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 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랬다. "나는 춤이다", "내 입 속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내 무한한 혁명들에게"를 보았을 때에도 희망버스로 세상의 부조리한 일들에 마음을 함께 한 곳에서 그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알아보았어야 했다.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를...그리고 처음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그녀의 작품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원효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게 했으니 원효스님에 대한 국내의 역사서에 실린 대중매체의 왜곡을 어느정도는 걷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한다. 삼국유사의 "요석공주와 정을 통해 설총을 낳다"라는 부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원효 스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점만 하더라도 이 소설이 가진 소명은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원효스님의 책을 이미 두어 권 사두고 언제 제대로 읽어볼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이 '발원'이란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다시 읽어보아야겠구나 하고 나름의 '발원'을 하게 되었다. 그 책에 담긴 원효스님의 진실한 뜻을 알고 싶다는 발원 말이다.

 

  2권에서는 나제전쟁의 한 복판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가져간다. 그 속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며 많은 죽음을 접했을 원효스님.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본래모습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진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자신의 껍질을 모두 벗어던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절벽에서 두 손을 놓아버리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혜공스님과 선덕여왕의 죽음과 함께 서라벌의 정치판도는 변화되고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그렇게도 마음깊이 신뢰했던 요석은 원효와 아미타림을 볼모로 한 정략결혼에 이르게 된다.

 

  바닷가에서 가족을 모두 죽이고 생명을 거두려는 한 남자의 영혼을 보살피며 깊은 선정에 든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열어가고 국사의 약조로 귀족들의 불교를 책임질 의상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을 재촉하면서 두 사람의 길은 갈라진다. 두 사람의 동행이 서로에게 미쳤던 영향 중 의상은 원효를 만나면서 달라진 불교에 대한 시각과 깨달음은 진정한 불교적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은 가파르게 카타르시스를 향해 치닫는다. 과연 원효와 요석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나는 소설을 읽어가고 있었다. 요석공주를 품게 되는 원효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이다. 결국 정략적인 결혼의 실패와 김춘추의 정치적 야망 속에 아버지를 배신하고 반대하는 요석공주의 풍전등화 속의 운명을 살리기 위한 설정으로 원효는 요석과의 만남을 계약한다. 자신의 모든 명성과 스님의 지위를 버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요석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김춘추가 펼쳐놓은 덫을 원효스님은 더욱 큰 지혜로서 헤쳐간다. 승려의 신분과 모든 명예를 떠나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에 의지해 사는 선각자였으니까. 실제 정치에서도 정권이 성골에서 진골로 넘어가면서 원효의 반정부사상을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이용하고자 하였을 테고 원효스님에게는 그 모든 대중적인 지지와 명예 그리고 승려의 자격까지도 박탈하는 음모가 요석공주와의 사통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눈 앞의 한 여자와 그 태아를 살리기 위한 부처님의 자비로 원효스님은 그 길을 홀가분하게 걸어갔던 것이라 생각한다.

 

  경주에 이틀동안 다녀오면서 서라벌의 한 가운데 놓인 대릉들 그리고 선덕여왕릉과 첨성대를 둘러보았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북적했던 신라의 수도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의 삶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치료하며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려고 하였던 눈밝은 수행자를 만난 듯 하였다. 그래서 '발원'이란 책 두 권을 들고서 경주를 돌아보는 내내 내겐 소설 속의 풍경들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눈 앞에 나타났던 것일까? 나도 책을 덮으며 작은 발원을 하나 생각한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의 뜻을 진실로 알고 싶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영화 한 편처럼 원효의 일대기와 요석공주와의 보다 깊은 사랑의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한 여자를, 또는 한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려면 우선 그 마음에 깨끗함과 경건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아에 대한 욕망으로는 결국 업장을 짓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보다 성숙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세상의 보다 성숙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던지는 그녀의 물음에 우리는 삶으로서 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각자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