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견문록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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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느 아침 처럼 물이 끓는다. 나는 예멘의 '마타리'커피를 내린다. 일반 원두 커피처럼 쌉싸름한 맛이 없는 예멘 커피는 달짝지근한 맛에 커피의 깊은 향이 코끝을 스친다. 초코렛 향인지 옅은 한약재 향인지 고소하면서도 단 듯한 커피향에 오감이 또렷해진다. 불과 몇 년 사이 한국은 커피의 제국으로 바뀌었다. 일회용 커피에서 내려먹는 원두커피집까지 동네마다 몇 개씩 생겨나고 이제 아침을 커피와 함께 시작하는 문화는 이 곳에서도 이미 시작되었다.

 

  아라비카의 고장 에티오피아 하레르

  지금으로부터 1500~200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좋아한 유목민 오로모족이 케파왕국에 살았다. 이들은 커피를 부수어 기름과 섞은 뒤에 골프공만한 크기로 둥글게 만들어 먹었다. 이들은 전투를 벌이기 전에 이 커피를 먹었다. 이들이 바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들어온 하레르 지역에 커피를 들여온 부족이었다. 비교적 낮은 지대인 케파의 거대한 커피 밀림에서 자라는 원두는 수천년 전 콩고 밀림에서 자생했다고 추정되는 동그랗고 거친 로부스타이고 하레르에서 자라는 커피는 원두가 길쭉하고 아라비카처럼 향이 풍부하다. 따라서 우리가 원두커피점에서 만나는 맛과 향이 좋은 커피는 대부분 아라비카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과 브라질에서 생산된다.

 

  악마의 유혹인가? 신의 선물인가?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교도는 커피를 종교의식에 이용한 대표적 집단으로 이들에게 커피는 정신적 도취감을 일으켜 신과 소통하게 하는 도구였다. 커피는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의식용 빨간 잔에 커피를 돌려마시며 궁극적 대상인 신과 초자연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의미를 가진다. 중세 수피교도 신비주의자 루미가 빨간 옷을 입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추는 춤을 나는 어딘가에서 보았다. 반면에 다른 이슬람교도나 기독교에서는 커피를 악마의 음료로 규정해서 엄격히 금지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서 1511년 커피를 금지하였다. 포도주와 같이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이유와 예배 전 커피잔을 돌리는 수피교도의 행위는 술마시는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그리고 커피를 '탄화'될 때까지 볶는데 이는 코란에서 금지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최고급 커피 원숭이 똥 커피, 사향고양이 커피

  19세기 인도에서는 커피를 따는 원숭이를 조련하는 곳이 있었고 이 원숭이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먹는데 여기서 채취한 커피를 멍키커피라고 불렀다. 원숭이는 아주 잘 익은 좋은 열매만을 따서 먹고 내장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독특한 향을 낸다고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야행성을 좋아하는 사향고양이는 야자주 주조에 쓰이는 자연 알코올이 포함된 수액과 신선한 커피 열매를 먹고 산다. 이 고양이의 장액이 커피에 특별한 향을 첨가해서 그런지 아니면 고양이가 잘 익은 열매만 골라먹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은 잘 닦아내면 세계 최고의 커피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현재 이 커피는 일본이 대부분 소비하지만 미국기업 M.P 마운타노스가 '코피 루와크'라는 이름으로 1파운드(450그램)당 300 달러에 판매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가 되었다. 레이븐즈 브루 커피에서는 이 커피를 판매하면서 티를 나누어 주는데 티셔츠에는 엉덩이 밑에 컵을 놓고 열심히 볼 일을 보는 사향고양이 그림과 함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최고의 품질을'이라는 문구가 새겨 있다.

 

  커피의 눈물, 브라질

  오로모 전사들이 노예가 되어 하레르에 커피를 들여온 것처럼 커피는 노예제와 깊은 관계를 가진다. 남아메리카 커피 플랜테이션은 노예 노동력의 수요를 창출했고 이런 현상은 아프리카와 신대륙의 눈물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노예 수입의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브라질이 단연 으뜸이다. 지난 20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노예 약 300만 명이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왕국에 동원되었다. 그 외에도 약 500만 명이 설탕 플랜테이션에 노예로 징발되었다. 이런 노예 노동의 착취 속에 오늘날 브라질 인구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54퍼센트를 소유하고 노예의 직계 후손들은 오늘날에도 문맹률과 빈곤율이 높고 빈민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족쇄를 차고 하루 14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처해졌으며 살인, 강간 등의 인권적 유린을 견뎌내야만 했다.

 

  맛없는 미국 커피로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은 스타벅스 커피

  미국은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카페인에 전적으로 맛을 들인 나라이다.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는 커피제국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된 커피 제조법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1800년대 들어와 남북전쟁이 일어날 당시 군용커피로 찬 물에 풀어먹는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냈고 이 커피는 세계 2차 대전 후에도 사람들 사이에 퍼져갔고 1960년이 되기까지 인스턴트 커피는 미국 커피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고 1971년 스타벅스 커피가 만들어졌다. 스타벅스 커피는 처음엔 원두를 판매하는 곳이었지만 점차 집이나 직장에 대한 생각을 잊고 쉬는 장소와 결합된 신개념 판매로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모카향이라고 할까 한약향이라 할까 부드럽고도 진한 커피 향이 얼굴에 퍼진다.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노예노동을 생각하면 커피의 맛과 향을 느끼기에 앞서 가슴의 아픔이 함께 한다. 그리고 커피의 탄생과정에 얼룩진 그들의 눈물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갓 볶은 원두의 맛과 향 그리고 기분좋은 자극과 각성의 효과를 가진 커피 한 잔이 내 눈 앞에 놓여진 일을 집중하게도 하고 또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이 했던 것처럼 신과의 일체감으로 향한 마음의 길을 걸을 수도 있게 한다. 또 중세 사람들이 느꼈던 것처럼 최음제로서의 역할도 한다.(적어도 커피 광고에서만큼은 말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길은 당신 앞에도 있다. 악마의 유혹인가? 신의 선물인가? 당신의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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