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추사의 '세한도'를 한참 쳐다보면서 "우리 나라 선비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산속 깊은 곳에 눈은 내려 가지위에 가득히 쌓이고 쌓이는 데 그 곳에 세상의 추위를 견뎌내며 꼿꼿하게 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 그 속에 세상의 험난한 현실을 견디어내며 자신의 정신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선비정신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였다.

다산 정약용도 어쩔 수 없는 선비였다. 이 편지글을 통해서 본 그는 나이 마흔이 된 그제야 비로소 유배를 통해 자신이 정말 걸어가야 할 인생의 오솔길을 찾았고, 그것은 학문의 길이었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두아들에게 보내는 교훈, 흑산도로 귀양살이갔던 형님 정약전에게 보내는 글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글은 비록 대상을 달리하고는 있지만 글공부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매진하고자 하는 자기 스스로의 당부의 말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그 글공부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위한 글공부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참된 진리의 자리에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세우고, 그 세운 마음과 정신에 의해 마음가짐과 행동을 하면서, 현묘한 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학문이 제일등의 의리라고 하였으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이 유일무이한 것이 의리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신유사옥이라고 하는 사건이 그에게 준 18년간의 유배생활이 자신의 실학과 관련한 저서 500여권을 저술하게끔 하였고, 자신의 학문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고, 또한 그의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적인 사고가 글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그의 글이 가진 유교적이고 성리학적인 한계 또한 곳곳에서 엿볼 수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유배지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깊은 글공부가 좀 더 젊어서부터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학문에 대한 눈을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의 많은 저서나 뛰어난 능력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민중은 아니더라도 선비들의 삶에 있어서라도.....)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비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더라면 말이다.  이것은 그가 아무리 글공부를 하여도 자신의 정신에서 떨쳐버리지 못한 유교와 성리학의 구습과 찌꺼기인지, 아니면 너무나 실사구시적인 학문으로 선회하여 보다 큰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옛 선비들은 학문의 깊음과 진정함이 한갓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여 진리의 길에 이르기 위한 격물의 방법에서 잘 드러났음을 알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마음가짐도, 장사를 하는 마음가짐도, 그리고 세상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마음가짐에 깊은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경건함과 절제를 우리는 진실하게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비록 이르지 않은 나이에 배움과 지혜를 위한 책을 들고는 있지만 나 역시 책읽기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의 깊은 곳을 응시하도록 하는 그 '무엇'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식만 쌓아서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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