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아픔은 아픔을 만나면 서로 위로가 되는가보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197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아픔들이 만난다. 그들의 아픔은 서로의 상처를 핥듯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살아온 삶이 달랐지만 그들이 사는 위치도 다르지만 그 아픔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하나로 그들은 친구가 된다. 전쟁은 기성정치인들이 편안한 방안에서 결정을 하지만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야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그 어느 곳에서든 자행되어 왔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삶에서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산다. 그러나 그 아픔과 상처가 삶의 아름다움을 갉아먹지만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아름다운 것...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며 또 삶과 죽음이 동시에 혼재하는 그런 마음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74년 필리프 프티라는 프랑스인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매고 그 줄 위를 걸었다. '20세기의 예술적 범죄'라고 불리웠던 사건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내용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그가 18분 동안 했던 강연이 동영상으로 나와 있었고 그의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가 있었다.

"한 쪽은 거대한 산처럼 제가 아는 인생입니다. 다른 쪽은 구름 속이죠.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찼을 것 같지만 비어 있는 거죠...."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다.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인생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이 소설 속의 뉴요커들은 제 각각의 삶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한 번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것이 우연처럼 소설 속 어느 공간에서나 화제가 되고 있는 세계무역센터 위를 걷는 사람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110층 400미터 상공 위에 줄 하나가 눈 앞에 놓여진 길을 걸어야 한다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죽음' 이다. 그리고 그 눈 앞의 죽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삶'이겠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 사람들을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줄을 타는 사람이 그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아닐까? 그러니 관습이나 과거에 의해 굳게 묶여 있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과거에 얽매인 거대한 굴레를 벗고 현재를 살기 위한 노력은 그야말로 거대한 지구를 굴려내어야 하는 삶이 아닐까? 그것은 제 각각의 상처와 역사 속에 살고 있느라고 주변을 현실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데 모으는 것이고 그 모은 시선에 삶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삶은 또 다시 흐른다. 상처가 시작된 것도 사람이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 사이에 난 사랑의 길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 위에 만난 사람들.... 기억을 환기시키는 물건들.. 그 기억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마음들....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길들...그것이 서로를 소통시키는 길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속에 모든 것을 서로 섞어서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서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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