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다. 하지만 그 도도하고 필연적일 것 같은 역사의 흐름은 사실 중요한 한 순간의 광기와 우연에 의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물론 이런 일은 개인사에서도 나타난다. 내 삶을 중요한 순간에 있어서 뜻하지도 않은 일들이나 인물의 출현으로 인해 나는 또 얼마나 새로운 인생을 지어가고 있는가?

광기와 우연은 필연적일 것 같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힘이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실상을 전체로서 보지 못하고 인간지각이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말일 수도 있다. 원래 인간은 나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상의 광기와 우연을 받아들이기에는 존재의 가벼움이 너무 깊다.

하지만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 그 결정이 이루어지는 우연한 방식들은 이미 그 역사적 순간의 운명적 의미를 내포한다. 역사적 순간에 있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 역할을 우리의 깊은 자아는 알고서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내게끔 하는 신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털루 전투에서 '그루쉬'가 보여준 행동도 단지 그가 가진 능력의 부족 탓이라기 보다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적 순간을 위해 태어나고 자라왔을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마호메트에 의해 파괴되는 비잔틴 제국의 절박한 도움의 손길에 마치 운명이 장난이라도 하듯 모두가 외면하던 유럽국가들의 공명현상(비잔틴제국의 멸망에 자신들의 역할을 해내는 배우처럼...)도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은 그것이 어떤 광기와 우연에 의해 방향지워질지라도 그것이 또한 신의 계획에 의해 사전에 짜여진 운명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비우고 신이 자신을 통하여 무엇을 행하려고 하느가를 알아차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삶의 광기와 우연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역사에 있어서나 나에게 있어서나 나의 이기심과 탐욕이 비워진 자리에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주적 균형의 작용에 나는 얼마나 열려져 있는가? 일상에서 그런 노력들이 없을 때, 나는 또 다른 광기와 우연에 의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광기'와 '우연'은 단지 은유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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