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평전 - 쾌활한 천재 개제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38
린위탕 지음, 진영희 옮김 / 지식산업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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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태어나기를 큰 그릇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나야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가물하지만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밝은 영혼의 빛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빛을 드리우고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생명의 빛인 사람. 소동파도 그 중 한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자신의 직함에 매이지 않았던 자유로운 사상과 삶은 그를 천황에서부터 국가의 왕과 재상 말단 관직의 사람 그리고 모든 백성과 천민까지 삶을 나누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와 교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영감을 주었고 깨달음을 주었고 또 삶이 하나의 공부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늘 장난끼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매력적이다.

 

  그저 그가 시를 잘 짓는 시성이었다고만 한다면 소동파의 삶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을 하늘에까지 뻗쳤다. 아니 타고난 천상의 빛을 대지 위에 드리웠다고 보는 것이 옳을런지도 모른다. 지상의 어느 지역과 어느 관직과 어느 공간 속에서도 그의 삶이 보여주는 유쾌함과 직설적인 면모와 솔직함은 노력으로 살아지는 삶이라고하기엔 너무 타고난 성숙함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이 생에서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영화의 줄거리를 다 알고서 그 영화에 몰입하여 있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마디마디의 삶에 초연하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또 마음을 다 쏟으면서도 거기에 영혼의 패인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관직에 있으면서 정책으로서 남긴 궤적들은 그가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폭우와 그로인한 흉작을 예견해서 자연재해를 대비해 미리 분주히 움직이며 대비하여 대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이야기라든지 왕안석의 신법이 국민들에게 가해질 폐해를 미리 알고 그 폐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며 정계에서 많은 비난과 모함을 감당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노파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자신의 살 거처마저 내주어버렸던 일상사의 이야기까지 그는 진정 백성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진정한 이웃으로 산 관리였다.

 

  그러면서도 당대의 많은 시인 문장가 도가 불가 유가 사상가들과 교유하였고 또 그들과 일생을 두고 친분을 나누었으면서도 그의 처 또한 소동파의 이런 삶을 모두 이해해주고 옆에서 지켜주었던 것으로 봐서 그는 분명 천복을 타고났음에 틀림없다. 자신의 처지와 삶을 모두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재능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았던 그에게는 외로울 때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과 정견이 맞지 않아서 오랫동안 의견의 대립을 가졌던 왕안석이나 장돈조차도 훗날 그들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그들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았던 그의 인격이야말로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000년의 세월을 넘어서 나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그의 마음은 사물과 자연을 대할 때 그가 가진 진리의 깊은 눈이었다. 불교든 유교든 도교든 진리를 향한 그의 눈은 종교와 형식에 상관없이 진리를 접할 때에는 진리의 빛을 띄었고 또한 자신의 진리의 색채를 문제삼지 않고 넓게 친구들과 도로써 교류했으며 자신의 삶 속에서도 아무런 거침없는 도를 쓰고 살았던 천상의 시인, 소동파는 그래서 거침없는 쾌활한 자유분방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삶의 성숙함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기둥이 무엇일까? 그 정신에서 뻗쳐 삶으로 드러난 그의 삶, 온 백성에게 친구였고 스승이었던 동파의 삶이 오늘날의 우리 세상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또 그토록 매력적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한다.

 

  임어당 선생님은 혹 자신의 전생에 소동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소동파에 대한 많은 애착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 삶의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새삼스런 진리가 상기된다. 그래서 이 평전은 작고 많은 글씨를 담고 있고 읽어내기에 만만치 않은 원고분량임에도 쉽게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는 데에는 임어당 님과 소동파 님의 정신적 섞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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