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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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을 찍는 그의 첫번째 포커스는 가식과 왜곡없는 리얼리즘에 있다. 렌즈를 통해 보는 그의 눈은 서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 피와 살에 양분을 제공할 수 없었던 굶주림과 허기짐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던 삶의 고달픔이 있고, 그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얼굴과 눈빛에는 그늘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어둠에만 머물지 않는다. 50년대와 60년대의 각박한 민중의 삶에서 그 순간적 진실성을 포착했던 그의 사진에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에서 사진은 단순히 현실의 상을 그대로 뜨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에 의해 포착된 예술로서 승화되는 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순간적 진실성'이란 무엇인가? 그가 담아내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엔 가식이 없다. 그들의 생활에는 그들의 인생이 담긴 모습을 짓고 있고, 그 모습에서 될 수 있는 한 가장 진솔한 순간을 작가는 포착한다.  그 한순간의 포착이 바로 작가의 몫이다.  그 궁극적 한 점에서 담긴 사진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담겨지게 된다. 그 담겨진 내면을 우리가 눈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서 보고 감동을 느낄 때 '영원성'이 담겨지게 된다. 또한 그가 담아내는 사진에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이 담겨져 있다. 부와 빈의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다수민중의 아픈 삶을 그려냄으로써 이 사회에 대한 풍자와 고발을 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사진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다. 늘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찍는 순간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미 만들어진 사진은 그에게 있어 굳어져버린 인생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 물론 독자들이 사진을 대하는 시간은 또 다른 현재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늘 박제화된 사진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순간적 진실성'을 위해 무아의 경지에서 누르는 셔터만이 '영원성'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은 유명세를 타고 부와 명예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성에 대한 헌신이나 부나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 인격을 갖추고 있을 때만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 된다.

최민식이란 작가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런 작가의 초심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 사진 한 장 한 장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려고 했던 그의 열정과 예술혼이 스스로의 사진인생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무엇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의 내면적인 보람과 만족없이 어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랴.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우연한 기회에 그의 사진집 9집을 보게 되었다. 1950-97년까지 찍힌 그의 사진이 더욱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주요활동이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찍은 옛 흑백사진을 보면서 "아, 이곳이 옛날에는 이랬구나"하면서 지금의 모습과 대비하면서 옛모습에 대한 그리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남부민동의 언덕비탈길에 촘촘하게 지어진 50년대의 피난민들이 지은 집들의 모습과 80년대에 들어와서 개발되기 시작한 을숙도의 개발전의 원래의 모습, 낙동강과 김해의 옛 모습은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동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게 해주며,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볼려고 해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또한 자갈치의 생생한 인간냄새가 나는 사진들도 최민식이라는 이름에서 빼놓을 수 없다. 70년대와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밝은 기운들도 그의 사진역사를 따라가면서 알 수 있는 점이다. 물론 어느 시대건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어쩌지 못하는 그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러한 최민식의 작품은 왠지 현대에는 잘 맞지 않을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디지털 카메라에 의해 손쉽게 사진을 찍어대고 온갖 화려한 색깔의 옷과 거리의 풍경을 흑백 아날로그 사진기로 담아내는 데에는 이미 시대가 떠나가버린 것일까? 그래서인지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의 사진에는 인도와 네팔 그리고 유럽의 모습들이 담겨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사진이 담아낼 풍경이 없는 이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모르지만 삶의 진실성과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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