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분의 솔직함을 믿는다. 아니 정치인으로서는 서툴렀지만 그의 양심과 지성을 믿는다. 이미 학자로서 나는 오래 전에 그의 복지정책에 관한 저서를 읽었으며 경제학카페를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경제학자로서의 경제적 비전을 제시하던 한 시선과 만났다. 또한 가슴 속의 정의로움이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한 인생과도 만났다. 나와는 띠동갑이다. 내가 열 두 살 어린 한 갑자 인생후배가 된다. 그처럼 뛰어나지도 못하고 그처럼 사회적 능력이 없고 그처럼 세상을 자신의 시각으로 보아내지 못해도 그의 글을 따라가면서 많은 공감과 시선의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따뜻함과 정의로움에 대한 갈망 그리고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반항심이 비슷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그의 개인사에 가까울수도 있고 주관으로서 풀어쓴 한국현대사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그리고 한 정치인으로서 시대의 중심부를 살아간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 한국현대사에 대한 몸의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베이비붐세대에 태어나 군사독재정부시대에 학창시절과 성장기를 보내고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정의를 위해 시대의 호흡을 함께하려했던 대학시절과 우리 현대사의 내가 투표한 그리고 유이하게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시기에 대한민국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간 한 솔직한 인간의 고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시대의 한 가운데를 바라보고 회피하지 않았고 또 그 속에서 온몸으로 살아갔기에 그의 개인사는 한국현대사로서도 손색없는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서문을 읽으면서 현대사의 굴곡을 거쳐가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경제적 성장을 통해 시대가 진보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란 말로 희망의 미래를 보여준다. 한 시대 속에 갇힌 인간이 볼 수 없는 학자적 근기와 넓은 시각이 내겐 시원한 설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사를 설명하는 어떤 통사나 역사보다도 더 시원한 통찰을 하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 내부에 아직 남아있는 질병적인 사고나 고정관념과 질곡들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설명해낸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설명 또한 공감이 많이 간다. 성장의 시대를 질주해온 우리들의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존재보상을 받기 위한 마지막 정치적 무대가 바로 이번 대선이었다는 설명도 또한 명쾌하다.

 

  20세기는 대한민국(아니 한국이라는 말이 더 좋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제에 대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 살아보자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세월이었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묻혀버린 시간들이었다. 인권과 자아실현과 고차원적 욕망은 잠시 유보해두고 우선 인간적인 삶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온 역사였고 이를 정치가 이용했건 시대가 그런 정치를 요구했건 그 시대적 특징은 그렇게 볼 수 있겠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물질적 삶이 충족되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구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한국처럼 급속하게 성장을 이룩한 사회만이 갖는 고통스럽고도 무거운 변화를 가져왔다. 성장이 빠를수록 그 노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고 사회의 성장동력도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선 앞으로 우리 사회게 해결해야할 숙제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병영으로 그리고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변해온 데에는 그 속에서 자각된 주체의 활동과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미래사회의 주인인 지금의 젊은 세대들 또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자라 부족함이 없고 기성세대에 비해 물질적 욕구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도 과거의 유산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이 창의성과 주체성으로 자각있는 역사의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사회의 미래는 밝은 것이다. 물론 그들 앞에도 두 가지의 길이 놓여져 있다. 시대는 달라도 시대적 소명과 공기는 달라도 그들 역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로서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고 보다 인류보편적 가치에 눈을 떠서 광장을 무대로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할 것인지의 고민이 가로놓여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엔 그 역사적 자각과 세상을 위한 마음이야말로 기성세대에 발잡히지 않고 미래사회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엔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관계도 저자가 제시한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단계에서 생존의 욕구차원의 대응관계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의 관계로까지 서로 발전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바람직한 통일의 새역사를 열어갈 수 있는 것이며 한국의 미래가 그 때에야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열쇠가 바로 지금 우리가 품은 의지며 마음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는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그 세계를 열어가야 하겠지만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가 그 소통과 열림 속에 가치와 비전을 이어받고 공감하여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선배세대의 피와 희생 속에 물려받은 유산을 더 멋지게 가꾸어 그들의 미래세대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사명감을 갖는다면 그것이 저자가 바라는 미래는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모처럼 한국현대사를 시원하게 그리고 희망의 마음으로 읽었다. 보수와 진보라는 통념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남북관계나 민주주의의 발전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려한 그의 학자적 양심에도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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