나올 것을 기다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뜻으로 세워지는 길만큼 분명하고 뚜렷하고 가능성이 확실한 길이 또 어디 있을까? 나이로는 한참 어리지만 그 열정과 학구열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한 후학이 그의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됨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시단의 고은 선생님과 비슷한 분이 있다면 한국미술의 강우방 선생님이다. 라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의 책을 좀 더 전작으로 읽어갈 듯 하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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