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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부부 -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 사랑, 삶을 이야기하는 사진 에세이
지아오 보 지음, 박지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어느덧 또 봄이 다 지나간다. 매년 맞이하고 보내는 봄이건만 꽃이 떨어지는 것은 장엄하고 세월이 흐르는 것은 애절하다. 그것은 이 지구별 위의 삶이 우리들의 인생이 지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것들 중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세월을 떠나 '가족'이란 이름이다. 그 중 남남이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족을 만들고 그 속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세대를 물려주고 떠나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낯선 이야기처럼 되버린 이야기이지만 아직 경제성장과정과 급속한 도시화의 첫 세대들이 생존하고 있는 지금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 속 따뜻했던 가족과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런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그게 누구이든지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거창하고 이름난 어떤 유명인사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진실하고 정직하게 한 시대를 살아간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베어 있다. 굳이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그게 바로 우리들의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자신의 중년을 보내면서 이러한 어머니 아버지와 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를 하였다. 30년 동안 8000여장의 사진을 찍어가면서 그는 부모님을 자신의 가슴에 남겨두고자 하였다. 비록 그것은 개인의 가족사에 대한 지극이 개인적이고도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 보편적 정서와 그 소소한 일상의 감동은 전 대륙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들이라면 조선 말기나 해방 후 또는 전쟁 직후의 삶 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 시대적으로는 191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시기 중국의 정치상황과 시대상황은 그야말로 격변기였다. 1942년의 대기근과 국공합작과 공산화, 공산당식 경제개발, 문화대혁명, 그리고 등소평의 경제개혁 그리고 시장 개방의 변화를 따라 변해온 중국의 삶의 모습을 사진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볼 수 있다. 10명이 넘는 자녀를 가지고도 한 두 명만이 생존해 살아가고 숱한 죽음들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했고 그 지독한 굶주림과 가난의 시대에도 부부 간의 애틋한 정과 부모와 자식 간의 존경과 자애의 깊은 교류 속에서 느끼는 감동은 이 책이 왜 대륙을 넘어 반도의 끝까지 와서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들의 부모 세대들은 한국전쟁을 겪고 더 빠르게는 일제치하의 끝에서부터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들이 전쟁 속에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고 뼈에 사무치는 가난과 굶주림을 겪으며 오직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과 자식을 배우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일구어온 이 한국 사회가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정신적으로 황폐하고 병든 기형적 사회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살아온 내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비록 저자처럼 용기와 노력과 재주를 갖진 못하였지만 조금 더 자주 부모님을 찾아 뵙고 기쁘게 해드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무조건적이다. 비록 물질주의에 병든 지금은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과하여 대리충족하려는 병든 사랑도 보이지만 그래도 세상이 가진 사랑 중 순수한 사랑에 해당하는 것이 이것이다. 동물들도 자식을 돌보고 사랑을 줄 줄 안다. 그러나 사람만이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고맙게 여기고 또 노후를 보살펴줄 수 있는 인지력을 가졌다. 물론 얼마나 많은 세상의 자식들이 부모를 그렇게 사랑으로 공양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부모로부터 받은 무제한적인 사랑의 기억만은 누구나가 간직하고 있다. 그런 부모님들의 마지막을 관심과 사랑으로 준비하고 기록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이 책은 보여준다.
봄이 또 지나간다.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또 한 해 늙어간다. 이 봄이 쓸쓸한 이유이다. 고향 집을 떠나올 때면 어김없이 저자의 발길을 한참동안이나 지켜주시던 어머니의 등불......... 이 시대에 어느 곳에서 그와 같은 위안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