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태사공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하면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을 연주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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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5-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사마천과 만나는 것은 그의 문장기교나 표현 역량으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으로 통하게 하는 사다리일 뿐이다. 그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에만 감탄하는 것은 <사기>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에 현혹되지 말아라. 나비를 놓친 소년의 그 마음을 읽어라. 진실은 글자 속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