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우터골의 가는 봄
마당가에 핀 꽃잔디. 우리나라의 패랭이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긴 했지만 원산지는 미국 동북부이다. 4월부터 5월까지 저 작은 꽃잎이 폈다 졌다를 반복하며 오랜 생명력을 보여준다. 번식력도 놀라워서 한 삽 퍼다 심어 놓으면 이듬해 봄엔 두 배정도로 영역을 넓히는 녀석. 크고 화려한 장미가 부담가는 시선이라면 엄지손톱만한 작고 앙증맞은 저 녀석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는 일도 사는 일에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 아름다운 것을 기준하는 일이란 우리가 가진 마음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이제 막 시집온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새색시의 고운 앞치마 같은 꽃잔디.
'나의 화려한 계절은 가고'라면서 영탄조의 한숨만 내 쉬기에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 비장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누가 그랬던가 자신의 숫처녀 단물을 다 내주고도 한 점 후회없는 삶이 비로소 성녀의 삶이라고. 그래서 창녀와 성녀는 비유의 저울대 위에 종종 등장하는 세상. 욕심없이 살다 가는 우리들의 삶은 그래서 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신의 고결한 눈동자는 어떤식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는가. 밝고 화사한 봄꽃? 붉게 물드는 저녁 노을? 눈부시게 화려한 명품이라는 물체? 잘 다듬어진 정원에 피어 있는 정갈한 튜울립?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시간은 저녁 노을과 맞물리듯이 세상 아름다움의 출발은 갸녀린 새순부터다. 저것이 없는 생명의 출발선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늙은 할머니의 바삭바삭한 손을 마주잡은 세살배기 어린 손자 녀석의 갸날픈 손이 내 집 앞마당가에서 지금 한창 실로폰 소리처럼 웃어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