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오쇼 라즈니쉬 지음, 장순용 옮김 / 들녘미디어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들은 늘 수많은 문제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동안에도 열가지, 스무가지의 문제가 새롭게 생겨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방법은 늘 또 다른 문제의 눈더미속에서 헤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쇼 라즈니쉬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것을 보라고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문제가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빈 바탕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보게 된다.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우리는 일생동안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인생의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우리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보다 많아진 문제이며 보다 복잡해진 문제일 뿐이다. 참다운 지혜는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진리의 문이 놓여져 있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재산, 명성, 지식, 자신의 자아마저도...그러나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들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허상뿐인 자아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어렵고도 쉬운 일인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로움을 벗어날 친구들을 가지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 중 고독함을 가진이는 드물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요 외부로 드러난 것이다. 고독함은 깊은 침묵의 바탕이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진정한 고독함을 느낄 줄 아는 자만이 비로소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자아로부터의 자유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비로소 삶과 죽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시간이 없는 곳이 바로 영원성의 공간이다. 말이 공간이지 그것은 공간도 없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가 없는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것은 과거에 얽매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과 두려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직 지금을 온전하게 느끼고 있을 때 나는 뽑은 이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오로지 책을 읽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온 몸의 세포는 보다 민감해지고 그 뚜렷한 각성 앞에 '있음'의 상태만이 현존할 뿐이다.

  지혜는 바보만이 가질 수 있다. 바보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바보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바보도 없다. 바보라는 생각만으로도 삶과 죽음이 생긴다. 지혜는 삶과 죽음이 사라진 바보 그 자체가 되어야만 수직적으로 우리를 통과해서 생긴다. 어리석음은 그러한 생각없음이다. 지식없음이다. 생각의 뿌리가 잘려나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지혜의 빛을 느낄 수 있다. 뿌리뽑히지 않은 잎을 보라 가지를 보라 뿌리로부터 끝없이 제공되는 양분으로 또 다른 잎을 또 다른 가지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몸착의 뿌리, 자아의 뿌리가 깊다. 그 깊은 뿌리를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걱정하지 마라. 그저 뿌리가 실체가 아님을 보면 된다. 그저 빛의 현존을 느끼면 된다. 순간 순간 현재에 살면서 각성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진리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 눈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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