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
최승범 지음 / 이가서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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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에는 층차가 있다. 사물이 내는 소리와 자연이 내는 소리 그 모든 것에는 듣는 이의 마음이 주재한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소리들은 굴절되고 왜곡되고 또 마음의 지층에 따라 보다 깊은 울림으로 우리들의 마음 속으로 스며든다. 창 밖을 통해 보이는 숲에도 수많은 소리들의 차원이 존재한다. 바람을 타고 잎새를 뒤집는 가지들과 햇볕이 떨어지는 잎새의 소리들....날벌레들 날아다니는 소리에다가 봄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의 소리 그리고 아침의 숲을 가득채우는 산비둘기 소리, 참새 소리, 까치 소리, 까마귀 소리, 직박구리 소리, 휘파람새 소리도 간혹 들린다. 생명의 소리 가득한 휘황찬란한 숲에는 숲의 소리가 있다. 그 소리의 층차와 다양성에 사뭇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듣고 느끼는 마음이 있다. 마음이 그 곳에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맛을 보아도 맛을 알지 못한다는 말처럼....마음의 존재의 실상이 있는 자리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소리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소리는 무엇일까? 조선 선조때 서애 유성룡과 백사 이항복의 대화가 재미있다. 서애가 "술거르는 소리"라고 답하자 백사는 "가인해군성, 즉 미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답해 좌중을 한바탕 웃음에 들게 하였다. 아무래도 인간의 허기진 배에 입에 군침이 도는 음식소리야말로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해 귀기울이게 만드는 소리이다. 좌르르 톰방톰방 시름을 잊게 하는 술거르는 소리부터 찰찰찰, 졸졸졸 주전자에서 술따르는 소리, 호록 후루룩 국수먹는 소리, 뽀골뽀골 찌게 끓이는 소리 등은 언제 들어도 그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함께 우리들의 향수와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삶의 현장의 소리들도 많다. 사운사운 쟁기질 소리에다 쫄랑쫄랑 짤랑 짤랑 말방울 소리,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 다듬잇소리 등 시골풍경 속 그리운 고향의 소리들이 지금은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사라진 소리들이다. 찰칵찰칵 베틀소리 싸리비질 소리 돌돌돌돌 두레박소리, 팽글팽글 세월이 감기는 팽이소리 들도 얼마나 그리운 소리들인가?

 

  봄비 소리, 대바람 소리, 서걱서걱 갈댓잎소리, 동글동글 자갈자갈 조약돌 소리, 똘랑똘랑 낙숫물소리, 솰솰 물소리, 밤 개짖는 소리, 여름밤 개구리 소리, 어린 가슴 놀라던 풀숲의 뱀소리, 새아침을 알려주던 닭울음 소리, 푸두둥푸두둥 꿩울음소리, 가을밤의 눈물겨운 코러스 풀벌레소리, 아! 가을밤의 깊은 시름 부엉이 소리,

 

  소리를 채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옛 풍경 속 그리움의 소리를 채취한다는 것은 과거와 이어진 길이요. 우리들의 언어를 아름답게 되살리는 길이다. 마음이 먼저 투명해지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세월을 따라 돌고돌아 어느덧 사라져버린 우리의 옛 풍경들 속의 사물과 자연과 악기와 정서가 되는 소리들의 향연이 이 책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언제 들어도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고 편안하고 따뜻한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소리들의 교향곡을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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