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슬프구나
슬픈 꿈이여.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겨울바람에 진다.
조선시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사대부집안의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숙명적인 운명으로
슬픔의 삶을 살다 간
난설헌의 묘지 위에
잠시동안만이라도
눈물을 헌사해야겠다.
어찌 그토록 시린
시련을 주려고
성장기의 그녀의 배경엔
따스하고도 사랑가득한
가족을 주었으며
글공부를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시를 주었단 말인가
그녀의 삶을
품을 수 없는
조선시대의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부딪혀
쓰러진 새 한 마리
결국 신분제사회의 벽에
부딪혀 쓰러진
한 마리
가엾은 새 되어
지상의 삶에
부려놓은
시에 대한 꿈을 거두어
천상으로
날갯짓하며
떠나버렸다.
아! 무릇 삶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떤 인생의
경험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던가?
차라리 두꺼운 껍질로
온 몸을 둘러싸서
외부의 고통이라도
막아줄 나무나 될 것을
껍질도 없이
온 몸을 드러내고
백일의 짙은 향
세상에 드리우고
찬 바람에
장렬히 질
백일홍이었으랴
아! 삶이여
아! 슬픔이여
한낱 순간의 꿈을 깨어
시의 나라에 머물진저
지상의 울음 한 방울
천상의 시어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시 시로
태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