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이야기
최경한 외 / 김영사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선생님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인터넷에 올려진 서재지인의 페이퍼를 통해서였다.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서재마실을 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앉은 그림이 좋아 유심히 쳐다보다가 퍼왔다. 아이들이 괴발괴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뭔가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마치 먼 곳에서 지나가는 바람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게 담아두고도 그 후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우연히 최근에 또 서재지인이 올린 그림을 보다가 이 책을 추천받게 되었다.

  장욱진 선생님을 존경했던 사람들은 우선 선생님의 삶에 반해버렸다. 그림에 몰두해있을 때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열중해 있다가도 작업이 없는 공백기는 그야말로 술로만 살았던 특이한 이력이면에 그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한 자세가 사람들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자화상'을 쳐다보면 시원하면서도 곁을 쳐다보지 않게 쭉 뻗은 길... 그 속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고 모자와 우산을 들고서 평온한 모습으로 걸어온 한 신사....노란 논길인가 밀밭길인가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풍요로우면서도 여유로운 그의 인생길을 쳐다보게 한다. 아마 선생님의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나무 한 그루와 몇 점의 구름 그리고 새 네마리가 자유롭고 느긋하게 나는 모습...

  당신의 아내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부탁받은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는 어느 날에 화실로 들어가서 일주일동안을 식음과 수면을 전폐하고 그려낸 그림... 그리고 문을 열고 아내에게 그림을 던지면서 쓰러져서 석달동안 사경을 헤매이었던 이야기도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을 지켜봐야 그 사람됨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돋보인 작품이다. 경봉스님과의 만남에서 '뭐 하는 사람인가?'하는 물음에 '까치를 잘 그립니다.'라고 하는 대답 속에 자신의 지위나 명예보다는 그림 그리는 자신을 말하는 모습에서 경봉스님도 사람됨을 알아보게 된다.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부분의 작가연보에는 백성욱 선생님과도 함께 어울리었던 시간들이 도인은 도인을 알아본다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그림, 전혀 사실성과는 관계없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마음을 쫓아본다. 진묘묘의 그림을 한참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왠지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내의 자신에 대한 마음, 그것은 늘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보살의 마음이었을까? 뼈대만 남은 그의 그림은 자신의 삶처럼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하고 자신의 삶의 핵심을 위해서만 자신을 소모시켰던 그의 삶과 정신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는 도를 추구했던 것이다.  도의 그림을 담아내기 위한 일체의 형식의 생략과 치열한 구도의 삶이 그의 인생을 요약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모습이 어떠하건 그 삶을 모습 이면에 그가 추구했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만나는 길이 아닐까? 다시 청명해진 봄 하늘 위에 그의 그림 하나 하나를 그려보면서 나는 그가 그림을 통해 닿으려했던 잡히지 않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잡을 수 없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들을 수 없는 봄의 햇살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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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아내-진진묘
이 그림 아시죠?
단순의 극치입니다. 정갈함속에 꼿꼿한 단아함이 풍기는 아내의 그림이죠.
막걸리 값 대고, 화구값 대느라고 기름장사, 책장사 마다하지 않은 아내.
예술가로서의 장욱진은 좋아하지만
생활인으로서의(가장) 장욱진은 싫어합니다.^^

달팽이 2006-05-0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체의 군더더기를 생략한...
한 마음으로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았죠...
뭐라할까?
선생님의 정신세계가 아주 단순하고도 형이상학적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우님이 언젠가 올리신 자화상이란 그림도
가진것이 양복 한 벌, 모자하나에 우산 하나이지만 그래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보리밭길을 그것도 시원하고도 곁가지없는 한 길을 따라가는 자신의 삶이 바로 마음 속에 가진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2006-05-05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5-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캭! 그렇군요..
왜, 진진묘를 진묘묘로 읽었을까?
근데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들은 어찌 그렇게
똑같이 세속의 삶으로서는 남편으로서 또는 아버지로서 꽝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