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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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인으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칼릴 지브란의 이 시를 접하면서 나는 "배가 오다"라는 시부터 내 가슴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신의 손길이 연주하는 현악기,  또는 신의 숨결이 내 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피리."라는 표현 앞에서 나의 숨결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다. 이 시는 아주 특별한 시임에 틀림없다.

그의 유년기는 불행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작시를 낭송하는 자리에서 "이런 정신나간 소리는 다시는 안들었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함으로써 어린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다가 세금징수원이던 아버지는 늘 술을 취하도록 마셔댔기 때문에 집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곳에서 그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레바논 베차리지역의 대자연이었다. 혼자있길 좋아했던 그는 삼나무 숲의 향기를 가득 담은 골짜기를 거닐며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한 원체험을 쌓아갔다.

그가 처음 재능을 보인 분야는 미술이었는데 그의 미술선생이었던 사진작가 홀랜드 데이는 그의 명상적이고 신비한 얼굴에 매료되어 자신의 사진모델로 쓰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의 대부분은 그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브란을 키츠, 셀리, 블레이크, 에머슨, 휘트먼 등의 문학세계로 이끌었으며, 이는 지브란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성공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쳤던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세 번에 걸친 사랑했던 여인들과의 이별로 인해 그가 더욱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는 더욱 종교적 명상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40의 나이에 이 위대한 작품 '예언자'를 완성했다. 서양에서도 동양의 위대한 종교시를 들때면 타고르의 '기탄잘리'와 이것을 들곤 한다.

예언자의 알무스타파가 말한 것처럼 "말을 한 것이 나였던가. 나 또한 듣는 자가 아니었던가?"라고 한데서 이 시는 그가 지브란이라고 불리는 세속적 자아를 비워낸 상태에서 자신의 근원 깊은 곳에서 울려나온 소리에 이끌려 적어나갔음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그 깊고 깊은 근원적 울림이 바로 이 시를 읽어가면서 내가 떨렸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예언은 "잠시 후면, 바람 위에서 한 순간만 휴식하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이다. 그의 영혼이 아직 저 세상의 어디에서 바람을 맞으며 휴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느 여인의 아이로 다시 세상에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삶을 통해 성숙해야 할 영혼이 아직 이 지구라는 별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한 언제고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그나 나나 같은 숙제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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