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슬프구나

슬픈 꿈이여.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겨울바람에 진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사대부집안의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숙명적인 운명으로

슬픔의 삶을 살다 간

난설헌의 묘지 위에

잠시동안만이라도

눈물을 헌사해야겠다.

어찌 그토록 시린

시련을 주려고

성장기의 그녀의 배경엔

따스하고도 사랑가득한

가족을 주었으며

글공부를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시를 주었단 말인가

그녀의 삶을

품을 수 없는

조선시대의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쓰러진 새 한 마리

결국 신분제사회의 벽에

부딪혀 쓰러진

한 마리

가엾은 새 되어

지상의 삶에

부려놓은

시에 대한 꿈을 거두어

천상으로

날갯짓하며

떠나버렸다.

아! 무릇 삶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떤 인생의

경험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던가?

차라리 두꺼운 껍질로

온 몸을 둘러싸서

외부의 고통이라도

막아줄 나무나 될 것을

껍질도 없이

온 몸을 드러내고

백일의 짙은 향

세상에 드리우고

찬 바람에

장렬히 질

백일홍이었으랴

아! 삶이여

아! 슬픔이여

한낱 순간의 꿈을 깨어

시의 나라에 머물진저

지상의 울음 한 방울

천상의 시어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시 시로

태어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