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이다. 특히 자신의 죽음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에 있어서는 그렇다. 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샐리 케이건 교수는 보다 세밀하고 이성적으로 의문을 던지라고 조언한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과연 영혼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죽음을 경험하는 주체가 있는지 아니면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은 끝이나는 것인지...또한 나를 나이게 하는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지...어제의 나는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는지...마찬가지로 지금의 나는 가치관과 성격과 육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30년 후의 나와 같다고 할 수 있는지...등 등 죽음에 대한 정밀하고도 주어진 문제에 대한 새로운 물음으로 자신의 삶을 보다 지혜롭게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그가 안내해주는 주제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의문이나 전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던지 그의 논리나 서술방식이 때로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결론을 미리 내려 놓고서 자신의 주장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 고집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논의와 서술을 따라 각자의 의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는 점에서는 정직한 학자라고 보여진다. 또한 때로는 불필요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그의 논리전개방식도 사유를 전개해가는 방식으로서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는 학자이다.

 

  결국 죽음이라는 문제는 삶과 죽음 전체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고 또 삶과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경험적인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학문적인 접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한계는 이미 그가 갖고 있다. 즉 죽음을 바라보는 그는 삶의 한 가운데서 죽음을 사유하기 때문에 사유로는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세계나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지금의 과학으로는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통찰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것을 이야기해 왔다. 그런 종교적 가르침이 오래전부터 자명한 사실조차도 사유적 논리로 판단을 내리는 부분은 별로 그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고 읽는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종교적 가르침이라고 해도 내 경험적 깨달음에 의해 알지 못한 지혜에 대해서는 그의 사유가 내 진리를 찾아가는 채찍은 될 수 있었다. 내 삶의 진리나 화두를 들기 위한 회초리 말이다.

 

  논리를 파고 들면서 한 주제에 대해 결론은 내리는 일은 양파의 껍질을 까는 것과도 같다. 한 껍질을 벗기면 또 다른 껍질이 나타나고 또 한 껍질을 벗기면 또 다른 껍질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세밀하고 정밀하게 한 논리에서 더 깊은 논리로 들어가면 결국에는 정확하게 결론내릴 수 없는 텅빈 공간을 만나게 되는 점에 있어서도 똑같다. 삶은 죽음을 통해 보아야 더욱 지혜롭게 영위할 수 있고 또한 죽음은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가져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이 경험하는 것이고 또한 내 마음이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자살은 괜찮은 것인가? 아니면 모든 자살은 나쁜 것인가? 타살은 상대방 동의없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면 자살은 피해자 자신의 동의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해악은 적지 않은가? 그런데 피해자 자신이 느끼기에 죽음보다 못한 삶이거나 죽음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선택하는 자살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서조차 인간과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여된 논리적인 사유만으로는 올바른 방향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의 행복을 공리주의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또한 과연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저자도 스스로의 논리전개에서 모순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사유의 공간, 사유의 블랙홀이 생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이건 교수는 물리주의자로서 죽음 이후의 영혼의 경험을 부정한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제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가 나는 그의 사유의 길로부터 벗어난다. 나는 내 오솔길을 따라 간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지혜로운 길은 내 삶을 더욱 밝게 해주고 또 내 마음을 더욱 넓게 하고 또 늘 공부의 길을 제시하는 길이다. 그 길은 내 스스로의 삶을 비춰주고 또 밝게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아는 마음이 이를 안다. 달리 말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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