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중국사 청 - 중국 최후의 제국 하버드 중국사
윌리엄 T. 로 지음, 기세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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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의 동양사는 주로 서양인들의 시각에 의한 것이었고 아시아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아시아사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은 아시아가 서양과는 다른 발전경로를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서양처럼 오랜 민주주의와 산업발달, 그리고 전근대성의 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파 및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 등과 같은 일반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저개발성 및 낙후성은 서구와 같은 단계를 밟기에는 부족한 정치체제였으며 경제적 기반 조성 또한 없었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로는 아시아의 근대 역시 서구와 같은 방식의 흐름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생적인 발전 속에서의 시장의 형성과 자본의 맹아인 화폐의 발달, 상공업의 발달과 중세도시의 발달이 있었고 봉건제를 혁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서구적 관점에서 중국을 들여다본, 청이라는 시대의 중요성은 중국의 근대 사회로의 이행의 단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청나라는 중국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청나라에 와서 중국은 명나라 때의 영토의 두 배에 이르는 넓이를 확보했다. 청나라는 그 외 많은 봉건적 잔재와 불충분한 근대화로 인한 치욕스런 사건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중국 역사에서 그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와서 중국의 인구는 1억명에서 4억 5천만에서 5억 정도까지 증가를 했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청은 자산으로 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생산력의 증가이다. 농토의 증가와 노동력의 증가 그리고 새로운 농토의 개간, 새로운 영농법과 강력한 통치체제의 확립은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족이 통치하였을 때에는 한족의 지배에 대항한 주변민족들의 필연적 분리주의를 가져오게 했던 반면 만주족에 의한 새로운 통치는 중국사회가 다문화사회와 다문화정책으로 가는 중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이다. 지역을 다스리는 방법에서도 청은 한족과 만주족 또는 다른 민족들의 공동통치를 기본으로 하였다. 이 청제국을 자산으로 현재 중국은 50여개의 소수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통치방식의 세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구 13억 중국의 잠재력이 현대에 와서 꿈틀거리고 있다. 경제는 이미 미국 다음으로 2위가 되었고 또 미래의 어느 멀지않은 시기에 패권을 쥐게 될 것으로 세상은 내다보고 있다. 다음으로 그 국격에 걸맞는 군사력의 확장과 아시아에서의 패권 확대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하였고 미국의 아시아 진출 정책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그만큼 중국의 세계에서의 중요성이 그리고 그 위협이 커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중국의 근대화가 서양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견제 속에 놓여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거대한 용의 움틀임은 더욱 시대적으로 빨리 세상을 끌여들였을런지도 모른다.

 

  서양처럼 확실하고 배경을 갖춘 봉건적 잔재의 청산도 아니었고 '중체서용' 식이 아닌 철저한 근대화도 아니었던 중국의 근대화를 대체로 실패한 것이라보 보는데 주저함이 없다. 청일전쟁에서의 패배의 충격과 그 뒤 이어지는 사회주의화 역시 중국의 현대화를 늦추었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중국에 서구문물의 전파와 그로 인한 중국의 내재적 발전을 지켜봤더라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 중국의 힘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국의 탐욕에 의해 중국을 큰 식단으로 여겼기 때문인지 그 원인을 무어라 단정하기 어렵다.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 그토록 집요하게 팔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내부적 개혁에 대한 서구의 방해공작이 없었더라면.....중국에서의 자본의 형성이 어찌 어려웠겠는가? 중국에서의 봉건적 잔재의 청산이 어찌 불가능한 것이었다고만 말할 것인가?

 

  청 말기의 신사층의 형성과 그들에 의한 자생적인 반봉건제의 청산과 근대화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처럼 반외세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의화단 사건과 같은 복고주의가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태평천국운동, 변법자강운동 등 신사층에 의해 주도된 지방분권주의와 근대화의 움직임 또한 외세의 개입없이 자생적으로 두었더라면 상업의 발달과 자본의 형성에 의해 낡은 봉건적 잔재의 일소까지 가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창출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중국 역사 최후의 제국이었던 청의 몰락은 새로운 중국사회를 예견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열강들에 의해 찢기고 유린당한 깊고 오랜 상처 위로 오랫동안 움츠렸던 중국이 이제야 비로소 많은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중국에 의해 다시 쓰여질 세계사의 시대가 오면(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청 제국에 대한 중국 스스로의 평가는 다시 내려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 역시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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