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크리스틴 브라이든 지음, 김동선 옮김 / 인터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날 길을 가다가 여기가 어딘지 낯설어보여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걷는 방법을 잊어버려 그 자리에 멈춰서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게 된다면 또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이 이야기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질병 중의 하나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출현으로 인간은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질병들에 대처해야만 하게 되었고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노인성 치매는 자신뿐만 아니라 24시간 옆에서 지켜보고 보호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사회적인 문제화되고있는 현상 중의 하나다.

  기존에 알츠하이머나 노인성 치매에 관한 책들은 주로 호스피스 활동가들이나 간호원 또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의 입장과 관점에서 병의 진행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따라서 이해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간호자의 입장이나 제 3자의 입장에서 편한대로 보았던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초기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조기치료와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알츠하이머에 맞섰던 당당한 크리스틴의 용기와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위시한 노인성 치매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시키고자 한 그녀의 배려심은 이런 기존의 문제점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보다 인간적인 존엄성을 갖추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그 어떤 병이라도 그러하듯 병 그 자체와 대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먼저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가 더욱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병보다 먼저 우울증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분노를 표출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때로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들을 더욱 왜곡시키고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시켜서 불필요한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왜곡시키지 않음으로써 보다 친근감과 사랑을 길고 깊이 유지할 수 있으며 이런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면이 병에 더욱 능동적이고 자신감있게 대면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병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 병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사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따라서 병의 진행과정속에서 더욱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렇게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되면 병과 자신의 죽음의 과정을 보다 의미있고 긍정적인 과정으로 이끌 수 있게 됨을 크리스틴은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삶으로 돌아와보자. 나는 과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비록 열심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분명히 삶의 방향은 나에게 있다. 그 삶의 방향이 그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어느날 문득 숟가락 드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날 문득 길을 걷다가 나의 다리에 내가 넘어지게 되더라도, 나의 사고하는 능력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나의 온 몸의 세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갈 때, 바로 그 때에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내 삶의 의미가 있다면 적어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내 몸은 부서지더라도 내 마음은 자유로이 허공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크리스틴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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