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가 내게 주는 교훈은, 또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우리도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폐허 위에 펄럭이는 이스라엘의 국기에서 나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한반도의 자화상을 읽는다. 한반도의 전후 지식인인 내게 '세습적 희생자의식'이 무서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도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그 어두운 자화상에 쉽게 눈을 감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한반도의 집단적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세습적 희생자라는 자기 규정은 잠재적 식민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자기 성찰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다. 자기 성찰을 포기한 도덕적 정당성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임지현 교수의 '오만과 편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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