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선 : 사랑스런 추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7
윤동주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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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가 '사랑스런 추억'이다. 윤동주 시인은 생의 마지막 시기 3년을(1942~1945)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둘러보니 고향에서의 유년시절과 연희전문학교시절을 둘러보며 인생을 고민하고 시대를 고민하고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던 그 때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 윤동주 시인이 향했던 고향에의 꿈이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나 문학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사랑스런 추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73편의 시를 통해서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의 시작이 어떤 흐름으로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의 조국의 현실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발전해갔는지....조국을 빼앗긴 시대의 지성으로서 한 민족주의자의 고뇌가 어떠했는지 조금은 읽혀진다. 15세의 나이에 발표한 '초한대'와 '삶과죽음'이라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시적인 자질을 타고 났으며 또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는지 도저히 15살 소년의 사유라고 볼 수 없는 면들을 보여준다. 그 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조국의 현실을 알게 되고 민족운동과 조선의 문학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일제의 증오의 대상이 된 연희전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때에 민족 운동의 본산인 연희동산을 찾아오는 이들은 다 제각기 뜻이 있어 온 젊은이들이었다." 라는 유영 전 연세대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시기 20살을 갓 넘은 나이에 이미 윤동주 시인은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자신의 소명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그 때 나온 시들을 보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의지를 세운 글들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길'에서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거외다."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 였을까? 이중섭 화백처럼 공부를 하러 간 것일까? 그런데 3년이 지나 고국으로 돌아오려 할 때 재일한국인청년들의 모임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그는 형무소로 가게 된다. 그의 사촌 송몽규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한다. 윤동주 시인의 형무소에서 죽게 된 동기도 분명치 않다.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라고 하면 지독한 옥사가 있었던지...아니면 어디에 적힌 말대로 생체실험용 주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조국을 떠난 식민제국의 나라에서도 대학동기생들이 다 나온 송별회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민족에 대한 독립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우리들은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전선을 전전긍긍하면서 정규직이 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대가 어른을 만드는 것인지 이미 성숙한 영혼으로 태어나 시대적 소명을 읽고 자신이 그에 맞게 행동한 것인지...일제 시대와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살다간 사람들의 나이에 비해 이른 성숙함에 때로는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성숙함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민족을 위해 살았던 그들이 추구하였던 그 '민족'이란 또는 '조국'이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게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들이 몸바쳐 희생한 그 '민족'의 자랑스러움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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