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러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짧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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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6-1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젊음의 열정이 온몸을 사로잡았을 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친한 친구와 줄다리기를 하던 때, 그 친구가 그녀로 인해 좌절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아팠던지...
이후로 감히 그녀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 친구의 극한 절망의 눈빛을 본 후로 난
세상의 사랑이 아름답지 못한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마저도 아름다움이 되는 것은
아마 그날을 돌아볼 세월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리라.
그 친구는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나도 결혼해서 이러쿵 저러쿵 살고
그녀는 아직 결혼을 안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